17 (독일)동화

서로박: 에테아 호프만의 '세라피온의 형제들'

필자 (匹子) 2021. 1. 18. 10:11

E.T.A. 호프만 (1776 - 1822)의 네 권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집, "세라피온의 형제들"은 1819년에서 1821년 사이에 간행되었다. 베를린 출판업자인 라이머 (Reimer)는 1818년 2월에 지금까지 다른 곳에 발표되지 않은 소설들을 모아서 한꺼번에 간행하는 게 어떤가하고 제안하였다. 사실 호프만은 이미 두 권의 연작 소설집은 간행한 바 있었다. 가령 1814/15년에 간행된 ?판타지 작품들 (Fantasiestücken)? 그리고 1816/17년에 간행된 ?밤 (夜)의 작품들 (Nachtstücken)?이 그 작품집들이다.

 

호프만은 여러 다른 주제를 지닌 작품들을 하나로 묶어 간행하기 위하여, 소설의 순서 그리고 연결 고리에 신경을 써야 했다. 그리하여 창안된 것이 이른바 소설집의 틀인데, 여기서 네 명 (네 번째 작품부터는 여섯 명)의 문학 애호가들이 등장하여, 차례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한다. 호프만은 1813년부터 1821년 사이에 씌어진 소설과 동화들을 모아서, 아홉 단락으로 나누었다. [이 작품 가운데 이전에 발표된 것은 「팔론의 광산들 (Die Bergwerke zu Falun)」 (1819), 「왕의 신부 (Die Königbraut)」 (1821) 밖에 없다.] 이로써 네 권으로 이루어진 ?세라피온의 형제들?은 “모든 이야기들과 동화들. E.T.A. 호프만 간행”이라는 부제를 지니고 있다.

 

비록 루드비히 티크의 연작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호프만은 소설의 틀 장면으로서 “세라핀의 저녁”을 염두에 두고 있다. 1814년부터 1818년까지 베를린에서는 작가들이 모여서, 언제나 문학과 예술에 관한 토론을 벌리곤 하였는데, 여기에 참석한 작가들은 푸케 (Fouqué), 히펠 (Hippel), 히치히 (Hitzig), 로베르트 (Robert), 코레프 (Koreff) 그리고 샤미소 (Shamisso) 그리고 살리체 콘테사 등이었다. 작품의 제목이 “세라피온의 형제들”이라고 붙여진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다. 호프만의 친구, 샤미소는 1818년 11월 14일에 세계 여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이 날이 바로 성 세라피온의 날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제목은 작가 호프만의 기발하고도 즉흥적인 착상에 의해서 비롯한 것이다. 역사를 담은 동화, 유령 이야기, 범죄의 보고 예술가 소설은 이른바 세라피온의 원칙에 의해서 작성된 셈이다.

 

테오도르 (Th), 로타르 (L), 오트마르 (O) 그리고 퀴프리안 (C)는 네 명의 친구들이다. 이들은 제각기 호프만, 푸케, 히치히 그리고 샤미소를 연상시키는데, 오랜 이별 후에 다시 만나서, “더 이상 과거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지 않는 시간의 강제적 힘”에 대해 한탄한다. 이들은 그들 각자 겪었던 과거 경험들이 그야말로 아무런 관련성이 없음을 인식하고, 한 사람씩 차례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가령 C는 미쳐버린 백작 P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C는 수년 전에 남쪽 독일에서 미친 백작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백작은 어느 날 갑자기 한 가지 생각에 골몰하게 된 이후로, 자신이 순교자 세라피온과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세라피온은 데치우스 황제의 박해를 피해 테베의 황무지를 방황했는데, 결국 알렉산드리아에서 체포되어, 순교자가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친 사람이다. 백작은 자신에게 주어진 실제 시간과 장소를 믿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세라피온이라고 생각하고 고적한 숲을 지나며, 그곳이 테베의 황무지라고 여긴다. C (퀴프리안)은 모든 합리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백작의 정신을 차리게 도와주려고 한다.

 

그렇지만 백작은 -마치 불쌍하고도 고결한 돈 키호테가 그러했듯이- 주어진 현실을 환상이라고 여길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공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내가 외부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바라봄으로써 정신과 황당무계한 판타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입니다. 나는 이러한 태도를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천박한 사고라고 여기지요.” 백작은 객관적 현실을 부정하는 대신에, 자신의 상상으로 떠올린 상에 대해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이로써 백작은 놀라운 두뇌 회전으로 불같은 상상력을 지닌 작가적 역량을 발휘한다. 그러하여 백작은 마치 꿈속에 등장하는 마력적인 폭력을 동원하여, 찬란한 삶을 갈구하는 인간형 세라피온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C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세라피온의 광기를 “놀라운 작가 정신을 최대한 발휘한 결과”로 단정한다. 그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세라피온의 날에 다시 만나기로 한 뒤 헤어진다. “각자 자신이 작품에서 전하려고 계획한 바를 실행에 옮기기 전에 그 내용을 실제로 목격했는가를 실험하기로 했던 것이다. 은둔자 세라피온은 우리의 수호신라는 것이다. 그는 문학하는 우리로 하여금 예견력을 마음대로 발휘하도록 허락하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들인 우리는 모두 세라피온의 형제들이다!.”

 

방황하는 열광주의자 세라피온이 세상을 “격정적인 판타지”로 기술하듯이, 작가 호프만은 주어진 현실에 대한 자신의 예술적 태도를 세라피온의 원칙으로 기술하고 있다. 세라피온의 예견적 능력은 문학 모임의 친구들에게는 과히 모범이 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그들은 정신 그리고 판타지의 기능을 절대화시키고 있지만, 이러한 기능은 일방적이고 편협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라피온의 광기의 원인은 주어진 현실을 희생시킴으로써 가능할 뿐이다. “불쌍한 세라피온, 어떤 사악한 별이 그대에게서 현실을 이중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가고 말았구나. 그렇지 않다면, 너의 광기는 무엇을 내용으로 하고 있니? 너는 외부 세계에 살고 있지 않아. 너는 너의 내면에서 작용하는 에너지를 받쳐줄 토대 내지 쐐기를 전혀 바라보지 못하고 있어. 그래도 너는 끔찍할 정도로 첨예한 감각을 동원하여, 듣고 보고 느끼고 접촉하는 모든 것은 다만 정신이라고 주장하고 싶지?”

 

이로써 세라피온의 원칙은 판타지 그리고 현실 사이의 균형을 목표로 한다. 이는 정신과 육체,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 사이의 조화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균형이 파괴된 곳에서는 정신과 영혼의 병이 들이닥치게 된다. 이러한 내용은 "세라피온의 형제들"에서 언제나 반복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기이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 [「크레스펠의 충고 (Rat Krespel)」, 「B 남작 (Der Baron von B.)」, 「R 남작 (Der Baron von R.)」], 자석을 다루는 사람과 자동으로 움직이는 물건에 관한 이야기 [「어느 유령 이야기 (Eine Spukgeschichte)」, 「기이한 손님 (Der unheimlicher Gast)」 「자동 기계들 (Die Automate)」], 병자에 관한 이야기 [「차크나리아스 베르너 (Zachnarias Werner)」], 광기와 열정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 [「스쿠데리 양 (Das Fräulein Scuderi)」, 「유희자의 행복 (Spielerglück)」, 「은둔자 세라피온에 관한 이야기 (Geschichte vom Einsiedler Serapion)」 「아르투스의 궁궐 (Der Artushof)」]

 

광기에 사로잡힌 세라피온의 인물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인간의 내면적 정취 그리고 외부적 삶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갈등 및 간극이 연작의 핵심적 주제로 자리잡고 있다.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세라피온의 무조건적 망상은 작품 속의 놀랍고도 기이한 이야기와 연결되고 있으며, 제각기 이야기들의 소재 선택 및 주제 선정과 밀접하게 관계된다. 왜냐하면 모임에 참가한 친구들은 무엇보다도 잘 알려진 소재를 다시 선택해서 새롭게 재구성할 것을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강조되는 것은 발명의 독창성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히려 이행, 다시 말해서 잘 알려진 소재를 세라피온이 지니고 있는 독창적이고 기이한 눈으로 고찰하는 일이다.

 

모임에 참가한 친구들은 회화 작품에 대해서도 관여하고 있으며 [「(Die Fermate)」, 「아르투스의 궁궐 (Der Artushof)」, 「(Doge und Dogaresse)」], 연대기 및 동시대의 보고 등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가수들의 싸움 (Der Kampf der Sänger)」, 「마이스터 마르틴과 그의 조수들 (Meister Martin und seine Gesellen)」, 「신부 선택 (Die Brautwahl)」 등]. 이러한 유형의 예술 모방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 사실을 하나도 빠짐 없이 서술하는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 사실을 진정으로 전유하고, 새롭게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호프만은 전통적 서사 장르를 새롭게 혁신한 셈이다. 가령 이탈리아 문체의 노벨레, 「시뇨르 포르미카 (Signor Formica)」라든가, 동화 「호두까는 자 그리고 쥐 왕 (Nußknacker und Mausekönig)」, 「왕의 신부 (Die Königbraut)」 등은 새로운 소설 기법을 동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