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독일)동화

빌헬름 하우프의 거짓 왕자

필자 (匹子) 2020. 10. 10. 11:24

 

1. 빌헬름 하우프: 흔히 독일 동화 하면, 우리는 “그림 형제들 Brüder Grimm”를 떠올립니다. 그렇지만 독일 예술 동화의 토대를 다진 작가로서 요한 K. A. 무제우스 그리고 빌헬름 하우프를 예로 들곤 합니다. 특히 빌헬름 하우프는 25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에 놀랍고도 재기발랄한 동화를 남겼습니다. 빌헬름 하우프는 1802년 슈투트가르트에서 공무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우프의 아버지는 궁정비서로 일하다가, 슈투트가르트에서 장관 보조의 업무를 맡았습니다. 1809년 아버지가 사망한 다음에 하우프의 어머니는 네 명의 자식들을 데리고 튀빙겐으로 이주하였습니다.

 

1820년부터 1824년 사이에 튀빙겐 대학교에서 장학생으로 신학을 공부하여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빌헬름 하우프는 튀빙겐에 있는 대학 동아리인 게르마니아의 회원이었습니다. 뒤이어 하우프는 가정교사 직을 전전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1827년에 코타 조간신문의 편집자로 일합니다. 뇌르딩겐에서 알게 된 루이제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1827년 딸이 태어났지만, 하우프는 티푸스의 병으로 유명을 달리합니다.

 

2. 거짓 왕자에 관한 동화: 빌헬름 하우프의 작품 가운데 대표작으로 우리는 연작 동화 『낙타 상인들Karawane』(1825)을 꼽습니다. 이 가운데 「거짓 왕자의 동화」는 여섯 번째 마지막 작품입니다. 하우프는 동화 외에도 의미심장한 장편 소설 그리고 단편 등을 남겼습니다. 따라서 독문학을 전공하려는 분은 하우프를 연구해도 좋을 듯합니다. 이제 「거지 왕자」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비록 주위 사람들을 속이지만, 그의 기만행위에 사악한 의도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듭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지금 여기서 평범하게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눈을 뜨니 우리는 세상에 어느 특정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있습니다. 부모가 가난할 경우에 자식들은 때로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주인공, 라바칸이 그러했습니다. 근대 중동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청년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먹고 살아야 합니다. 라바칸은 재단사 보조가 됩니다. 옷 만드는 허드렛일을 하나씩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일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멍 때리며, 자신이 왕자라고 꿈을 꿉니다.

 

3. 재단사 청년, 오마르 왕자를 만나다: 어느 날 술탄은 축제를 개최하기 위해서 연미복을 만들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라바칸은 축제의 옷을 짓다가, 왕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자신이 제작한 옷을 입어보니, 자신이 술탄의 아들처럼 늠름하고 의젓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연미복을 걸친 채 어디론가 도주합니다. 무작정 목표 없는 여행을 떠나기로 작심한 것이었습니다. 여행 도중에 우연히 술탄의 아들인 오마르와 조우합니다. 오마르는 오랜 수업 시대를 끝내고 왕궁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왕궁을 떠나 독서와 여행으로 약 16년을 혼자서 살아왔습니다.

 

왕궁 사람들은 오마르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마르는 오래 전에 만남의 시간 그리고 약속 장소를 왕궁 사람들에게 귀띔해준 바 있습니다. 오마르가 22세가 되는 생일날 정오 시간에 “엘 세루야” 건축물 기둥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엘 세루야 건물은 알렉산드리아로부터 동쪽 방향에 위치하는데, 도시에서 4일 동안 여행하면 당도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곳에서 서성거리는 남자들에게 단도를 건네주면서 “당신이 찾는 사람이 바로 나다.”라고 외치면, 그들은 “왕자님을 만나게 해준 예언자여 감사합니다.”하고 대답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4. 주인공, 왕자로 행세하다.: 문제는 오마르가 이러한 내막을 라바칸에게 고스란히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왕자를 몹시 부러워합니다. 그렇지만 생김새로 보나, 영리함으로 보나 자신이 오마르에게 뒤질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마르가 잠자고 있을 때 라바칸은 단도 그리고 말을 훔칩니다. 그리하여 알렉산드리아로 향해 도주합니다. 며칠 후에 라바칸은 약속 장소에 일찍 당도하여 궁궐에서 온 남자들과 만납니다.

 

그들에게 단도를 건네면서 자신이 왕자라고 거짓말합니다. 엘 세루야에 모여 있던 남자들은 곧이곧대로 믿고 라바칸에게 큰 절을 올립니다. 오마르는 뒤늦게 허겁지겁 약속장소에 당도합니다. 자신이 왕자라고 공언하지만 남자들은 오마르를 체포합니다. 그들은 오마르 완자를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정신 나간 재단사라고 판단하고 궁궐로 압송합니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거짓 왕자 그리고 천민으로 간주된 진짜 왕자를 끌고 되돌아갔던 것입니다.

 

5. 오마르의 어머니, 자신의 아들을 유추하다.: 왕궁 사람들은 수십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왕자를 열렬히 환영합니다. 모두 라바칸을 왕자로 생각하고, 오마르를 천박한 재단사 청년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어도, 왕비만큼은 속일 수 없습니다. 왕비는 아들과 재회할 때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라바칸의 말투와 행동이 도저히 자신의 아들이라고 믿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재단사로 끌려온 젊은이에게 느끼는 호감은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애틋함에서 비롯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왕비는 한 가지 명령을 하달합니다. 그것은 두 청년으로 하여금 장삼과 바지를 직접 만들라는 지시였습니다. 두 사람은 이를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시키는 대로 옷을 만듭니다. 라바칸은 아주 멋진 장삼과 바지를 제작하지만, 진짜 왕자는 짜깁기한 의복을 얼기설기 만들어냅니다. 왕비는 이 사실을 술탄에게 알립니다. 이때부터 술탄은 두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는 근처의 전나무 숲에 거주한 요정, 아돌차이데에게 두 청년을 보내면서,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왕자인가를 가려내라고 명령합니다.

 

6. 어느 요정의 상자: 아돌차이데는 누가 왕자이고 누가 거짓왕자인지 단번에 알아차립니다. 그렇지만 그미에게 필요한 것은 물적 증거였습니다. 그리하여 요정은 두 청년에게 귀중한 물품을 담은 두 개의 상자를 내밉니다. 한 상자 위에는 “명예와 명성”이라고 쓰여 있고, 다른 상자 위에는 “행운과 부귀영화”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아돌차이데는 두 사람에게 각자 상자 하나를 선택하라고 명령합니다. 라바칸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행운과 부귀영화”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상자를 차지한 반면에, 오마르는 “명예와 명성”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상자를 선택합니다. 놀라운 것은 상자 속에 담긴 물품들이었습니다. “명예와 명성”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상자에서 왕관과 왕홀(王笏)이 나타났고, “행운과 부귀영화”라는 글자가 새겨진 상자에서는 바늘과 실타래가 드러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누가 진짜 왕자인지 백일하게 밝혀집니다. 이윽고 주인공 라바칸은 감옥에 갇히게 되고, 오마르는 오래 전에 헤어진 부모와 뜨겁게 상봉하게 됩니다.

 

7. 이야기의 종말: 이야기는 어떻게 끝나게 될까요? 하우프의 동화 속에 다루어진 이야기는 속임수가 담겨 있지만, 이러한 현혹은 사악한 의도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청년의 소박한 꿈과 그의 불행한 처지가 결국 주인공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으로 행동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술탄과 왕자는 이를 예리하게 통찰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인공 라바칸을 처벌하지 않고, 추방령을 내리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시킵니다. 그리하여 라바칸은 목숨을 부지하여 다시 고향의 재단실로 돌아옵니다. 이후 장인으로부터 술탄을 속인 죄로 인하여 약간의 매질을 당한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며칠 후에 라바칸은 자신이 선물로 받은 상자를 이웃에게 팔아버립니다. 상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게 해주었으므로 재수 없는 물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상자를 다시 되찾아옵니다. 왜냐하면 상자 속의 바늘은 저절로 움직여. 멋진 옷을 만들어내는 가공할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실타래는 저절로 감기고 펼쳐지는, 이른바 초능력의 물품,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라바칸은 다시 바늘과 실타래를 되돌려 받은 뒤에 수많은 옷을 단기간에 만들어냅니다. 결국 주인공은 나중에 그야말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행운과 부귀영화를 거머쥐게 됩니다.

 

8. 중요한 것은 라바칸의 기만이 아니라, 기만을 불러일으키는 사회가 문제다. 라바칸의 이야기는 가난한 젊은이의 뜬금없는 꿈으로 매도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고트프리트 켈러의 단편 소설 「옷이 날개다Kleider machen Leute」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가난한 재단사인 슈트라핀스키는 자신이 제작한 옷을 입고, 이웃 도시로 여행합니다. 고급 망토를 걸치고 우수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 살롱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폴란드에서 온 백작이라고 소개합니다. 우연히 부유한 처녀를 꼬드겼는데, 자기도 몰래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거짓말과 변명으로 일관한 슈트라핀스키는 더 이상 사랑하는 임을 속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약혼식 전날 밤에 도주를 감행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처녀를 사랑하는 또 다른 사내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처녀는 스트라핀스키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데, 자신에 대한 그의 사랑만큼은 진실된 것을 알아차리고 가난한 재단사와의 결혼을 관철시킵니다. 작품은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물론 자신의 신분을 속이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그러나 낮은 계급 사람들이 더 이상 신분 상승을 할 수 없을 때 그들은 쉽사리 사기와 현혹이라는 유혹에 빠지게 되지요. 문제는 그들의 사기와 현혹을 잔인하게 단죄할 게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없는 이유에 관해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단순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속이고 거짓말하도록 유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