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 26

서로박: (1) 천일야화, 세계의 비밀과 사랑

1. 우리의 인식 능력은 제한적이다.: 우리는 지구가 태양을 돌고, 달이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습니다. 갈릴레이의 이전 시대에는 지구 중심설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인간은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 기운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인지 능력은 편협하고 제한적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과거 사람들은 다른 물질로 금을 창조해낼 수 있다고 지레짐작하였습니다. 연금술사들은 단순한 기술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목욕재계한 다음에 수없이 실험에 임했습니다. 이를 위해 사용된 것은 수많은 다른 물질들이었습니다. 황Sulphur은 물질을 태우고, 수은Merkur은 물질을 용해시키며, 소..

38 중세 문헌 2021.11.24

모제스 로젠크란츠, 혹은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쓰기 (2)

4. 아도르노는 루마니아 출신의 노시인의 작품을 읽고 무척 놀라워했다. 시편들은 간결하지만, 주어진 사물과 사건을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다. 정교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생경한 표현, 그것은 어쩌면 “독일 고전주의의 일그러진 일면” (E. Kanterian)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고색창연한 것 같으면서도 진부하지도 않고, 투박한 생명력이 곳곳에 배여 있었다. 그런데 시편 가운데에는 「피의 푸가」라는 게 있지 않는가? 시편을 읽으면서 아도르노는 자신의 놀라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아도르노는 로젠크란츠 부인의 부탁을 이행하겠노라고 구두로 약속한 뒤에, 그녀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낸다. 즉 한 가지 조건만 충족시킨다면 남편의 시편의 발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게 편지의 내용이었다. 한 가지 조건이란 어떠한 ..

22 외국시 2021.10.21

모제스 로젠크란츠, 혹은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쓰기 (1)

“아내여, 내가 죽으면, 당신에게 유산으로 남길 게 있어. 그건 나의 발이야. 내 발은 아주 억세고 잘 생겼어. 동쪽 발이거든. 서유럽에서는 이런 발을 볼 수 없을 거야. 어릴 때는 맨발로 눈 덮인 들판을 뛰어다녔고, 수감되어 있을 때는 동토의 땅을 맨발로 걸어야 했어. 거기에는 자갈과 뾰족한 돌들이 많았지. 고문 형무소에서, 우라늄 탄광 속에서도 나의 발은 한 번도 다친 적이 없거든. 발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고난의 삶을 헤쳐 나오지 못했을 거야.” 모제스 로젠크란츠 (Moses Rosenkranz, 1904 - 2003)는 95세 생일에 그렇게 말했다. 로젠크란츠는 1904년 부코비나의 작은 마을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유대인의 여섯 째 아들로 태어났다. 소외감, 가난, 냉대 등은 그의 입을 굳게 다물게..

22 외국시 2021.10.21

서로박: 일리치의 젠더 론 비판 (1)

1. 일리치의 젠더 이론의 앞모습과 뒷모습: 자고로 대부분의 이론은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관점 intentio recta”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 대한 반성적 성찰 intentio obliqua”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인식 그리고 이러한 인식에 대한 성찰이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특정한 이론의 두 가지 측면을 일단 구분해서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일리치의 젠더 이론은 현대 문명을 다각도에서 비판하므로, 그 자체 존재 가치를 지닙니다. 실제로 일리치는 “최상의 것을 망치는 것이 가장 나쁘다. Corruptio optimi pessima”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현대 문명을 “신약성서의 내용이 완전히 파괴된 무엇”으로 규정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5 사회심리론 2021.10.12

(단상. 493) 새로움에 대한 모험

아도르노는 말했다: “어떤 음악이 마음에 들면, 인간 동물은 그 음악만 좋아하고 다른 새로운 음악을 듣기를 거의 포기한다.” 어느 소설가는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남자든 여자든 자기에게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발견한 사람은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사귀려 하지 않는다.” 윤노빈 교수는 레닌의 말을 인용하며 말했다: “인간 동물은 주인에게 꼬리치고 타인을 향해 컹컹 짖어대는 강한 보수성을 지니고 있다.” 하이너 뮐러를 인용하며 나는 말한다: “좋은 예술은 새로움에 의해 합법화된다고 한다. 허나 처음에 그것은 인간에게 불편함을 안겨다 준다. 새로움은 불편함이요, 불편함은 혁명적이다.” 새로움에 대한 모험 - 이것이야 말로 자기 발전의 방식에 관한 패러다임이다.

3 내 단상 2021.09.17

블로흐와 아도르노의 유토피아 논쟁 (4)

(계속 이어집니다.) 블로흐: 바로 이러한 까닭에 유토피아의 사고는 두 가지 의향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그 하나는 유토피아 사회상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법사상입니다. 전자는 더 이상 힘들게, 무거운 짐을 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적 상태를 재구성하고 있다면, 후자는 자연법을 주창하는 자들의 의연한 기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사항을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에서 자세히 천착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 번째 사항이 문제로 제기되는군요.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죽음을 가리킵니다. 죽음은 흔히 신앙인들이 즐겨 다루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이해되곤 합니다. 그렇지만 죽음을 떨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기적이겠지요. 흔히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강조..

30 bloch 대화 2021.09.08

블로흐와 아도르노의 유토피아 논쟁 (3)

아도르노: 헤겔은 가능성의 개념을 나쁘게 언급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블로흐: 가능성의 개념은 헤겔에 의해서도 나쁘게 다루어졌지요. 헤겔은 가능성에 대한 종래의 견해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하면서 가능성을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개념으로 취급하고 말았지요. 실재하지 않는 것은 어떠한 가능한 무엇도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가능한 것은 헤겔의 견해에 의하면 현실적인 것으로 직결되었으니까요, 말하자면 그것이 현실적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다고 헤겔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가능성의 카테고리는 헤겔의 경우 하나의 주관적 성찰의 카테고리였습니다. 아도르노: 가능성이란 개념이 그냥 지붕 꼭대기 위로 올라간 셈이로군요. 블로흐: 그런 셈이지요 가능성의 개념은 처마위로 올라갔지만, 지붕 밖으로 돌출해 나오지는 못했..

30 bloch 대화 2021.09.07

블로흐와 아도르노의 유토피아 논쟁 (2)

아도르노: 나 역시 당신의 주장에 부분적으로만 수긍합니다. 당신이 암시한 바 있는 사항을 동원하여 몇 가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단 여기서 분명히 규정할 게 있어요. 앞에서 과학 기술에 관한 말씀은 유토피아에 관한 나의 본래의 입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과학 기술과 관련된 냉정함 때문에 오늘날 유토피아의 의식이 축소되고 폄하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물음입니다. 즉 과학 기술이 이룩해낸 놀라운 발명이라든가 개별적인 혁신이 전체성, 사회 전체의 문제점을 고려할 때 어떠한 방식으로 하나의 대립각을 형성시키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세요. 유토피아라는 무엇 내지 유토피아라고 생각될 수 있는..

30 bloch 대화 2021.08.31

호르스터: 블로흐의 사상 (1)

블로흐의 주저 『희망의 원리』는 1938년부터 1947년 사이에 미국 망명 시에 집필되었으며, 제 1권은 구동독에서 1953년에 간행된 바 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대상을 다루면서 어떤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이 인간을 추동하는 결정적인 모티브라는 사실을 피력하고 있다. 블로흐는 회화, 건축, 음악 그리고 문학 등의 제반 예술 장르를 하나씩 분석하고, 동화, 영화, 여행, 유행, 진열장, 춤, 무언극, 낮꿈과 밤꿈, 종교 그리고 신화 등을 차례로 거론하면서, 이들 속에 담긴 유토피아의 요소들을 해명해 나간다. 나아가 그는 통속 문학, 영화관, 일 년 시장, 축제 등의 영역을 긍정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어떤 소외되지 않은 사회적 정치적 현실 상태에 대한 희망의 가장 다양한 표현 형태들을 ..

29 Bloch 번역 2021.08.24

블로흐: 프랑크푸르트 학파, 사르트르 등에 관하여

나: 프랑크푸르트 학파, 특히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 대한 당신의 관계 역시 좋았는지요? 너: 그렇지 않아요. 나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사회 탐구 연구소Institut für Sozialforschung”를 “사회 위조 연구소Institut für Sozialfälschung”라고 명명했습니다. 나는 한 번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염세주의를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프랑크푸르트학파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고, 혁명가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들은 어떤 염세적 사회 이론을 정립시킨 자들이지요. 처음에 나는 아도르노와 친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유토피아 개념에 관해서 상대방을 이해시키지 못했지요. 호르크하이머는 나중에 반동주의자로 변절했습니다. 나: 당신의 작품은 마르크스주의, 헤겔 사상 그리고 종교적 ..

30 bloch 대화 2021.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