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외국시

모제스 로젠크란츠, 혹은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쓰기 (2)

필자 (匹子) 2021. 10. 21. 11:39

4.

아도르노는 루마니아 출신의 노시인의 작품을 읽고 무척 놀라워했다. 시편들은 간결하지만, 주어진 사물과 사건을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다. 정교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생경한 표현, 그것은 어쩌면 “독일 고전주의의 일그러진 일면” (E. Kanterian)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고색창연한 것 같으면서도 진부하지도 않고, 투박한 생명력이 곳곳에 배여 있었다. 그런데 시편 가운데에는 「피의 푸가」라는 게 있지 않는가? 시편을 읽으면서 아도르노는 자신의 놀라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아도르노는 로젠크란츠 부인의 부탁을 이행하겠노라고 구두로 약속한 뒤에, 그녀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낸다. 즉 한 가지 조건만 충족시킨다면 남편의 시편의 발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게 편지의 내용이었다. 한 가지 조건이란 어떠한 경우에도「피의 푸가」가 발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예컨대「죽음의 푸가」를 쓴 시인 파울 첼란과 친구 관계에 있기 때문에, 표절 문제로 자신의 친구를 곤경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로젠크란츠의 시「피의 푸가」는 우여곡절 끝에 “통곡 (Klage)”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다.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그 시가 자기 검열을 당하게 된 것일까?

 

테오도르 아도르노. 탁월한 분석가, 어떠한 전망도 용인하지 않는 염세주의자. 첼란과 로젠크란츠를 자극하고, 간접적으로 이들을 후원한 사람이 바로 아도르노가 아니던가? 전쟁이 끝난 뒤에 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 한편 쓴다는 것은 하나의 야만”이라고 규정했다. 아도르노는 이 말로써 파시스트들의 죄악을 폭로하고, 전통적 휴머니즘이 얼마나 끔찍한 이데올로기로 돌변할 수 있는가?를 지적하려 하였다. 그렇지만 엄밀히 따지면 아도르노의 말은 단호함에서 비롯한 거짓말일지 모른다. 어째서 시인들이 침묵을 강요당해야 한단 말인가? 아우슈비츠를 체험한 유대인이라면 피맺힌 과거사를 더욱더 열정적으로 작품에 남겨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과거의 참상이 후세인들에게 정확하게 기억될 테니까 말이다.

 

파울 첼란 역시 아도르노의 말에 심한 거부감을 느꼈던 게 틀림없다. 그는 일찍이 30년대에 프랑스에 유학하여 의학을 공부한 바 있었다. 당시에 파리의 문학과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부모는 1940년 게토에서 비참하게 사망했고, 자신은 전쟁 내내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주위의 유대인들이 그의 눈앞에서 총살당하고, 어디론가 끌려가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였다. 전쟁 후 살아남은 그의 심신은 반쯤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향에 남아 살아간다는 것은 나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 하나의 고통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독일에서 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첼란은 자신의 원래 이름인 “안첼 (Antschel)”을 “첼란 (Celan)”으로 바꾸고, 자신의 거주지를 프랑스로 택한다. 첼란은 1947년 파리에 정착하여, 시 창작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로서는 문학예술을 통하여 루마니아 유대인들의 비통한 살림과 죽임을 알리는 게 급선무였던 것이다. 적 (敵)의 언어로 시를 쓰는 일 - 그것은 첼란으로서는 억울한 죽음에 대한 저항이며, 부모의 죽음에 대한 정신적 복수였던 것이다. 아니, 첼란으로서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야만”이라는 아도르노의 주장을 작품으로써 반박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1948년 자신의 시,「죽음의 푸가」가 발표된다.

 

5.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그걸 저녁마다 마신다

아침마다, 낮마다 그리고 밤마다 마신다

우리는 마신다 마신다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 누우면 좁지 않다

한 남자가 집에 거주한다 뱀들과 유희하고 있다 편지를 쓴다

날이 어두워지면 편지를 쓴다 독일로 그대의 금발, 마르가레테

그는 편지 써서 집 앞으로 나선다 별이 반짝이면 휘파람으로 사냥개를 부른다

휘파람으로 유대인들을 불러서 땅속에 무덤 하나 파게 한다

우리에게 명령한다 무도곡을 연주하라고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밤마다 마신다

너를 아침마다, 낮마다 그리고 저녁마다 마신다

우리는 마신다 마신다

한 남자가 집에 거주한다 뱀들과 유희하고 있다 편지를 쓴다

날이 어두워지면 편지를 쓴다 독일로 그대의 금발 마르가레테

그대의 잿빛 머리 술라미트 우리는 공중에 무덤 파고 있어 거기 누우면 좁지 않아

그는 외친다 땅속으로 더욱 깊이 찔러 너흰 노래 부르고 너흰 연주해

혁대의 쇠뭉치를 거머쥔 뒤 그걸 흔들고 있다 그의 두 눈은 푸르다

더욱 깊이 삽질해 너흰 그리고 너희는 계속 무도곡을 연주해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밤마다 마신다

너를 낮마다, 아침마다 그리고 저녁마다 마신다

우리는 마신다 마신다

한 남자가 집에 거주한다 그대의 금발 마르가레테

그대의 잿빛 머리 술라미트 그는 뱀들과 유희하고 있다

그는 외친다 더욱 달콤하게 죽음을 연주해 죽음은 독일에서 온 장인이야

외친다 더욱 암울하게 바이올린을 켜라 너희는 공중에 연기로 솟겠지

 

그러면 구름 속에 무덤 하나 지닐 거야 거기 누우면 좁지 않아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밤마다 마신다

너를 낮마다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장인이야

너를 저녁마다 아침마다 마신다 우리는 마신다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장인이야 그의 눈 하나는 푸르다

그는 납으로 된 총알로 너를 맞힌다 너를 정확히 맞힌다

한 남자는 집에 거주한다 그대의 금발의 마르가레테

우리로 향해 사냥개를 부추긴다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을 선사한다

뱀들과 유희하고 꿈을 꾼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장인이야

그대의 금발 마르가레테

그대의 잿빛 머리 술라미트 (원문 생략)

 

6.

유대인 학살의 현장을 이토록 간명하게 기록한 문학 작품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벽의 검은 우유”라는 표현은 구약 성서에서 차용된 것이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신의 노여움으로 파괴된 예루살렘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 바 있다. “예루살렘의 군주는 눈 (雪)보다 순수하고 우유보다도 깨끗하더니 (...) 이제 그 형체는 검은 빛 앞에서 그렇게 어두워져, 사람들은 그들을 골목에서도 알아차리지 못하네.” (예레미야 애가 제 4장 7절 이하.) 어쩌면 시인은 지상에 도래한 사건을 지옥의 상황으로 간주했는지 모른다. 구약성서에 착안하여 죽은 생명의 참혹함을 “검은 우유”라고 표현한 것은 무척 놀랍다. 이것은 동향의 여류 시인 로제 아우스렌더 (Rose Ausländer, 1907 - 1988)의 시구에서 다른 맥락으로 사용된 바 있다.

 

“공중의 무덤”이라는 비유는 앞에서 거론한 로젠크란츠의 시에도 등장한 바 있는데, 이는 18세기 동유럽에서 나타난 유대인의 종교 운동인 “하시디즘 (Chassidim)”에서 비롯된 시적 비유이다. 가족 친지들의 시신과 무덤을 찾을 길 없는 살아남은 유대인에게 “공중의 무덤”만큼 적절한 비유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공교롭게도 루마니아 출신의 시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그것은 하시디즘에 의하면 공중에 있는 돌로서, “천국으로 향하는 승강장”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천국으로 향하는 과정으로서의 “공중의 무덤”은 오래 전에 영지주의자 (霊知主義者)들에 의해서 영혼의 그노시스의 천국 여행으로 인식되었다. 인간이 죽으면, 영혼은 천국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일곱 명의 집정관을 거쳐야 한다. 이 집정관은 점성술의 신화에 의하면 일곱 개의 혹성을 관장하는 자들이다. 오로지 종교적 직관을 지닌 선한 영혼만이 신비적 직관을 통하여 천국으로 향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은 자는 항성들, 다시 말해 12 개의 수대 (獣帯)의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소설가 프리모 레비 (Primo Levi, 1919 - 1987)는 그의 유작 소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인가 (Se non ora, quando)』에서 이 시구를 사용한 바 있다.

 

상기한 시를 살펴보자. 누군가 유대인을 불러 모아 무덤을 파게 한다. 무도곡을 연주하게 하며, 그들을 파묻게 한다. 가스실에 데리고 가서 그들을 살해한다. 누군가 살아남은 유대인을 “납으로 된 총알로” 정확히 쏴 죽인다. 밤이면 일말의 가책도 없이 고향의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뱀 그리고 사냥개들을 데리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어느 독일 장교가 아닌가? 그는 참회는커녕 자신의 잘못 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이 죄를 척결하고 죄인을 징벌하는 하수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독일 장교들은 나중에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였다. 신 (총통)의 뜻을 집행하는 충성스러운 사도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살인자의 하수인들이 깨닫지 못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똑같은 사랑의 감정이 있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며, 평화롭게 살 권리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시에서 등장하는 술라미트는 자주 빛 머리카락을 지닌 아름다운 유대 여인으로서, 솔로몬은 그미에게서 깊은 사랑을 느끼지 않았던가? 잿빛 머리카락은 왕의 모포의 색깔과 동일하다. 또한 잿빛은 찬란했던 과거의 예루살렘의 평화를 상징하지 않는가? 그러한 한에 있어서 작품 속에는 일말의 긍정적 은유가 담겨 있는지 모른다.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는 발표 즉시 독일 내외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독일의 언론은 체르노빌 출신의 시인을 대대적으로 소개하였으며, 수많은 평론가들이 이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첼란은 이제 전후를 대표하는 독일 시인으로 조명 받게 된다. 그러나 첼란은 천성적으로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는 되지 못했다. 자신의 명성이 비참하게 죽어간 유대인들의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 활용된다고 감지하고, 못내 마음 아파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