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 28

서로박: (3) 사드의 "새로운 저스틴"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그미의 여동생 줄리엣이 겪었던 이야기: 이렇듯 『새로운 저스틴』 속에는 수없이 많은 범죄, 강간, 살인 등이 뒤섞인 채 묘사되어 있습니다. 저스틴의 이야기는 줄리엣의 이야기로 건너뜁니다. 줄리엣을 둘러싼 이야가들은 몇몇 장면을 제외한다면 줄리엣의 시각에서 서술되고 있습니다. 줄리엣은 누아케이에라는 한량을 만납니다. 그는 온갖 사악하고 끔찍한 일을 마치 밥먹듯 저지르는 자입니다. 게다가 대단한 허영심을 지닌 잔악하기 이를 데 없는 사내로서, 힘없고 착하며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을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착취하는 거머리 같은 인간입니다. 누아케이아는 줄리엣의 주인으로 등장하는데, 신을 모독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자신의 하녀들의 성을 차례로 농락하며 지냅니다. 그 뿐 아니라 그..

32 근대불문헌 2023.04.19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사회의 이슈 그리고 문제점을 예리하게 통찰하여 이를 언급하는 작가 - 그는 바로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1929 - )입니다. 그의 삶은 전형적인 지식인이자 비판적인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말년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는 그의 시대적 감각을 높이 평가한 것은 사실입니다. "Er hat die Nase im Wind." (Habermas) 그렇지만 엔첸스베르거의 발언이 모조리 타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서양의 작가 가운데에서 1929년 생은 참 많습니다. 철학자 하버마스, 엔첸스베르거, 하이너 뮐러, 크리스타 볼프, 밀란 쿤데라, 귄터 쿠네르트 등이 1929년생입니다. 시인,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는 1929년 남쪽 독일의 소..

9 문학 이야기 2022.09.01

서로박: 그뢰쉬너의 모스크바의 얼음

친애하는 G, 오늘은 당신에게 전환기의 소설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맨 처음의 작품으로서 마그데부르크 출신의 작가 아네테 그뢰쉬너 Annette Gröschner (1964 - )가 2000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모스크바의 얼음 Moskauer Eis』를 선택해 보았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냐 코베라는 여성입니다. 그미는 베를린에서 나이든 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접하고, 고향인 마그데부르크로 향합니다. 할머니의 집에는 아버지가 사용하던 방이 있었습니다. 수년 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버지의 방은 먼지 그리고 거미줄로 뒤엉켜 있었습니다. 아냐는 아버지의 방에서 커다란 냉동박스를 발견합니다. 아냐는 일순간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냉동박스 안에는 오랫동안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아버지의 시체가 있..

48 최신독문헌 2022.05.27

서로박: 야우스의 "미적 경험과 문학적 해석학"

베를린 자유 대학의 아름다운 옆 모습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 (1921 -1997)의 책은 1977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발간되었으며, 1982년에 확장본으로 속간되었다. 야우스의 이론적 출발점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서의 서문에서 제기되고 있는 미적 경험에 관한 연구이다. 야우스는 미적 향유의 개념을 흔히 미적 경험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내용에 결부시키려고 한다. 그는 우선 아도르노의 부정성의 미학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왜냐하면 아도르노에 의하면 문학 작품이란 오직 다음의 조건에 한해서만이 어떤 긍정적인 사회적 기능을 지니게 된다고 한다. 가령 자율적 예술 대상으로서 사회적 지배 구조를 부정하고 사회적 근원으로부터 벗어날 경우에 한해서 그러하다. 다시 말해 예술의 사회적 요소는 아도르노에 의하면 ..

25 문학 이론 2022.05.16

블로흐 어록

1. “인간은 항상 초보자이다. Homo semper tiro.” (블로흐)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아는 자는 없습니다. 우사인 볼트는 100미터 달리기에서 세계최고이고, 신공지능으로 알려진 신진서 바둑선수는 바둑에서만 1위일 뿐입니다. 두 사람이 나와 함께 러시아어를 배운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들의 실력은 나와 마찬가지로 초보자입니다. 다른 한 편 자전거를 밟고 있는 동안에는 넘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토끼보다는 거북이를 사랑합니다. 그래도 토끼의 게으름이 이따금 부럽기는 하지만.... ㅋㅋ 2. “사랑이란 어떤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향하는 여행이다. Die Liebe ist eine Reise in ein gänzlich neues Leben” (영) Love is a journey into ..

27 Bloch 저술 2022.03.04

(명시 소개) 장석의 시,「단풍」

모든 잎이 제 몸을 등불로 하여 산마다 공양을 올린다 가을을 지나가는 구름의 복부를 밝히고 죄가 쌓인 내부를 비춘다 이것이 우리 세계가 만드는 노을이다 없다면 천하고 비참함 그대로 얼어갈 테니 장석 시집: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도서출판 강 63쪽 ................. 너: 장석 시인의 창작 욕구는 마치 활화산처럼 느껴지는 군요, 불과 6개월만에 시집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가 간행되었습니다. 모다기로 태어난 예술적 자식 -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나: 자신의 모든 시간을 창작에 쏟는다는 것 외에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군요. 분명한 것은 시인의 상상에 거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신선처럼 때로는 방금 태어난 아기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시적 대상을 서술하는 ..

19 한국 문학 2022.01.11

서로박: 싱거의 "적들 어느 사랑의 이야기" (2)

(7) 죽었다고 믿었던 아내가 살아서 돌아오다: 그런데 어느 날 타마라가 그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타마라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습니다. 타마라는 갖은 고초를 다 겪고, 이곳 미국까지 남편을 수소문하여 찾아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헤르만은 마샤에게 평생 함께 살자고 약속했던 터였습니다. 이제 자신만을 생각하고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찾아온 첫 번째 아내를 문전박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폴란드에서 어려운 시기를 함께 지내던 조강지처가 바로 타마라였던 것입니다. 헤르만은 살아서 돌아온 타마라를 부둥켜안고 시간가는 줄 모르는 채 눈물을 흘립니다. 이 일이 발생한 이후로 주인공은 세 명의 여자와 동시에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31 동구러문헌 2021.12.16

서로박: 싱거의 "적들 어느 사랑의 이야기" (1)

(1) 사라진 이디시어: 친애하는 J, 오늘은 폴란드 출신의 유대 작가, 이삭 B. 싱거 (Isaak B. Singer, 1902 - 1991)의 소설 『적들, 어느 사랑의 이야기』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싱거는 중년의 나이부터 미국에서 살다가, 197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작가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미국 작가가 아니라, 유대 독일어 작가로 규정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로 이디시어 (Jiddisch)로 작품을 집필했기 때문입니다. 이디시어는 특히 폴란드에서 거주하던 아슈케나짐 (Aschknasim)에 의해서 유대 독일어로 발전되었습니다. 그것은 중고 독일어와 히브리어가 혼합된 언어로서, 폴란드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유대인들에 의해 사용되었습니다. 20세기 초..

31 동구러문헌 2021.12.16

서로박: 천일야화, 세계의 비밀과 사랑 (1)

1. 우리의 인식 능력은 제한적이다.: 우리는 지구가 태양을 돌고, 달이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습니다. 갈릴레이의 이전 시대에는 지구 중심설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인간은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 기운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인지 능력은 편협하고 제한적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과거 사람들은 다른 물질로 금을 창조해낼 수 있다고 지레짐작하였습니다. 연금술사들은 단순한 기술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목욕재계한 다음에 수없이 실험에 임했습니다. 이를 위해 사용된 것은 수많은 다른 물질들이었습니다. 황Sulphur은 물질을 태우고, 수은Merkur은 물질을 용해시키며, 소금..

38 중세 문헌 2021.11.24

모제스 로젠크란츠, 혹은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쓰기 (2)

4. 아도르노는 루마니아 출신의 노시인의 작품을 읽고 무척 놀라워했다. 시편들은 간결하지만, 주어진 사물과 사건을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다. 정교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생경한 표현, 그것은 어쩌면 “독일 고전주의의 일그러진 일면” (E. Kanterian)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고색창연한 것 같으면서도 진부하지도 않고, 투박한 생명력이 곳곳에 배여 있었다. 그런데 시편 가운데에는 「피의 푸가」라는 게 있지 않는가? 시편을 읽으면서 아도르노는 자신의 놀라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아도르노는 로젠크란츠 부인의 부탁을 이행하겠노라고 구두로 약속한 뒤에, 그녀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낸다. 즉 한 가지 조건만 충족시킨다면 남편의 시편의 발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게 편지의 내용이었다. 한 가지 조건이란 어떠한 ..

22 외국시 2021.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