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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 소개) 신영복의 '담론'

담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였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변방을 찾아서, 엽서, 강의 등 신영복 선생의 책이라면 거의 모조리 읽었지만, 이처럼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받은 적은 없었다. 책은 두 개의 장으로 나누어진다. 앞의 장은 신영복 선생이 감옥에서 읽었던 동양의 사상에 관한 강의이며, 뒤의 장은 감옥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형수 그리고 수인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동양학에 무지한 나로서는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앞부분을 읽었는데, 그 내용과 깊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나의 마음을 충격에 빠뜨린 것은 두 번째 장의 내용이었다. 여기에는 신영복 선생이 감옥에서 겪었던 체험이 조금도 허구 없이 고스란히 묘사되고 있었다. 과연 우리가 죄를 저지른 인간을 직접 처벌할 수 ..

1 알림 (명저) 2024.10.04

박설호: (5) 루카치와 블로흐. 사상과 예술론의 차이점

20. 자연 주체에 관한 블로흐의 시각: 중요한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루카치가 인간, 사회 그리고 역사 발전을 중시하여, 오로지 정치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의 미학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블로흐는 유토피아의 사고 속에 인간 주체와 자연 주체를 설정하고, 자연의 인간화 그리고 인간의 자연화라는 서로 교차된 관점에서 사고해나갔습니다. 그런데 블로흐의 경우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물질 이론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자유의 나라”(Marx)에 관한 단초 역시 인간과 자연 속에 내재한 경향성과 잠재성이라는 사상적 촉수 속에 처음부터 발현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루카치의 사상이 20세기 초의 정치적 유토피아의 종말과 함께 현대성을 상실해 나간 반면, 블로흐의 자연 주체는 21..

27 Bloch 저술 2024.10.03

박설호: (4) 루카치와 블로흐. 사상과 예술론의 차이점

(앞에서 계속됩니다.) 16. 블로흐의 유토피아, 루카치의 총체성: 블로흐는 주어진 현재에 대한 반대급부의 의향을 지니고 있으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한 가능성을 유토피아로 선취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유토피아는 –카를 만하임 Karl Mannheim도 언급한 바 있는- “존재 제약성을 넘어서는” 강력한 힘을 지닌 변화의 촉매제와 같습니다. (만하임: 343).  이에 비하면 루카치는 유토피아를 하나의 구상적 상으로서 주어진 현실과 동떨어진, 형이상학의 반대편 영역으로 파악합니다. 그래서 루카치는 유토피아 대신에 총체성을 통해서 어떤 참된 현실의 상을 구상적으로 제시하려 했습니다. 원래 총체성의 개념은 다양함을 포괄하는 일원성으로 이해됩니다. 루카치는 총체성을 고대 그리스의 이상과 관련시킨 바 있습니다. ..

27 Bloch 저술 2024.10.03

엔첸스베르거의 '양들에 대한 늑대의 변호'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1929 - 2022)는 1929년 알고이에 있는 카우프보이렌에서 태어나다. 그의 본명은 안드레아스 탈마이어이다. 1949년부터 1954년까지 그는 에어랑겐, 함부르크, 프라이부르크, 소르본느 등지에서 문학, 어학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다. 1955년 클레멘스 브렌타노 시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다. 1955년에서 1957년 사이에 남독 방송국의 프로듀서, 울름 대학교에서 강의를 맡기도 하다. 1960년에서 1961년 사이에 프랑크푸르트의 출판사 편집을 담당하였으며, 1963년 잡지 『코스 북 (Kursbuch)』 주편집자로 일하다. 엔첸스베르거는 1964년에서 1965년 사이에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시학을 강의하다. 1957년에는 미국을, 1963년에서 1964년 사이에 ..

21 독일시 2024.10.02

박설호: (3) 루카치와 블로흐. 사상과 예술론의 차이점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서서히 밝아오는 어둠, 사회적 실천에 관한 견해 차이: 블로흐는 어째서 루카치와는 달리 “그냥 사는 삶의 순간의 어두움Dunkel des gelebten Augenblicks”을 통해서 자신의 고유한 유토피아의 사고를 발전시켰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놀랍게도 루카치의 실천 개념에 대한 비판에서 엿보이고 있습니다. 블로흐는 루카치가 중시한 마르크스의 실천 개념을 보다 포괄적으로 파악하였습니다. 루카치가 이 개념을 정치경제학의 차원에서의 이론과 실천 속의 상호 작용에서 도출해내었다면, 블로흐는 마르크스의 실천의 개념을 인간 존재의 범위를 넘어서서 더 포괄적으로 이해하려 했습니다. 블로흐는 인간이든 자연이든 간에 주체와 객체가 생명력을 구가하면서 제각기 자기 동일성을 실현하는 ..

27 Bloch 저술 2024.10.02

샨도르 페퇴피의 시,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은 젊은 청춘이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천차만별로 인지되고 발전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책에서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사랑의 악보는 오로지 사랑하는 두 사람의 감정의 조율에 의한 박자와 멜로디에 의해서 때로는 전율로, 때로는 격앙된 희열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샨도르 페퇴피는 자신에게 진정한 사랑을 가르쳐준 분으로서 율리아 첸드리를 거명하고 있습니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루말할 수 없이 당신을 사랑해요.부드럽고 너무나 가냘픈당신의 몸 또한 사랑해요.당신의 희디흰 이마,치렁치렁한 검은 머리칼,피어오르는 붉은 뺨,당신의 깊은 두 눈동자,너무나 달콤한 입술.언젠가 내 곁으로 다가온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자그마하고 따뜻한 손. 당신의 영혼 ..

22 외국시 2024.10.01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시, '당신이 나에게 미치지 않아 다행이지요'

당신이 내게 미치지 않아 다행이지요마리나 츠베타예바 당신이 내게 미치지 않아 다행이지요내가 당신에게 넋 나가지 않아 좋아요육중한 지구가 우리의 발아래에서사라지지 않는 것 또한 겉 다르고 속 다르게 처신하지 않아 좋아요언어유희로 구속받지 않아 다행이지요가벼운 포옹에도 내 마음이 숨 막히는떨림으로 불그레 하게 변하지 않는 것 또한 당신이 몰래 내 주위의 다른 여자들을조용히 안아주는 것도 오히려 다행이지요당신의 키스가 지옥의 유황불로 나를활활 태우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애정 어린 나의 이름을낮마다 밤마다 떠올리지 않을 테니까요어느 적요한 성당에서의 맹세 또한 그렇겠지요아마 우린 천사의 노래 들으며 헤어지겠지요 그래도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려요사랑이 무언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사랑했으므로..

22 외국시 2024.10.01

박설호: (2) 블로흐와 루카치. 사상과 예술론의 차이점

(앞엑서 계속됩니다.) 6. 루카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나중에 소련 공산당은 루카치의 상기한 이론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시민 사회의 제반 예술 작품들이 리얼리즘에 위배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가령 알렉산더 즈다노프는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강조하였습니다. (Mittenzwei: 22). 이것은 차제에 마치 채플린의 영화에 묘사된 바 있는 “가방의 비유”처럼 잘못 활용되었고, 이로써 시민 사회의 예술 속에 부분적으로 은폐된 공산주의의 예술적 유산들은 거의 사장되고 말았습니다. 소련의 예술적 판관들은 즈다노프의 용어에 집착하면서, 시민 사회의 예술 작품들을 통째로 비난했습니다. 시민 사회의 예술은 비유컨대 몰락하는 부패한 계급의 늪지에 핀 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오펜바흐, 조이스, 카프카, 프루스트..

27 Bloch 저술 2024.10.01

박설호: (1) 블로흐와 루카치, 사상과 예술론의 차이점

“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물질과 유토피아의 시스템을 설정하는 일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여기에 포함되는 사항이다.” (블로흐)“자연 주체에 관한 논의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일탈한 사고로서 인간의 관점에서 벗어난다.” (루카치) 1. 인간과 자연: 에른스트 블로흐의 사상적 진수를 압축해놓은 문헌, 『흔적들 Spuren』에는 물질과 관계되는 에피소드가 실려 있습니다. “우주는 참으로 광활한데, 우리 앞에 위치한 성 피터 성당의 높이는 얼마나 볼품없이 가련한가요? 만약 지구가 할 말이 있다면서 리스본에서 모스크바까지 입을 쫙 벌리고, 비밀스럽게 몇 마디 근원의 말씀을 외친다면, 어떨까요? 이때 지방 문화를 애호하는 현명한 친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 따위 헛소리는 논의라고 말할 수 없지요, 아니, 아마 쓸데..

27 Bloch 저술 2024.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