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박설호: (3) 루카치와 블로흐. 사상과 예술론의 차이점

필자 (匹子) 2024. 10. 2. 08:35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서서히 밝아오는 어둠, 사회적 실천에 관한 견해 차이: 블로흐는 어째서 루카치와는 달리 “그냥 사는 삶의 순간의 어두움Dunkel des gelebten Augenblicks”을 통해서 자신의 고유한 유토피아의 사고를 발전시켰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놀랍게도 루카치의 실천 개념에 대한 비판에서 엿보이고 있습니다. 블로흐는 루카치가 중시한 마르크스의 실천 개념을 보다 포괄적으로 파악하였습니다. 루카치가 이 개념을 정치경제학의 차원에서의 이론과 실천 속의 상호 작용에서 도출해내었다면, 블로흐는 마르크스의 실천의 개념을 인간 존재의 범위를 넘어서서 더 포괄적으로 이해하려 했습니다. 블로흐는 인간이든 자연이든 간에 주체와 객체가 생명력을 구가하면서 제각기 자기 동일성을 실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가령 젊은 루카치는 블로흐의 다음과 같은 견해에 동의했습니다. 즉 바람직한 진정한 삶은 일상적 삶의 순간성과는 반대되는 무엇인데, 아직 성취되지 못하고 있다는 견해 말입니다. 말하자면 아직 실현되지 못한, “서서히 밝아오는 어둠adumbratio”은 일상적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상이었는데, 1910년 중엽에 두 명의 젊은 철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Lukács, MT: 219). 블로흐에게 소련 혁명은 단순히 무산계급의 사회적 혁명으로 인지되었는데, 이는 인류 역사에서 끝없이 이어져온 만인의 평등을 추구하는 혁명적 사고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루카치가 형이상학적 순간의 개념을 마르크스주의가 의도하는 혁명적 주체의 실천이라는 개념과는 다른 차원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입니다. 루카치는 레민의 소련 혁명을 고대의 스파르타쿠스 폭동, 르네상이 이후의 토마스 뮌처의 농민 혁명과는 별개로 이해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기 존재의 순수한 체험을 유발시키는 형이상학적 순간의 개념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오로지 역사와 계급의 문제만을 구명하려 했습니다.

 

12. 블로흐의 새로움, 마르크스주의의 난류, 먼 목표: 루카치에 비하면 블로흐는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할 때에도 자신의 초기 사상의 단초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의 무력 혁명은 블로흐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현한 최초의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 역사 이래로 끝없이 이어져온, 굶주리지 않으려는 인간의 끝없는 갈망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됩니다. (Bloch GdU 2: 295f.). 마치 유토피아의 사고가 인간의 의식에 생명력 넘치는 순간의 어두움을 밝히는 빛으로 작용하듯이, 마르크스주의 역시 강제노동과 억압을 떨치기 위한 구체적 유토피아의 “새로움 Novum”이라는 것입니다. 블로흐는 혁명적 주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생산 양식의 변화를 통한 사회적 협동성 뿐 아니라, 예술적, 종교적 그리고 형이상학적 초월의식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Bloch PA, 618). 이로써 주어진 현실의 모습을 비판하고 극복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한류”라면, 자유의 나라를 투시하고 이를 예술적으로 철학적으로 선취하는 행위는 “마르크스주의의 난류”로 규정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소련 사회주의자들은 블로흐에 의하면 마르크스주의의 난류를 무시했다고 합니다.

 

예컨대 그들은 “최상의 것을 망치는 게 가장 나쁘다 Corruptio optimi pessima.”는 정언적 명제를 간과했다는 것입니다. 자고로 사회주의의 이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자아와 세계는 끝없이 변화되어 나가야 합니다. (Die Akademie der Wissenschaft: 309). 이를 위해서 소련은 “가까운 목표 Nahziel” 대신에 “먼 목표 Fernziel”를 중시하며, 미래지향적 지평을 개방시켜야 한다는 게 블로흐의 지론이었습니다. 물론 루카치에게 이러한 시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미래의 지평을 하나의 전망으로 규정했고, 이를 총체성의 지향점으로 설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전망은 루카치에게는 본질과 현상 사이의 모순을 반영하는 총체성 속에서 수동적으로 투시되는 의향으로 인지되었을 뿐입니다. 루카치의 총체성에는 역동적 변화의 과정, 유연한 미래지향적 가능성의 특징은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상적으로 투영된, 고착되어 있는 ”정태적 완전성perfectio”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기실 눈앞의 당면한 사안도 중요하지만, 찬란한 미래를 미적으로, 철학적으로 선취하는 일은 생략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개량적 사회주의자들은 목표 지향적 전망을 등한시하고 당면한 현실 문제만 골몰하였습니다., 하나의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정책 가운데 하나의 타협책만을 택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3. 그냥 사는 순간의 어두움 그리고 죽음의 상: 루카치는 1918년 이후에는 종교적으로 착색된 “마지막 사건”으로서의 유토피아의 선취 기능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농민 전쟁 당시에 토마스 뮌처 Thomas Müntzer가 꿈꾸던 이상적 사회상은 경제적 문제를 부차적 과제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계급 없는 사회의 범례로 적합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루카치의 시각은 독일 농민 전쟁을 오로지 종교개혁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한 카를 카우츠키 Karl Kautsky의 그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루카치가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실천을 위해서 어떤 예견의 필연성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예견의 개념은 자본주의 사회 내의 계급 모순을 누구보다도 먼저 투시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은 주지하다시피 사고의 신속한 힘을 발휘하여 기존하는 나쁜 사회를 파기하도록 작용합니다. (Lukács, GK: 366).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로지 미래 사회의 선취 내지는 유토피아의 역동성과 개방성이 아니라, 오로지 기존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시급하게 파괴하고 그 특성을 해체하는 일일 뿐입니다. 혁명적 초조함은 급진적 목표를 이룩하기 위해서 오로지 한 가지 사항에 몰두하다가, 핵심 사항과 결부된, 주변의 작은 문제를 도외시하는 법입니다. 루카치는 1910년대 초반에 집필한 『예술의 철학』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습니다. 즉 예술 작품은 찬란한 미래에 대한 가상적 상으로서의 현실의 마지막 충동 내지 완성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다는 것입니다. (Lukács, HÄ: 89f.). 이때 루카치가 숙고했던 현실의 총체성은 바로 여기서 –단 한 번 예외적으로- 유토피아와 차별성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루카치가 파악한 예술 작품 속에 반영된 바람직한 현실의 총체적 상은 유토피아의 사고의 단초로서, 블로흐가 언급한 “그냥 살고 있는 순간의 어두움”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습니다.

 

14. 즉음에 대한 루카치와 견해: 가령 비극에 대한 루카치의 형이상학적 상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루카치는 “체험한 순간의 어두움”의 상을 레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Смерть Ивана Ильича』에서 발견하려고 합니다. 주인공, 이반은 판사로 살아왔는데, 불치의 병에 걸립니다. 죽기 3일 전에 병상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기묘한 힘을 감지합니다. 그것은 삶이라는 터널의 마지막에 비치는 빛의 형상, 즉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입구와 출구에 해당하는) “웜홀 Wormhale”의 모습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떤 드문 순간에 인간에게는 어떤 현실이 개방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는 모든 빛이 관통되는 것 같은데, 이때 우리는 가령 자신의 상부에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마구 생동하는 존재를 감지하면서 삶의 의미를 분명하게 파악하게 된다.” (Lukács, TR: 134; Bloch EM: 259).

 

주인공 이반은 죽음 직전에 삶의 어떤 중요한 가치를 깨닫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게 됩니다. 인간 삶의 가치가 주위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 내지 이웃 사랑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요약하건대 인간은 루카치에 의하면 죽음의 순간 지금까지 (어리석게) 살아온 삶의 의미 뿐 아니라, 총체적 상에 의해 형상화될 수 있는 삶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삶의 본질이란 “마지막 사건”으로서의 유토피아의 의향과 같습니다. 이는 루카치에 의하면 오로지 죽음의 한계선에서 어떤 내재적인 의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Lukács, MT: 231; 루카치 1997, 378). 루카치는 삶의 모든 의미를 인간이 처한 사회적 관계 내지는 상호 이해성에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순간적 깨달음은, 실존하는 무엇으로서 하나의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이해되는 것입니다. (Lukács, GK: 101).

 

15. 갈망, 가능성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 루카치는 죽음에 관해서 파고들지 않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인식으로 근접할 수 없는 영역으로 인지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에 반해서 블로흐는 죽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도 어떤 희망의 요소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죽은 뒤에도) 나는 결코 해체되지 않으리라.Non omnis confundar.”라는 전언에서 무신론자의 단호한 시각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루카치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루카치는 비극적 죽음 내지는 사멸로 향하는 모든 충동을 “존재의 가시화 행위”로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죽음이 삶의 끝이라고 단언하면서, 인간의 갈망, 가능성, 죽음 이후의 세계 등에 대한 관심을 차단합니다. 이로써 신학은 루카치에 의해 무가치한 분야로 매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극적 어두움이라고 해서 무작정 종말론적 사멸로 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Bloch GdU2:, 27). 야콥 뵈메 Jakob Böhme에게서도 드러나듯이, “루시퍼적인 것”은 비록 암울하고 사악한 면을 드러내지만, 어떤 유형의 저항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루카치는 순간의 유토피아를 하나의 형상 내지는 구상적 형태로 설명하는데, 이는 블로흐에 의하면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면 순간의 유토피아는 결코 예술에 내재한 구상적 형태로 포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예술적 작품은 더 나은 미래의 현실에 관한 어떤 단편적인 특성을 어떤 부호로 드러낼 뿐입니다. 이는 예측된 상, 즉 “선현”으로 표현됩니다. 순간적 유토피아의 이미 완성된 상은 최소한 알레고리의 형태로 가능할 수 있지만, 구상적이고 가시적인 형상으로 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