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16. 블로흐의 유토피아, 루카치의 총체성: 블로흐는 주어진 현재에 대한 반대급부의 의향을 지니고 있으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한 가능성을 유토피아로 선취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유토피아는 –카를 만하임 Karl Mannheim도 언급한 바 있는- “존재 제약성을 넘어서는” 강력한 힘을 지닌 변화의 촉매제와 같습니다. (만하임: 343).
이에 비하면 루카치는 유토피아를 하나의 구상적 상으로서 주어진 현실과 동떨어진, 형이상학의 반대편 영역으로 파악합니다. 그래서 루카치는 유토피아 대신에 총체성을 통해서 어떤 참된 현실의 상을 구상적으로 제시하려 했습니다. 원래 총체성의 개념은 다양함을 포괄하는 일원성으로 이해됩니다. 루카치는 총체성을 고대 그리스의 이상과 관련시킨 바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삶은 루카치에 의하면 다양한 개별 사항들을 통합시킬 수 있는 폐쇄성, 완전성 그리고 일원성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Lukács, TR: 20). 훌륭한 예술작품이 하나의 일원성을 드러내는 까닭은 그 속에 바로 참된 현실의 총체성을 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루카치의 총체성이 그 자체 예술작품을 전제로 한 폐쇄성, 객관성 그리고 완전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예술 작품 속의 총체성이 때로는 현상과 본질 사이의 계급적 모순이 극복되어 있는 가능성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루카치의 총체성 속에도 일부 유토피아의 성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총체성의 카테고리는 -루카치의 표현에 의하면- 물화의 편재적인 힘 그리고 보편적인 모순을 밝힐 수 있으며, 최소한 인간 소외가 극복된 현실상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루카치가 생각한 바람직한 현실의 총체적인 상은 블로흐에 의하면 딱딱하고 불변하는 폐쇄성으로 인하여 궁극적으로 역사 결정주의라는 취약점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Schiller: 31).
루카치의 총체성은 현실의 제반 문제를 객관주의의 방식으로 포괄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더 나은 미래를 실현하려는 어떤 촉수를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에서 다음과 같이 논평합니다. “모든 것을 객관주의로 포괄하는 루카치의 총체성의 개념 속에는 실천적 의식의 구상적 예견을 위한 공간이 자리하지 못한다. 물론 총체성의 개념은 자기 비판적인 구체화의 가능성 또한 보여주지만, 모든 실천 행위의 구성주의적 성분을 마냥 수동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Bloch PH: 517).
17. 자연에 대한 블로흐와 루카치의 사고: 자연에 관해서 블로흐와 루카치는 처음부터 전혀 다른 관점을 표방했습니다. 루카치의 경우 자연 속에는 어떤 바람직한 이상의 지평이 처음부터 자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연의 책”(Konrad von Megenberg)은 기껏해야 자연의 힘이 지닌 비밀문서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기에 루카치는 다음과 같이 일방통행 식으로 선언했습니다. 즉 자연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란 오로지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발견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기에 “계산으로부터 멀어져라.”라는 셸링 Schelling의 전언은 루카치의 관심 밖에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역사와 계급의식』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오로지 물질 개념을 오로지 사회적 의미로 제한시키거나 동질화시키고 있는데, (루카치는 총체성에 대한 전반적인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물질 개념은 인간의 의식 밖으로 치부하고 있다.) 우리는 이로써 인간 삶 그리고 자연 역시 적절하게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Bloch PA: 618). 루카치에게는 역사적 주체가 변증법의 유일한 동력이었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에 온존하는 물화된 관계를 완전히 파기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역사적 주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루카치는 인간 주체로부터 벗어난 자연이 인간의 의식 저편에서 변증법적 운동을 전개한다는 것을 경시하였습니다.(Lukács, GK: 175).
18. 블로흐는 물질 속의 잠재성에서 자연의 비밀을 찾으려 했다. 이는 자연 속에 도사린 가설적 주체를 탐색하는 의향으로 최종적 연결점을 고려할 때 인간이 추구하는 경향성의 목표와 동일합니다. 블로흐는 물질이 존재와 정신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Bloch MA: 136). 그러나 루카치는 엥겔스가 피력한 자연의 변증법을 원천적으로 배격함으로써 혁명 이후의 러시아 전역의 자연이라는 합법적 토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당시 소련의 위정자들은 사회 발전의 객관적 법칙만을 중시하고 자연에 관한 엥겔스의 변증법을 무시해버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엥겔스의 발언을 관료적으로 그리고 실증주의적으로 수용했을 뿐입니다.
자연에 관한 엥겔스의 변증법을 부정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질적 자연에 관한 해석을 거부하는 것을 뜻합니다. 논의에서 벗어난 말이지만 소련이 산업 생산, 특히 중공업만 중시하고, 농촌 문화 사업 내지 농업 경영 등을 배제한 것도 어쩌면 엥겔스의 자연에 대한 변증법을 무시한 결과였는지 모릅니다(Engels 1969 B, 444 – 455). 자연의 형체들은 블로흐에 의하면 처음에는 무의식적인 형태 속에 잠재해 있다가, 결국 인간 삶을 발전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합니다. 자연은 무언가 비밀을 탐구하는 인간 앞에서 자신의 눈을 열어젖힙니다. 주체의 마음속에 도사린 객관에 합당한 무엇은 객체 속에 도사린 주체와 합당한 무엇과 조우합니다. 주체와 자연은 이런 식으로 상호 진동하고 있습니다.
블로흐는 자연의 형상 속에 질적인 척도가 부분적으로 인지된다고 믿었습니다. 질적인 척도는 척도 관계 속에서 연결된 “매듭 부분”에서 자신의 모습을 은밀히 드러낸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매듭 부분이란 사물의 양적 특성이 질적 특성으로 전복되는 양상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헤겔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점점 성장하는 양이 새로운 질의 형체로 전복되는 모습으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Bloch TLU: 155). 질적인 척도는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양적 특성 속에서 스스로를 표현합니다. 질적 척도는 모든 형체 속의 본질적인 무엇 내지 “하나의 전체로서의 자연 이념”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물질의 내재적인 고유성이라고 명명될 수 있습니다. 블로흐는 물질을 소외되지 않은 인간 그리고 자연 공동체의 필연적인 협력자로서 고찰하였습니다. “물질의 아궁이 내지 근원은 지금까지 현실로 드러나지 않는 무엇과 함께 여전히 소진되지 않았다. 물질의 역사 그리고 자연의 가장 중요한 현존 형태는 현실적 가능성이라는 잠재성 속에서 서성거리고 있다.”(Bloch MA: 524).
19. 무엇이 중요한가, 국외자의 거리감인가, 아니면 사건 당사자의 핵심 사안인가? 블로흐와 루카치는 1910년대 중반에 하이델베르크에서 만나, 주어진 현실에 유효한 예술과 철학에 있어서 상당부분 공통적 견해를 표방하였습니다. 그러나 루카치는 1918년 소련이 출범하자, 이전에 추구하던, 찬란한 미래에 관한 예측된 상 내지 “선현” 그리고 “마지막 사건”으로 이해되는 예술 작품의 존재론적 관점으로부터 등을 돌렸습니다. 물론 “그냥 사는 순간의 어두움”에 관한 루카치의 관점이 이후에 찬란한 삶의 최종적인 상으로서 드물지만 간헐적으로 출현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루카치가 강조한 것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정치 경제학의 내용이며, 이를 시급하게 실천하는 일이었습니다.
블로흐 역시 정치적 판단에 있어서 여러 번에 걸쳐 시행착오를 범했습니다. 『철학 논문집 Philosophische Aufsätze』에 실려 있는 소련 탄생에 대한 성급한 열광 그리고 핵에너지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 등은 오늘날 결과론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블로흐는 루카치와는 달리 사회 혁명이라는 하나의 당면한 관건에 골몰하지 않고, 경향성과 잠재성, 다시 말해 인간과 자연의 발전 과정을 학문적으로 추적해나갔습니다. 그의 사상적 토대 또한 1920년대부터 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었으며, 1940년대 이후에도 커다란 변화를 거듭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블로흐가 오랫동안 미국에서 국외자로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는지 모릅니다. (Bloch, Karola: 114).
루카치가 1930년부터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을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간주하며, 전통적 시민 사회의 철학 그리고 자연철학을 처음부터 배제했다면, 블로흐는 마르크스 사상 외에도 기독교, 헤겔, 자연법 그리고 물질 이론 등을 모조리 포함시켰습니다. 블로흐의 이러한 연구는 루카치의 시각에는 마르크스주의의 의향을 희석시키는 방만한 작업으로 비쳤습니다. 블로흐의 자연 철학과 물질 이론은 급변하는 동구 사회를 염두에 둘 때 무가치하고 공허한 논의로 곡해될 정도였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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