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Wolf 29

서로박: 볼프의 "유년의 본보기" (1)

1. 크리스타 볼프의 산문, 가상과 실재성의 혼합으로서의 이야기: 크리스타 볼프의 소설 『유년의 본보기Kindheitsmuster』는 1976년에 간행되었습니다. 크리스타 볼프는 『크리스타 T를 생각하며』를 발표한 지 8년 만에 장편 소설을 간행하였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게어하르트 볼프와 함께 집필한 시나리오, 『틸 오일렌슈피겔』 (1972) 그리고 단편 소설집 『운터 덴 린덴』(1974) 등이 발표되었습니다. 소설 『유년의 본보기Kindheitsmuster』는 내용상으로 그리고 형식적으로 『크리스타 T를 생각하며』와 많은 유사성을 보여줍니다. 가령 작품 속에는 자전적인 내용과 가상적인 내용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무엇이 자전적인 내용인지, 무엇이 가장적인 내용인지를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습니다. ..

47 Wolf 2018.08.03

볼프: 뷔히너 문학상 수상 연설문 (6)

오늘날 문학은 평화에 대한 연구이어야 합니다. 창작 행위란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더욱이 우리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생하게 알게 된 이후부터 더욱 그러합니다. 즉 우리의 두 나라는 -언젠가 “독일”이라고 불렸으며, 아우슈비츠로 인하여 그 이름이 더럽혀졌을 때, “독일”이라는 명칭은 강대국에 의해서 몰수당하고 말았습니다만- 엘베강의 양쪽에 존재하는 땅은 핵무기가 발사될 경우에 가장 먼저 소멸되리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이러한 소멸의 시기를 분명히 표시해주는 여러 지도들이 생겨나게 될지 모릅니다. 곰곰이 숙고하건대 카산드라 (Kassandra)는 트로야를 자기 자신보다 더 열렬하게 사랑한 게 분명합니다. 그녀는 트로야의 몰락을 예견하고, 이를 고향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전해주었습니다. 나..

47 Wolf 2018.07.19

볼프: 뷔히너 문학상 수상 연설문 (5)

이제 자리잡게 된 것은 두려움입니다. 그것은 그녀의 두려움이자 레옹세의 두려움이기도 하지요. 이제 그들은 끔찍한 두려움, 터부들 가운데 하나의 터부를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수많은 이름을 지닌 레옹세가 다른 인간을 사랑할 수 없다는 점, 그가 오로지 죽은 자만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 끔찍한 두려움이지요. 레옹세는 말합니다. 아름다운 시신이여, 그대는 밤 (夜)의 시커먼 구의 (棺布) 위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누워 있구나. 그 때문에 자연은 생명을 증오하고 죽음을 사랑하는구나. 수많은 이름을 지닌 로제타에게는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한 가지 선택밖에 없지 않습니까? 즉 강압에 의해서 죽은 방으로 들어가던가, 아니면 자청해서 죽은 방이 되어야 하는 일을 생각해 보세요. 그녀는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47 Wolf 2018.07.19

볼프: 뷔히너 문학상 수상 연설문 (4)

로제타는 자신의 권한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녀는 입을 열고 말할 수 없습니다. 슬픔도, 기쁨도. 사랑, 노동 그리고 예술 모든 것을 발설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능욕 당하게 내버려둡니다. 매춘 행위. 감금당하기. 미친 짓을 감내하기. 그녀는 한 송이 장미로서 괴롭힘 당하고 착취당합니다. 이중적으로. 주위 사람들은 아이를 배라고 그녀에게 강요합니다. 낙태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녀의 성을 마음대로 분석해내는 것을 허용합니다. 로제타의 몸은 무기력함의 그물 속에 칭칭 감깁니다. 신경질부리는 여자로 돌변합니다. 닳고닳은 못된 여자. 요부. 솥뚜껑 운전사. 그러다가 로제타는 노라 (Nora)처럼 인형의 집에서 떠나기도 합니다. 마침내 그녀는 로자 (Rosa)가 되어,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때 죽도록 얻어맞..

47 Wolf 2018.07.19

볼프: 뷔히너 문학상 수상 연설문 (3)

과연 로제타 (Rosetta), 마리 (Marie), 마리옹 (Marion), 레나 (Lena), 줄리 (Julie), 루실 (Lucile) 등은 어디에 거주하고 있습니까? 당연히 독립 요새 바깥입니다. 상기한 여성들은 아무런 보호 없이 야전 지역 한복판에 그냥 머물고 있습니다. 어떠한 사고 체계도 여성들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믿음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즉 어떠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유형만큼 그렇게 비이성적으로 사고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여성들의 존재는 난제로부터 발뺌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지요. 그들에게는 정상적 교육에 결핍될 뿐 아니라, 이에 대한 정당한 욕망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여성들은 사회의 아래에서 그리고 바깥에서 남자의 힘든 정신적 행..

47 Wolf 2018.07.19

볼프: 뷔히너 문학상 수상 연설문 (2)

문학은 앞으로 얼마나 끔찍할 정도로 남용될까요?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냥 멀거니 이를 지켜보아야 할까요? 무슨 일이 계속 발생하여, 결국 우리의 언어마저 완전히 차단시키게 될까요? 문학은 얼마나 오랫동안 장례식의 초청인으로 작용해야 할까요? 문학은 어떠한 끔찍한 일에 뒤엉켜, 어떠한 죽음 속으로 향해서 사람들의 뒤를 추종하게 될까요? 문학은 더 이상 삶의 조력자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기껏해야 사람들이 편안하게 죽도록 도와줄 수 있단 말입니까? 만약 우리가 과거 역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꽁꽁 묶여 있고, 거의 아무런 대안도 없는 현재 속으로 추방당해 있으며, 완전히 사악한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를 말해야 할까요? 여러 역사적 모순 사항들은 새로운 순환을 맞이하고 있..

47 Wolf 2018.07.19

볼프: 뷔히너 문학상 수상 연설문 (1)

다름슈타트 독일 아카데미의 언어 문학 분과가 올해에 나에게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뷔히너 문학상의 수상을 계기로 내 마음속에서는 나의 작업이 얼마나 불충분한가? 하는 생각이 극도로 솟구치고 있습니다. 비록 작가라는 업종을 스스로 선택했지만, 작가의 존재 형태에 대한 의혹이 자꾸 솟아오르니까요. 한가하게, 어쩌면 우쭐한 마음인지는 몰라도 이러한 지속적 테마에 관한 논의를 도외시하려고 합니다. 아울러 오늘 이 자리에서 연설하기 어려운 사항을 성찰하고 있는 나의 연설문을 일단 고려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게오르크 뷔히너의 범례는 명백합니다. 글쓰기 그리고 삶이라든가 책임 그리고 과실 등이 내면 속에 서로 엉켜 있다는 사실이 나 자신을 이토록 불안하게 만든 적은..

47 Wolf 2018.07.19

서로박: 볼프의 남아 있는 것

어느 봄날 나는 창문 밖을 내다본다. 그들은 다시 거기 서성거리고 있다. 그들은 집 앞에 자동차를 세워 놓고, 창가의 나를 하루 종일 감시한다. 맨 처음 자정이 넘도록 그들은 창밖의 길가에 흰색 차 속에서 끈질기게 나를 감시하고 있다. 다시 아침 9시 경에 다시 창밖을 내다보니, 이번에는 연초록의 차가 정차해 있었다.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있는데도 그들은 떠나지 않는다. 기억을 떠올리니, 그들은 지난 해 11월부터 나를 감시하는 것 같다. 당시에 기관원들은 나의 이층 아파트에 침입한 흔적을 남겨놓았다. 전화가 울린다. 과연 그들이 나의 전화를 엿듣고 있을까? 그들은 내가 편지들을 읽기 전에 아마도 모조리 읽었는지 모른다. 친구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그들은 나에 관해서 모든 것을 ..

47 Wolf 2017.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