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Wolf 34

서로박: 볼프의 '육체에 합당하게' (1)

친애하는 C, 오늘 다루려고 하는 소설은 크리스타 볼프의 『육체에 합당하게 Leibhaftig』(2002) 입니다. 이야기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의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여주인공, “나”는 동베를린의 어느 종합병원에 머물면서 병든 몸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고열 때문인지, 아니면 마취약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미는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지나간 40년 동안 구동독에서 보낸 여러 가지 삶의 흔적들을 기억해내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떠올리는 상상의 현실이 풍요로운 심층의 복합성을 보여주고 있다면, 텍스트의 토대가 되는 병원의 현실은 정확하지만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종합 병원의 일상은 일정표에 맞추어 계속 반복되니까요. 주인공은 수술을 기다리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증상 그리고 의사들이 어떻게 자신을 대하..

47 Wolf 2021.06.14

크리스타 볼프

크리스타 볼프는 1929년 3월 18일 바르테 강변의 란츠베르크에서 상인 오토 일렌펠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나중에 유년의 틀, 혹은 "유년의 문양 (Kindheitsmuster)"에 반영되었습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그미의 나이는 16세였습니다. 사춘기의 나이에 어째서 전쟁이 발발했는지, 어떻게 유대인들이 핍박당했는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미의 가족들은 메클렌부르크로 이사했습니다. 란츠베르크의 모습. 건물들은 현대식으로 바뀌었으나, 주위의 풍경은 의구하기만 하다. 산천은 의구하나, 인걸은 간 데가 없습니다. ㅠㅠ 1949년: 아비투어 취득. 사회주의 통일당 (SED)에 입당했습니다. 당에 입당하는 것은 당시에는 거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1949년: 그미는 예나와..

47 Wolf 2019.11.08

서로박: 볼프의 나누어진 하늘

크리스타 볼프의 소설 『나누어진 하늘 (Der geteilte Himmel)』은 1963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작가는 1980년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받을 정도로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발표하였습니다. 그미는 사회주의의 실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으로 인하여 구동독에서 비판을 당했습니다. 1990년 통독 후에 『남아 있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스타지 문제를 거론했을 때 작가는 신랄한 구설수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어쨌든 크리스타 볼프는 주제의 측면과 그리고 문체의 측면에서 구동독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작품, 『나누어진 하늘 (Der geteilte Himmel)』은 볼프의 데뷔작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50년대에 구동독의 문예지에 「모스크바 중편 (M..

47 Wolf 2019.03.09

서로박: 볼프의 "메데이아" (2)

크리스타 볼프의 메데이아 해석 크리스타 볼프의 소설, "메데아"는 1996년에 간행되었다. 볼프는 메데이아 신화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신화에 의하면 메데이아는 남동생을 찢어 죽이고, 라이벌인 어느 여성을 살해하며, 급기야는 자신의 쌍둥이 아들까지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볼프는 이러한 내용을 수정하고, 메데이아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1) 볼프의 신화 수정의 내용일 뿐 아니라, (2) 소설의 주어진 현재와의 은밀한 관련성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통일된 독일에서 작가가 처한 상황을 은근히 암시할 뿐 아니라, 남성적 권위의 사회가 붕괴한 다음에 여성들이 어떠한 비참하게 피해 입는가? 하는 문제를 밝히고 있다. 소설은 11개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메데이아를 포..

47 Wolf 2018.08.03

서로박:볼프의 메데이아 (1)

크리스타 볼프의 메데이아 크리스타 볼프의 "메데이아. 목소리들 (Medea. Stimmen)"은 1996년 루흐터한트 출판사에 의해서 간행되었다. 1991년에 발표된 논란의 작품 "남아 있는 것 (Was bleibt)"이 발표된 지 꼭 5년만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씌어지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통독 이후 크리스타 볼프를 둘러싼 일련의 논쟁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동독 문학 연구" 제 14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볼프는 1990년까지 구동독을 대표하는 작가였다. 그러나 통독 이후에 크리스타 볼프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말하자면 작품 "남아 있는 것 (Was bleibt)"이 하나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 작품에서 크리스타 볼프는 슈타지에 대한 억압 구조를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서독의 보수적 평론..

47 Wolf 2018.08.03

서로박: 볼프의 "유년의 본보기" (2)

6. 넬리 조단의 가족들 그리고 그들의 삶: 볼프는 넬리 조단이 떠올린 정치적 사건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일반 사람들의 반응 등을 차례로 서술해나갑니다. 이를테면 유대인 박해와 유대인 상점의 유리창을 박살내던 수정의 밤 사건, 에스파냐에서 발생한 내전, 1939년 폴란드 침공 등은 분명히 정치적 사건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그저 신문에 보도될 뿐, 오더 강의 왼쪽에 위치한 소도시의 사람들에게 그다지 커다란 심적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1933년 독일 사람들이 언론의 자유를 외치고 광장에 모였을 때, 당국은 이들을 강제로 해산시켰습니다. 문제는 넬리 조단의 가족들이 이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을 표명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떠한 정치적 표현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았으며, 대중 집회에 적..

47 Wolf 2018.08.03

서로박: 볼프의 "유년의 본보기" (1)

1. 크리스타 볼프의 산문, 가상과 실재성의 혼합으로서의 이야기: 크리스타 볼프의 소설 『유년의 본보기Kindheitsmuster』는 1976년에 간행되었습니다. 크리스타 볼프는 『크리스타 T를 생각하며』를 발표한 지 8년 만에 장편 소설을 간행하였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게어하르트 볼프와 함께 집필한 시나리오, 『틸 오일렌슈피겔』 (1972) 그리고 단편 소설집 『운터 덴 린덴』(1974) 등이 발표되었습니다. 소설 『유년의 본보기Kindheitsmuster』는 내용상으로 그리고 형식적으로 『크리스타 T를 생각하며』와 많은 유사성을 보여줍니다. 가령 작품 속에는 자전적인 내용과 가상적인 내용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무엇이 자전적인 내용인지, 무엇이 가장적인 내용인지를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습니다. ..

47 Wolf 2018.08.03

볼프: 뷔히너 문학상 수상 연설문 (6)

오늘날 문학은 평화에 대한 연구이어야 합니다. 창작 행위란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더욱이 우리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생하게 알게 된 이후부터 더욱 그러합니다. 즉 우리의 두 나라는 -언젠가 “독일”이라고 불렸으며, 아우슈비츠로 인하여 그 이름이 더럽혀졌을 때, “독일”이라는 명칭은 강대국에 의해서 몰수당하고 말았습니다만- 엘베강의 양쪽에 존재하는 땅은 핵무기가 발사될 경우에 가장 먼저 소멸되리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이러한 소멸의 시기를 분명히 표시해주는 여러 지도들이 생겨나게 될지 모릅니다. 곰곰이 숙고하건대 카산드라 (Kassandra)는 트로야를 자기 자신보다 더 열렬하게 사랑한 게 분명합니다. 그녀는 트로야의 몰락을 예견하고, 이를 고향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전해주었습니다. 나..

47 Wolf 2018.07.19

볼프: 뷔히너 문학상 수상 연설문 (5)

이제 자리잡게 된 것은 두려움입니다. 그것은 그녀의 두려움이자 레옹세의 두려움이기도 하지요. 이제 그들은 끔찍한 두려움, 터부들 가운데 하나의 터부를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수많은 이름을 지닌 레옹세가 다른 인간을 사랑할 수 없다는 점, 그가 오로지 죽은 자만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 끔찍한 두려움이지요. 레옹세는 말합니다. 아름다운 시신이여, 그대는 밤 (夜)의 시커먼 구의 (棺布) 위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누워 있구나. 그 때문에 자연은 생명을 증오하고 죽음을 사랑하는구나. 수많은 이름을 지닌 로제타에게는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한 가지 선택밖에 없지 않습니까? 즉 강압에 의해서 죽은 방으로 들어가던가, 아니면 자청해서 죽은 방이 되어야 하는 일을 생각해 보세요. 그녀는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47 Wolf 2018.07.19

볼프: 뷔히너 문학상 수상 연설문 (4)

로제타는 자신의 권한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녀는 입을 열고 말할 수 없습니다. 슬픔도, 기쁨도. 사랑, 노동 그리고 예술 모든 것을 발설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능욕 당하게 내버려둡니다. 매춘 행위. 감금당하기. 미친 짓을 감내하기. 그녀는 한 송이 장미로서 괴롭힘 당하고 착취당합니다. 이중적으로. 주위 사람들은 아이를 배라고 그녀에게 강요합니다. 낙태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녀의 성을 마음대로 분석해내는 것을 허용합니다. 로제타의 몸은 무기력함의 그물 속에 칭칭 감깁니다. 신경질부리는 여자로 돌변합니다. 닳고닳은 못된 여자. 요부. 솥뚜껑 운전사. 그러다가 로제타는 노라 (Nora)처럼 인형의 집에서 떠나기도 합니다. 마침내 그녀는 로자 (Rosa)가 되어,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때 죽도록 얻어맞..

47 Wolf 2018.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