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Wolf

크리스타 볼프

필자 (匹子) 2019. 11. 8. 19:12

 

Bildergebnis für christa wolf

 

크리스타 볼프는 1929년 3월 18일 바르테 강변의 란츠베르크에서 상인 오토 일렌펠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나중에 유년의 틀, 혹은 "유년의 문양 (Kindheitsmuster)"에 반영되었습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그미의 나이는 16세였습니다. 사춘기의 나이에 어째서 전쟁이 발발했는지, 어떻게 유대인들이 핍박당했는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미의 가족들은 메클렌부르크로 이사했습니다.

 

Ähnliches Foto

 

란츠베르크의 모습. 건물들은 현대식으로 바뀌었으나, 주위의 풍경은 의구하기만 하다. 산천은 의구하나, 인걸은 간 데가 없습니다. ㅠㅠ

 

 

1949년: 아비투어 취득. 사회주의 통일당 (SED)에 입당했습니다. 당에 입당하는 것은 당시에는 거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1949년: 그미는 예나와 라이프치히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1951년: 독문학자이자 비평가로 활동하는 게어하르트 볼프와 결혼하였습니다. 두 딸이 태어납니다. 결혼한 몸으로 대학을 다닌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힘든 과정을 극복하고 볼프는 석사학위를 취득합니다.

Bildergebnis für leipzig university

 

최근에 완공된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멋진 건물. 독일 유학을 꿈꾸는 학생들은 구 동독 지역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은 서쪽이나 동쪽이나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1953년: 크리스타 볼프는 한스 마이어 Hans Mayer 교수에게서 공부했습니다. 석사 학위 논문, "한스 팔라다의 작품에 있어서의 사실주의 문제들"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53년: 월간 문예지 "신독일 문학 (Neue Deutsche Literatur)"의 편집 위원으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주로 문학 평론 작품이 발표되었습니다. 1960년: 루이스 퓌른베르크 (L. Fürnberg) 등의 조언을 얻어 평론 작업 대신에 창작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었습니다. 1962년: 베를린에 정주하여, 자유 문필가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1963년: 소설 "나뉘어진 하늘 (Der geteilte Himmel)"을 발표. 당으로부터 극찬을 받게 됩니다. 예술원의 하인리히 만 문학상을 받습니다.

 

 

크리스타 볼프의 남편, 게어라흐트 볼프는 비평가로 활약하면서, 1974년 3월 26일에 하인리히 문학상을 받는다. 왼쪽부터 게어하르트 볼프, 크리스타 볼프 그리고 소설가이지 하인리히 문학상 재단 대표 헤르만 칸트.  

 

 

1964년: 동독의 영화사 DEFA에서 "나뉘어진 하늘 (Der geteilte Himmel)"이 영화화되었습니다. 감독은 극작가 프리드리히 볼프의 아들, 콘라드 볼프가 맡았습니다. 1965년: SED 제 11차 총회에서 참석하여 주제 발표를 행합니다. 비판적 발언으로 중앙 위원회 후보자에서 제외되었습니다. 1967년: 단편 「6월의 오후」를 발표했습니다.

 

 

작가 프리드리히 볼프 두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부터 콘라드 볼프, 마르쿠스 볼프, 프리드리히 볼프.  콘라트 볼프 (1925 - 1981)은 구동독에서 크리스타 볼프의 나누어진 하늘을 영화로 만들었다. 마르쿠스 볼프 (1923 - 2006)는 나중에 구동독의 슈타지 본부장으로 일했다. 프리드리히 볼프 (1883 - 1953)는 의사로 그리고 극작가로 활약하였다. 세 사람은 크리스타 볼프와 동명이인일뿐, 인척 관계는 아니다.

 

1968년: 소설 "크리스타 T.를 생각하며 (Nachdenken über Christa T.)"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작품의 집필은 5년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작품은 당 관료들로부터 시랄한 비난을 당했습니다. 작품은 "우리"를 다루지 않고, "나"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독의 루흐터한트 출판사를 통하여 작품을 서독에 발표하게 했습니다. 여러 동독 작가들은 서독에 원고를 보내서 출판하게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북한 작가의 작품은 거의 간행되지 않았습니다. 홍명희의 임꺽정은 예외입니다.)

 

 

Bildergebnis für lesen und schreiben christa wolf

 

 

1972년: 에세이 모음집 "읽기 그리고 쓰기 (Lesen und Schreiben)"가 간행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산문에 대한 볼프의 신념이 자세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문학이 얼마나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하고 그미는 묻고 있습니다. 문학은 세상을 직접 변화시키지 않지만,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은근한 자극제로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게어하르트 볼프와 함께 시나리오를 위한 "틸 오일렌슈피겔 (Till Eulenspiegel)"을 간행하였습니다.

 

 

작가 자라 키르쉬와 함께 찍은 사진

 

 

1973년: 크리스타 볼프는 테오도르 폰타네 문학상을 수상합니다. 1975년: 대본 "틸 오일렌슈피겔 (Till Eulenspiegel)"이 영화화되었습니다. 1976년: 소설 "유년의 문양 (Kindheitsmuster)"이 발표되었습니다. 이로써 볼프는 구 동독 작가 가운데에서 처음으로 파시즘의 체험을 직접적으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하게 됩니다. 볼프 비어만이 1977년에 추방당합니다. 볼프는 다른 11명의 작가들과 함께 추방령에 항의하는 공개 서한을 당국에 보냅니다.

 

Bildergebnis für biermann ausbürgerung cartoons

 

비어만 추방은 구동독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측면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문제는 작가에 대한 국가의 탄압이 동독의 민주화를 이룩하게 하지 못하고, 동독의 몰락을 초래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1977년: 볼프는 자유 한자 시 브레멘 문학상을 수상합니다. 그러나 그미는 동독 작가 연맹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박탈당합니다. 1979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산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곳 (Kein Ort. Nirgends)"이 발표되었습니다. 1980년: 서독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게오르크 뷔히너 문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1982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시학을 강의하였습니다.

 

Bildergebnis für wolf kassandra cartoons

 

크리스타 볼프가 소설 카산드라와 함께 간행한 책 "소설 카산드라의 전제 조건". 볼프 문학의 강점은 어떤 문제를 포착하여, 이를 바탕으로 깊이 숙고한 다음에 집필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작품을 발표할 때 크리스타 볼프는 이와 관련된 글 내지 책을 꼭 별렬적으로 발표하였다.

 

 

1983년: 소설 "카산드라 (Kassandra)"를 발표하였습니다. 작품은 서독에서 20만부 이상 팔려나갑니다. 아울러 소설을 쓰기 위한 전제 작업으로 집필된 에세이집 "카산드라의 전제 조건"을 서독에서 간행햇습니다. 그러나 구 동독의 잡지 "의미와 형식" 지에서는 연재 중단 당하게 됩니다. 빌헬름 기르누스Wilhelm Girnus는 볼프를 신랄하게 비판하였습니다. 크리스타 볼프는 유명 인사가 되어, 여러 나라로부터 초빙되었습니다. 1984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시의 프란츠 나블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1985년: 함부르크 대학으로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Bildergebnis für stoerenfried cartoons

 

 

1986년: 방대한 에세이 전집 "작가의 차원 (Die Dimension des Autors)"이 루흐터한트 출판사에서 간행되었습니다. 1987년: 소설 "원전 사고 (Störfall)"가 간행됩니다. 여기서 크리스타 볼프는 체르노빌 사건과 자연 과학의 가능성 및 위험 등을 은근히 지적하였습니다.

 

Bildergebnis für stoerfall cartoons

 

 

1988년: 산문 "여름 작품 (Sommerstück)" 발표하였습니다. 1989년: 통일 문제에 관한 글들이 발표되었습니다. 동독 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대사관을 경유하여 나라를 떠날 때, 볼프는 이를 극구 말립니다. 크리스타 볼프는 알렉산더 광장에서 연설합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었을 때 젊은이들의 서독 행을 막았던 볼프는 이번에도 동독 젊은이들의 서방 세계의 이주를 반대하였습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1990년 독일이 통일되었습니다. 산문 "무엇이 남아 있는가 (Was bleibt)" 발표하였습니다.

Bildergebnis für vereinigung Deutschlands cartoons

 

동독은 서독에 흡수되었습니다. 이는 흡수 통일로 요약됩니다. 한국인들은 이러한 길을 걷지도 않을 것이고, 또한 걸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흡수 통일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집어삼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엄청난 난제를 안겨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구동독 지역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가난, 나치 정당의 출현, 많은 여성들의 서독 이주로 인한 동독 남성들의 공격 성향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1991년: 통일된 독일에서의 동독 문학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크리스타 볼프의 작품 "무엇이 남아 있는가?"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됩니다. 크리스타 볼프는 슈타지 연루 사건에 휘말립니다. 크리스타 볼프, 모든 공개적 발언대로부터 물러서게 됩니다.

 

Bildergebnis für streit ueber christa wolf cartoons

 

독일의 통일 - 그것은 비록 두 번씩이나 전쟁을 일으켰는데도 불구하고 문화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독일의 정치가들의 신념 그리고 끈기있는 외교적 능력의 소산이었다.

 

 

 

1992 - 1993년: 크리스타 볼프는 산타모니카 게티 센터에서 장학금을 받습니다. 1993년: 슈타지의 비공인 협조 요원 (Inoffizielle Mitarbeiterin)임을 공식 시인하였습니다. 1994년: 에세이 모음집 "연설"이 간행되엇습니다. 1996년: 소설 "메데아"가 루흐터한트 출판사에서 간행되엇습니다. 1998년“ 에세이 및 잡문 모음집 "타부로 가는길 (Auf dem Weg nach Taboo)"이 간행됩니다. 크리스타 볼프는 2011년에 사망합니다.

 

Ähnliches Foto

 

소설 메데아는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변호일 뿐 아니라, 소문과 구설수가 얼마나 커다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여성의 시각으로 신화 내지 역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명작입니다. 페미니즘적 역사 탐구의 서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타 볼프에 대한 기억

다음을 클릭하면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5분 20초)

https://www.youtube.com/watch?v=mGMZXosjHI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