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Wolf

서로박:볼프의 메데이아 (1)

필자 (匹子) 2018. 8. 3. 10:42

 

크리스타 볼프의 메데이아

 

크리스타 볼프의 "메데이아. 목소리들 (Medea. Stimmen)"은 1996년 루흐터한트 출판사에 의해서 간행되었다. 1991년에 발표된 논란의 작품 "남아 있는 것 (Was bleibt)"이 발표된 지 꼭 5년만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씌어지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통독 이후 크리스타 볼프를 둘러싼 일련의 논쟁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동독 문학 연구" 제 14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볼프는 1990년까지 구동독을 대표하는 작가였다. 그러나 통독 이후에 크리스타 볼프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말하자면 작품 "남아 있는 것 (Was bleibt)"이 하나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 작품에서 크리스타 볼프는 슈타지에 대한 억압 구조를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서독의 보수적 평론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러한 태도는 소극적이라고 한다. 특히 그미는 통독 이전에 사회주의 통일당에 대해 보다 강하고 비판적으로 행동해야 옳았다는 것이었다. 그미에 대한 비판은 작품에 대한 평가의 차원을 넘어서 작가 자신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확대되었다. 그렇기에 중세의 마녀 사냥을 방불케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크리스타 볼프는 잠시 독일을 떠나 미국에 체류해야 했다.

 

메데이아는 상기한 맥락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작품이다. 통일 문제 및 동서독인들 사이의 위화감 등이 은근히 드러나고 있다. 주인공 메데이아는 크리스타 볼프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작가는 신화 속에서 왜곡된 채 전해 내려오는 이른바 잔인하고 악랄하다는 여인, 메데이아를 새로운 각도에서 구제하려고 한다. 이는 작품 집필의 직접적인 동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메데이아는 볼프의 견해에 의하면 결코 잔인하고 악랄한 여인이 아니라, 오히려 잔인하고 악랄한 자들 그리고 권력욕에 의해서 피해 입는 여성의 전형으로 이해될 수 있다.

 

 

 

크리스타 볼프의 모습 

 

 

소설 속의 이야기는 메데이아의 목소리만을 통해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미의 목소리, 남편 이아손의 목소리, 제 3삼자의 목소리 (글라우케, 로이콘), 메데이아의 적 (아가메다, 아카마스)의 목소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로써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의 발언을 통하여 가급적이면 메데이아에 관한 공정한 상을 유추하도록 의도한다. 과연 메데이아는 고대의 극작가 유리피데스가 묘사한대로 정말로 그렇게 독랄한 여인이었던가? 이는 볼프의 견해에 의하면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볼프가 파악한 잘못된 사항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신화에 의하면 메데이아는 그리스인 이아손을 사랑한다. 이아손은 금량피를 찾아서 아르고 호를 타고 흑해로 항해한 그리스 장수였다. 그미는 이아손에 대한 사랑을 위하여 나라와 부모를 배신한다. 그 뿐 아니라 그미는 이아손이 금양피를 차지하도록 도와준다. 또한 그미는 아르고 호를 추적하는 그미의 남동생 압시르토스를 토막 내어 살인한다. 그러나 볼프의 소설 속에는 메데이아의 남동생은 메데아에 의해 살해당한 게 아니라, 콜히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밀명 하에 교묘히 암살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의 간계에 의해서 마치 메데이아가 그미의 동생을 토막내어 살해했다는 소문이 퍼진다. 메데이아는 고향 콜히스에서 억울하게 문책 당하고, 나라를 떠나왔는데, 다시금 그리스에서 동생을 잔인하게 죽인 살인자라고 문책 당한다. 이러한 정황은 통독 이후 크리스타 볼프의 논쟁을 연상시킨다. (볼프는 구 동독에서 비판적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온건하게 저항해 왔는데, 이러한 사항은 전적으로 무시되었다.)

 

(2) 신화에 의하면 메데이아는 이아손의 삼촌이자 욜코스의 왕 펠리아스를 (그의 딸을 통해) 살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볼프의 소설에서는 그다지 자세하게 언급되지 않고 있다. 대신에 다음의 비밀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즉 코린트의 왕 크레온은 자신의 첫째 딸 이피오네를 교묘히 살해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는 딸과 부인이 모권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메데이아는 상기한 비밀을 잘 알고 있으며, 은근히 비밀을 누설하려 한다는 이유로 숙청의 대상이 된다.

 

(3) 신화에 의하면 이아손은 코린트에서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메데이아를 배반한다. 그는 더 이상 메데이아를 사랑하지 않고, 코레온의 둘째 딸 글라우케에게 접근한다. 메데이아는 복수심에 가득 찬 글라우케에게 신부복을 보낸다. 글라우케가 신부복을 입는 순간 화염에 휩싸여 즉사한다. 그러나 볼프의 소설에서 글라우케는 너무나 심약하여 우울증에 빠져 있다. 그미는 우물에 빠져 자살하고 만다. 사람들은 메데이아가 글라우케가 죽은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4) 신화에 의하면 메데이아는 남편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두 아들을 살해한다. 그러나 소설 속에는 아카마스의 부하인, 코린트인이 메데아의 두 아들을 살해한다. 메데이아는 치료술 그리고 통찰력 등으로 인하여 코린트에서 어느 정도 지지 세력을 형성했으며, 위험인물로 간주되었다. 더욱이 코린트인들은 메데이아와 남편 이아손 사이를 갈라놓는 게 상책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로써 메데이아는 자식을 살해한 여인으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작품 "메데이아"는 신화적 내용이 얼마나 왜곡되어 전해 내려올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크리스타 볼프는 신화를 하나의 이상에 대한 예로 파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카산드라"의 경우와 거의 유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메데이아"가 콜히스 그리고 코린트로 구별되는 동서독 지역의 이질성, 코린트의 황금 만능주의 그리고 비판적 작가 내지 지식인에 대한 음해 등을 은밀하게 비판하고 있다면, "카산드라"는 미국과 소련 사이의 갈등 구조 내지 핵전쟁의 위기 등에 대해 강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메데아와 쌍동아 아들. 신화에 의하면 메데이아는 제이슨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두 아들을 살해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