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Wolf

서로박: 볼프의 "메데이아" (2)

필자 (匹子) 2018. 8. 3. 10:42

크리스타 볼프의 메데이아 해석

 

크리스타 볼프의 소설, "메데아"는 1996년에 간행되었다. 볼프는 메데이아 신화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신화에 의하면 메데이아는 남동생을 찢어 죽이고, 라이벌인 어느 여성을 살해하며, 급기야는 자신의 쌍둥이 아들까지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볼프는 이러한 내용을 수정하고, 메데이아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1) 볼프의 신화 수정의 내용일 뿐 아니라, (2) 소설의 주어진 현재와의 은밀한 관련성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통일된 독일에서 작가가 처한 상황을 은근히 암시할 뿐 아니라, 남성적 권위의 사회가 붕괴한 다음에 여성들이 어떠한 비참하게 피해 입는가? 하는 문제를 밝히고 있다.

 

소설은 11개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메데이아를 포함한 여섯 명의 인물은 제반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서술한다. 다시 말해 각자가 주관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실제로 있었던 오래된 과거의 사건의 복합체는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명백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독자는 하나의 사건이 어떠한 편견 그리고 선입견 없이 새로이 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유추하게 된다. 총 네 단락에 걸쳐 메데이아는 자신의 체험을 주관적으로 서술한다. 서술자가 뒤바뀌는 것은 사건을 복합적 관점으로 구명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연대기적으로 이어지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의도에 기인한다.

 

메데이아는 악녀도, 마녀도 아니다. 그미는 그저 날카로운 예지력 그리고 자연 의술을 익힌, 아름답고 영리한 여자일 뿐이다. 이아손과 함께 자신의 고향, 콜히스를 떠나, 코린트로 도주한다. 왜냐면 그미는 자신의 아버지, 아이에테스 치하의 정치적 상황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에테스는 확고한 권력을 장악하며 안락하고 축복받은 땅, 콜히스를 거의 파멸로 몰아넣는다. 광기에 사로잡힌 콜히스의 여성들은 아이에테스의 영원한 권력을 위해, 황태자로 책봉된 압시르토스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코린트에 도착한 메데이아는 가부장주의 사회의 정치적 메커니즘을 예리하게 통찰한다. 어느 날 그미는 어떤 은폐된 극비 사항을 알게 된다. 그것은 크레온 왕의 지배력과 관계되는 비밀이었다. 크레온 왕은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 친 딸, 이피오에를 몰래 살해했던 것이다. 메데이아가 국가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그후 메데아는 국가 체계를 위협하는 암적 존재로 낙인찍힌다. 메데이아의 학교 친구였던 아가메다는 메데아를 비방하는 흑색선전을 퍼뜨린다. 천문학자, 아카마스는 교묘한 술수에 말려들어, 경제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몰락한 공동체를 다시 복원하려고 한다. 그 때문에 아카마스 역시 메데이아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취한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에게 새로운 환경에 그냥 순응해서 살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진실로부터 등을 돌리며, 모든 것을 모른 체 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은 그미를 “살인녀”라고 손가락질한다. 다시 말해 콜히스의 황태자 압시르토스를 죽인 사람이 다름 아니라 메데이아라는 것이다. 메데이아와 이아손은 더 이상 서로 친밀함을 느낄 수 없다. 결국 메데이아는 코린트 왕궁으로부터 추방당한다. 코린트 사회의 어느 누구도 메데아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 심지어 공주 글라우케 역시 메데이아를 멀리한다. 주인공은 글라우케의 간질 발작을 고쳐준 적이 있었다.

 

메데이아는 예술가, 오이스트로스와 함께 퇴폐한 문명사회와는 전혀 다른 삶의 모델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얼마나 위험이 다가오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결국 체제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그미의 태도는 체제 밖으로 밀려나고, 결국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어느 코린트 남자는 몇몇 콜히스 여인들에 의해 거세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은 메데이아를 진범으로 몰아부친다. 메데이아는 코린트로부터 추방당한다. 공주, 글라우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후 메데이아가 끔찍하게 공주를 불태워 죽였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광분한 코린트 사람들은 폭도들로 돌변하여, 메데이아의 두 자식을 돌로 쳐죽인다. 나중에 메데이아가 스스로 자신의 두 아들을 죽였다는 헛소문이 나돌게 된다.

 

 

 

 

두 아들을 죽이는 메데이아

 

크리스타 볼프는 남성에 의한 신화 서술에 반대하며, 여성적 시각으로 전통적 신화 내용을 뒤집고 있다. 신화는 정치적 그리고 심리학적 의미로 해석된다. 여러 인물들의 독백을 통하여 은폐되거나 공공연한 모티브, 두려움 그리고 희망 사항 등이 백일하에 밝혀진다. 권력 유지를 위한 의사 소통의 메커니즘은 한 인간을 어떻게 속죄양으로 몰아가게 되는가? 하는 과정을 통해서 작동되고 있다. 개개인은 시스템 속에 편입되거나, 아니면 파괴될 뿐이다.

 

크리스타 볼프는 "카산드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사회의, 어떤 구조적 틀을 추종하고 있다. 그 하나는 콜히스요 다른 하나는 코린트이다.  독자는 여기서 사회주의 동독으로서의 콜히스 그리고 자본주의의 서독으로서의 코린트를 유추할 수 있다. 카산드라가 그리스로 향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듯이, 메데아 역시 그리스 지역인 코린트에서 비판자 내지 정치적 시스템에 의해서 희생당한다. 여기서 우리는 소설적 주체로서의 메데아를 작가 자신과 동일 인물로 간주할 수 있다. 가령 메데이아의 상황은 “서독” 코린트에 머물고 있는 크리스타 볼프 자신의 처지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메데이아를 이해하면서, 나아가 작가로서의 크리스타 볼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실제 현실 상황 그리고 성 (性)의 구도는 전체적으로 병들어 있으며, 권력에 의해서 훼손되어 있다. (사회가 도덕적으로 향상될 수 있는) 긍정적 잠재성은 오히려 동쪽인 콜히스에 자리하고 있다. 그밖에 페미니즘의 시각도 중요할 수 있다. 왜냐하면 두 지역 모두 남자들이 권력을 남용하며, 여성들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간에 개혁 의지를 지닌 후속 세대들이 정치적으로 억압당하고 있다. 메데이아의 눈에는 살해당한 콜히스의 왕자, 압시르토스 그리고 살해당한 코린트의 공주, 이피오에는 마치 남매처럼 비치고 있다.

 

가족적인 카테고리는 인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비참한 상황을 남자들과 여자들, 아버지와 딸 사이의 파괴된 가족관계로 귀결되고 있다. 작가는 다양한 등장 인물들의 독백으로 통해서 여성으로 요약될 수 있는 개인적 입장 그리고 남성으로 요약될 수 있는 공공연한 입장을 서로 대비시키고 있다. 나아가 소설은 여성이 어떻게 더 나은 사회 현실을 함께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