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는 자신의 권한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녀는 입을 열고 말할 수 없습니다. 슬픔도, 기쁨도. 사랑, 노동 그리고 예술 모든 것을 발설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능욕 당하게 내버려둡니다. 매춘 행위. 감금당하기. 미친 짓을 감내하기. 그녀는 한 송이 장미로서 괴롭힘 당하고 착취당합니다. 이중적으로. 주위 사람들은 아이를 배라고 그녀에게 강요합니다. 낙태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녀의 성을 마음대로 분석해내는 것을 허용합니다. 로제타의 몸은 무기력함의 그물 속에 칭칭 감깁니다. 신경질부리는 여자로 돌변합니다. 닳고닳은 못된 여자. 요부. 솥뚜껑 운전사. 그러다가 로제타는 노라 (Nora)처럼 인형의 집에서 떠나기도 합니다.
마침내 그녀는 로자 (Rosa)가 되어,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때 죽도록 얻어맞고, 운하에 내동댕이쳐집니다. 박해 당하다가 그녀는 억압당하는 계급 억압당하는 남자와 동등한 권한을 지니게 됩니다.
춤추어 봐, 로제타, 춤추어. 그녀는 춤을 춥니다. 이제 로제타는 마를레네 (Marlene)가 됩니다. 웃을까요? 그래요, 웃어볼게요./ 춤을 출까요? 좋아요, 그렇게 해볼게요./ 내가 당신을 홀딱 반하게 만들어볼까요? 그렇게 해보세요. 기꺼이 해볼게요.
사랑을 얻으려고 애쓰는 어떤 기이한 존재. 수많은 여성의 이름을 지닌 로제타는 자신에게 발생하는 모든 일에 대해 고분고분 순응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녀는 자신을 끝내 파멸시킵니다. 가령 사고하는 레옹세가 “주체”에 관해서 언급하면, 이것은 결코 실재하는 여자인 그녀를 지칭하지 않습니다. 로제타는 그에게 다만 수많은 객체들 가운데 하나로 전락해 있습니다. 따라서 레옹세의 인간형은 그러하지요.
바로 이 순간 그녀는 지금까지 행했던 자신의 일을 중단합니다. 마지막 견해를 얻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대신에, 차라리 자신을 부인해 버립니다. 이로써 그녀의 재능은 완전히 억압되고 맙니다. 대신에 여러분이 친숙하게 될 많은 여성들이 그러하듯이, 로제타는 사고하고, 시 쓰며 그림 그리는 남자를 배후에서 수동적으로 지원합니다.
레옹세, 너는 나를 사랑하니? - 나 원, 설마 그럴까? - 사랑의 고백이 거부당할 때, 그녀는 기이한 존재로 치부 당합니다. 이른바 자신이 완강한 여자라고 합니다. 그녀는 질투심과 쓰라림을 느낍니다. 절규를 터뜨리며, 그에게 외칩니다. 히스테리의 증세를 가차 없이 드러냅니다. 로제타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끝내 절망적으로 변하여 가스관을 열어젖힙니다.
전쟁 당시 로제타는 생산 도구와 파괴 도구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존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남자를 대신해서 싸워야 했으니까요. 전쟁이 끝난 뒤에 그녀는 극단적 자세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즉 자신이 남자와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제 자신이 남자와 같다는 점을 남자에게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실제로 로제타는 마치 남자처럼 일합니다. 그녀는 바로 진보입니다. 어떤 진보가 실제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습니까? 예컨대 로제타와 같은 여성은 밤낮으로 남자와 함께 기계 앞에서 일합니다. 여성은 남자와 함께 강의실에서, 협의회, 대표자 회의의 테이블에 앉아 있습니다. (물론 여성의 수는 대개의 경우 소수에 불과합니다.)
로제타는 거의 남자처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시를 씁니다. 이때 첫 번째의 아주 섬세한 틈이 주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민감한 특성의 도움으로 이를 기술하곤 하지요. 물론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지만 말입니다. 그녀는 남성이 형성해 놓은 사고 패턴 내지 남성적 관찰의 패턴을 그대로 고수하기도 합니다. 또한 남성의 형식을 직접 채택하기도 합니다. 가령 남성들은 그들의 세계에 관한 느낌과 고통을 나름대로의 어떤 형식을 통해서 묘사하지 않았습니까? 이로써 로제타는 인류 문명의 맹점으로부터 벗어납니다. 그러나 맹점은 끝내 포착됩니다. 인쇄할 만하고, 비평가의 글에 거론될 만합니다. 누군가 어느 작가에게 “재능”이라는 단어를 붙여줍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문학상을 받을 만하지요.
과연 사람들이 로제타의 분열된 느낌을 신뢰하게 될까요? 그렇지만 그녀는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깨닫기 위하여 많은 것을 시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어째서 로제타가 아직도 여전히 낯선 느낌을 품고 있는가? 하고 의아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느낌이 어떠한 이유에서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칭찬과 비난은 어느 특정 여성 작가를 염두에 둔 게 아니라, 언제나 로제타에 대한 다른, 잘못된 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정부 (情婦) 내지 첩과 같은 단어를 생각해 보세요.
로제타는 레옹세의 요새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어처구니없게도 요새를 지배하는 실정법에 굴복하고 맙니다. 이는 하나의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을 구제하려고 애쓰다가 결국 자신에 대한 몰이해를 자초한 셈입니다. 그래, 로제타는 자유를 찾기 위해서 결국 새로운 굴종과 부자유 속으로 연루되고 맙니다. 자기 자신의 고유성을 되찾기 위해서 찾아간 그곳에서 그녀는 새로운 유형의 자기 부정을 강요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로제타의 의지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학문의 시대에 모든 희망을 걸었습니다. 말하자면 레옹세의 합리성을 전적으로 신뢰하였으나, 그녀는 자신의 몸이 비합리주의의 체제 속에 팽개쳐져 있다는 사실만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안전한 곳으로 도주했지만, 그것은 학문의 소견서로도 건드릴 수 없는 비합리적인 특징이 난무하고 있었으니까요. 로제타는 스스로 고백합니다. 시간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발의 박자에 맞추어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로제타는 기이할 정도로 완강하게, 때로는 아주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스스로 진지하게 행동하려고 시도합니다. 이때 그녀는 거대한 저항에 부딪칩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진지한 문제가 발생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진지한 태도로써 로제타를 강압적으로 보호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지금까지 무기의 시스템, 거대하고도 첨단 무기의 시스템을 구성해내는 일 등을 한 번도 상세히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시스템은 유행 지나간 개별적인 죽음을 구태의연한 것으로 돌변하게 했습니다. 이디 그 뿐이겠습니까? 첨단 살육의 군사적 시스템은 이미 일곱, 여덟 번, 스무 번에 걸쳐서 우리 모두를 방사 소멸시켰고, 가루 내지 먼지로 화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은 수많은 이름을 지니고 있는 로제타에게 어떠한 비밀스러운 가르침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전 세상을 긴장케 하는 군사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전략 등과 같은 비밀스러운 의미는 그녀에게 한 번도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녀는 여러 인간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끔찍한 냉전의 균형이 존속되게 하는 어느 인간은 완전히 탈진한 상태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습니다. 세상의 잘못된 경제 구조 내지 빈익빈 부익부를 조장하는 인간은 많은 사람들에게 심장마비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제 3세계에 빈곤을 나누어주는 인간은 피곤한 몸으로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로제타는 이러한 인간들을 바라보면서, 죽도록 자신의 몸을 혹사하고 있습니다. 혹사당하는 게 그녀의 몸뿐이겠습니까?
춤추어 봐, 로제타, 춤추어. 늦게, 어쩌면 너무 늦게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로제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친애하는 신사, 친구들, 동료 여러분, 혹시 당신들은, 동지들이여, 행여나 너희는 가벼운 발에 비해서 땅바닥이 시간이 지나는 사이에 약간 얇게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로제타는 아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오늘날 그녀는 실제로 어떠한 감사도 드러내지 않을 테니까요. 로제타는 대열에서 빠져 나와서 춤을 출 것입니다. 그녀는 무기력함의 그물 바깥으로 자신의 몸을 추락하게 할 것입니다. 마치 스스로 얼마든지 그만 둘 수 있는 관광 여행인 것처럼 그렇게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그물코는 마치 꿈처럼 그렇게 세밀한 소재로 짜 맞추어진 게 아니던가요? 소외된 사고의 악몽을 생각해 보십시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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