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Wolf

볼프: 뷔히너 문학상 수상 연설문 (6)

필자 (匹子) 2018. 7. 19. 21:41

오늘날 문학은 평화에 대한 연구이어야 합니다.

창작 행위란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더욱이 우리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생하게 알게 된 이후부터 더욱 그러합니다. 즉 우리의 두 나라는 -언젠가 독일이라고 불렸으며, 아우슈비츠로 인하여 그 이름이 더럽혀졌을 때, “독일이라는 명칭은 강대국에 의해서 몰수당하고 말았습니다만- 엘베강의 양쪽에 존재하는 땅은 핵무기가 발사될 경우에 가장 먼저 소멸되리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이러한 소멸의 시기를 분명히 표시해주는 여러 지도들이 생겨나게 될지 모릅니다.

 

곰곰이 숙고하건대 카산드라 (Kassandra)는 트로야를 자기 자신보다 더 열렬하게 사랑한 게 분명합니다. 그녀는 트로야의 몰락을 예견하고, 이를 고향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전해주었습니다. 나는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혹시 그리스 그리고 트로야는 제 나라 사람들에게 그다지 사랑 받지 못한 게 아닐까요?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고대의 두 나라는 -마치 사랑 받지 못한 자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을 그리고 상대방을 파괴시키려는 성향으로 기울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나는 이 점을 강하게 반박하기 위하여 그렇게 묻고 있습니다. 비록 터무니없게 보일지라도 나는 그러한 물음과 반대되는 사항을 증명하기 위해서 문학을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문학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느 민족이 오로지 문학을 통해서 자신의 고향을 획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를 잘 알고 있지요. 그럼에도 나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어진 상황이 어떠한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제안은 -설령 핵심에서 가장 빗나간 것이라 하더라도- 허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학은 죽음을 강요하는 카드 앞에서 자신의 고유한 카드로 반론을 제기해야 합니다. 문학은 지역과 나라를 묘사하고 인간과의 관련성에 관해서 정확히, 정당하게 그리고 당파적으로, 고통에 사로잡힌 채, 비판적으로, 헌신적으로, 두려움에 가득 찬 채 그리고 즐겁게, 풍자적으로, 반항적으로 그리고 사랑스럽게 묘사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죽음의 카드에 의해서 근절되었지만, 구조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독일인들의 문학은 이제야 비로소 아무런 결실 없이 머물러 있어서는 이니 될 것입니다. 기쁨과 슬픔을 다룬 문학적 작업들은 두 개의 독일 국가에서 지금까지 삼십 년 동안 무언가를 이룩해내었습니다. 그래, 문학이 제기한 이 세상의 진리는 마침내 거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켜, 두 독일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어야 할 것입니다. 문학은 지상의 모든 것을 존속시키고 안전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이제 한 번, 단 한번만이라도 진지하게 언급되고, 모든 다른 영역에 원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의 말을 밝은 광기라고 말하겠지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렇듯 나에게는 -병리학적 언어로 말하자면- 병에 대한 확실한 견해 내지는 인식이 결핍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이성의 어느 어둡고도 암울한 측면의 제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이러한 밝은 광기에 바치고 싶습니다. 어쩌면 작전 참모부 요원으로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어느 도시에 비해, 아주 정겹고도 정확하게 묘사된 어느 도시에 대해 십자가를 긋는 일은 더욱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친밀하게 여길 수 없는, 나 자신의 고유한 고향의 도시를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 묘사해야 했던 유년 시절의 도시, 심한 굴욕을 당했던 장소 혹은 첫 사랑을 체험했던 도시가 어느 순간 파괴된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제 여러분은 나의 순진함, 나의 비이성적 태도에 대해 미소를 짓고 계시는군요. 뷔히너는 단편 렌츠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습니다. 그는 아주 이성적으로 나타나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다름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것을 행했다. 그렇지만 그의 내면 속에는 어떤 끔찍한 공허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공포도 갈망도 느끼지 않았다. 그의 현존재는 자신에게는 하나의 필연적인 짐이었다.

 

믿음과는 거리가 먼 땅이라 하더라도 작가는 -비록 자그마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게 될 것입니다. 나무에 관한 대화, , 지구 천국 인간에 관한 대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러한 시도는 내가 파악하건대 세계의 몰락에 관한, 아주 정신 나간 계산보다는 훨씬 현실주의적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도되어 있다라는 의미를 담은 진실이 모든 측면에서 분석되고 연구된 다음에는, 어떤 다른 언어가 출현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아마도 결코 허례허식과는 다른, 신선한 언어들을 조심스럽게 발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언어들 가운데 어떠한 것도, 설령 가장 정직한 의미를 담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지막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떠한 것도 최후의 단어가 아니기를 굳게 희망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껍질 역시 완전히 벗겨져, 찢겨질 게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