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53

서로박: 장 폴 사르트르의 더러운 손

친애하는 Y, 앙가주망 하면, 당장 떠오르는 작가가 한 사람 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니라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프랑스의 문호,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e, 1905 - 1980)입니다. 그는 소설과 에세이 등, 장르를 넘나들면서 집필 활동을 시도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정치 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1960년 아내이자 정치적 동지인 시몬느 보바르 Simone de Beauvoir와 함께 쿠바로 가서 단독으로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와 면담하기도 하였습니다.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 사르트르는 처음에 여러 가지 이유로 문학상 수상 거부의 제스처를 취하였습니다. 이는 제 3세계의 정치범 석방 문제 그리고 노벨 문학상 선정의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함이었지요. 오..

33 현대불문헌 2019.04.29

서로박: 마르키 드 사드의 소돔의 120일

친애하는 J, 오늘은 이른바 “사디즘”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프랑스의 기괴한 소설가, 도나시엥-알퐁스-프랑스와 마르키 드 사드 (D. Marquis de Sade, 1740 - 1814)의 소설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것은 『소돔의 120일 혹은 방종의 학교 Les Cent-Vingt Journées de Sodome ou L’École du Libertinage』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1785년 감옥에서 집필되었는데, 이 원고는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04년에야 이반 블로흐 Iwan Bloch라는 사람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반 블로흐는 우연히 발견한 누렇게 찌든 원고 뭉치를 읽고, 놀라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하여 5년 후인 1909년에 이 작..

33 현대불문헌 2019.04.20

서로박: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23. 사랑하는 알베르틴느, 그미는 이 세상에 수없이 많다.: 제 1권, 스완의 이야기는 개성이 어떻게 다층적이고 불균형적으로 변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주인공의 의식은 주어진 현재에서 어떤 다른 여성을 동시에 고찰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랑하는 임은 주인공의 의식 속에 교착되고 중첩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바라보던 그미의 모습은 다른 여자의 모습으로 떠오릅니다. 프루스트는 잠든 알베르틴느를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그미를 묘사합니다. “알베르틴느라는 이름을 지닌 많은 처녀 가운데 내가 사귄 처녀는 한 명의 알베르틴느였다. 그런데 일순간 수많은 알베르틴느가 나의 침대 위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게 아닌가? (...) 그미가 머리를 흔들 때마다 내 눈에는 마치 새로운 처녀가 계속..

33 현대불문헌 2019.04.20

서로박: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19. 시간의 흐름과 현실의 변화: 상기한 사항을 고려할 때 프루스트의 문학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시간 개념입니다. 장편 소설 속에서 시간 개념은 확장되어 있어서, 외부적 공간에 해당하는 파리 그리고 몇몇 주위의 공간들은 아무런 변화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변화되고 발전됩니다. 말하자면 마르셀은 작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상장했듯이, 세상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형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작가는 변화된 현실상을 세부적으로 서술합니다. 그것은 전쟁 이전의 무대에서 전개되던 변형되기 전의 옛 모습과 같습니다. 이제 전기가 사용되기 때문에, 과거에 어둠을 밝히던 석유램프는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달리기 ..

33 현대불문헌 2019.04.20

서로박: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13. 성장하는 부르주아 계급: 귀족과 시민은 정치적으로는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이들 사이의 묘한 대립은 살롱의 대화에서 간간이 타나나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계급은 어떻게 해서든 지적인 엘리트와 인간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결속을 다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유명한 의사 코타르는 베르뒤링 마담의 살롱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살롱 사람들은 제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약 15년 동안 이어온 드레퓌스 사건의 여파로 거대한 정치적 사회적 전복을 획책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입지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 게르망트 출신의 왕자를 어느 귀족 처녀와 혼인시키려고 합니다. 처음에 살롱 사람들은 두 사람 사이의 결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겼는데,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면 혼인은 그들의 뜻대로 성사되고 맙..

33 현대불문헌 2019.04.20

서로박: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8. 레즈비언, 알베르틴느에 대한 사랑: 일찍이 찾아온 육체적, 심리적 고통은 여러 가지 양상으로 마치 주인공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마르셀은 우연한 기회에 시민 계급 출신인 처녀, 알베르틴느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바로 이 순간부터 알베르틴느에게 깊고도 강렬한 연정을 느끼게 됩니다. 주인공은 그미를 만나 구애하지만, 알베르틴느는 이미 다른 여자 친구에게 마음을 바치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미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임이 있었습니다. 알베르틴느의 연인은 남자가 아니라, 여성이었습니다. 마르셀은 일시적으로 다음과 같이 결심합니다. 그미와 결혼하여, 알베르틴느의 어떤 병적 성향을 치유해주리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미는 기이한 동성연애의 증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미는 자신의 이러한 마음을..

33 현대불문헌 2019.04.20

서로박: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1. 시간과 망각 그리고 유년: “지난 날 청운의 뜻을 품었지만/ 헛디뎌 넘어지고 백발이 되었네./ 누가 알까, 맑은 거울 속을?/ 두 사람의 나는 서로를 측은히 여기네. 宿昔青雲志 蹉跎白髪年 誰知明鏡裏 形影自相憐” (장구령의 시) 친애하는 J, 우리는 가진 것 없이 태어나, 평생 두 손을 놀리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무언가를 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구하는 것은 좀처럼 손아귀에 잡히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 속을 들여다보니, 늙은이 한 사람이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동산에서 뛰노는 아이인데, 출세의 뜻은 꺾이고, 몸만 볼품없이 늙어버렸습니다. 그래, 시간은 끝없이 스치는 화살과 같습니다. 나와 함께 뛰놀던 아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흐르는 시간의 화..

33 현대불문헌 2019.04.20

서로박: (요약)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

피에르 A. F. 쇼데를로 드 라클로 (Pierre A. Fr. Choderlos de Laclos, 1741 - 1803)의 서간체 소설,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는 1782년 익명으로 파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총 175개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는 소설은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며,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고 도덕적으로 몹시 분개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독자들은 익살스럽고도 음탕한 텍스트에 익숙해 있었는데도, 그러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작가는 루소의 「엘로이즈의 새로운 소식 (Nouvelle Héloїse)」에 실린 모토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내 시대의 도덕을 고찰한 뒤에, 나는 이 편지들을 공개하였습니다.” 사실 드 라클로는 방종한 성 (性)생활을 묘사한 게 아니..

33 현대불문헌 2018.12.31

서로박: 클로델의 '비단 신발' (2)

5. 흑인 군인, 카미유와의 거친 사랑 그리고 이로 인한 고통: 다시 10년의 세월이 지난 뒤 프루에즈는 로드리고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냅니다. 편지 속에는 힘든 처지에 처한 자신을 구조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프루에즈는 카미유를 격정적으로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스파냐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와 결혼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카미유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미를 괴롭히면서, 변태적 향락을 요구했습니다. 프루에즈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로드리게에게 구원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카미유는 흑인 하녀, 조바바라와 마찬가지로 유럽의 문화권에서 벗어난 자로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모노스트라토스를 방불케 하는 인물입니다. 프루에즈의 편지는 불행하게도 다른 사람에게 ..

33 현대불문헌 2018.09.04

서로박: 클로델의 '비단 신발' (1)

1. 폴 클로델의 삼부작: 『비단 신발Le Soulier de satin』는 1943년 11월 27일 상당부분 축약된 상태로 파리의 코메디 프랑세 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주제 상으로 그리고 소재 상으로 바로크 특유의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전통적 극형식의 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작품은 총 4일 간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야기는 비단구두를 둘러싼 여러 에피소드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극작가가 추구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은밀히 드러납니다. 그렇기에 진보적 세계관을 지닌 평론가들은 클로델의 작품을 가독교 문학의 아류라고 혹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성은 마지막 작품 「발레덴의 바람 아래에서Sous le vent des îles b..

33 현대불문헌 2018.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