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53

서로박: (1) 사르트르의 "존경스러운 창녀"

친애하는 S,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인습의 영향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습이 한 인간의 세계관을 형성하게 할 정도로 막강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습이란 이른바 사회적 통념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1930 - 2002)의 전문 용어로 표현하자면 아비튀스habitus의 개념과 일맥상통합니다. 지금 여기의 통념은 다수의 사회 구성원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무엇보다도 교육을 통해서 규정되고 확정되는 특정한 견해를 가리킵니다. 한국 사회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일류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일류가 아니라고 단정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SKY 대학출신자들이 무조건 영리하고, 탁월한 능력..

33 현대불문헌 2023.01.14

서로박: (3) 몽테를랑의 "젊은 처녀들"

(앞에서 계속됩니다.) 13. 소설 속에 묘사되는 남성의 심리: 사부작 소설은 20세기 초 프랑스에 살던 젊은 여성들 그리고 엘리트 의식을 지닌 남성 작가의 무의식적 욕망을 꿰뚫고 있다. 그런데 작품에는 남성들의 이기주의적 자세, 여성에 대한 경멸하는 시각 그리고 결혼제도에 대한 비판 등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수많은 남성 독자들은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을 돌이켜볼 정도로 주인공 코스탈이 자신과 유사하다고 느끼곤 했다. 그렇다면 『젊은 처녀들Les jeunes filles』의 주제는 남성적 일방적 오만 그리고 편견으로 요약될 수 있을까? 이 문제와 관련하여 몽테를랑은 자신이 주인공 코스탈과 동일시되는 데 대해 반기를 들었다. 코스탈은 자신과는 다른 남성적 주체라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작가의 냉소적 태도..

33 현대불문헌 2023.01.05

서로박: (2) 몽테를랑의 "젊은 처녀들"

(앞에서 계속됩니다.) 7. 가톨릭 방식의 결혼에는 이혼이 없다.: 세 번째 소설의 제목인 『선함의 악령Le démon du bien』은 그 자체 “형용모순oxymore”의 표현이다. 코스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처해 있다. 결국 그는 동정심과 긍휼의 감정 속에 자신을 내맡길 수밖에 없다. 솔랑주는 주인공과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정작 동침만을 거부하고 있다. 그럴수록 코스탈의 열정은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를 뿐이다. 이때마다 솔랑주는 자신과 결혼식을 올리자고 요구한다. 그러나 코스탈로서는 가톨릭 방식으로 그미와 혼인하는 게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가톨릭 방식의 결혼은 나중에 절대로 무효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의 결혼은 그의 마음에 하나의 부자유의 끈으로 다가온다..

33 현대불문헌 2023.01.03

서로박: (1) 몽테를랑의 "젊은 처녀들"

1. 위풍당당한 마초, 여성에 대한 경멸 그리고 인종주의: 이것은 앙리 드 몽테를랑 (Henri de Montherlant, 1895 – 1972)과 그의 문학에서 일차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다. 몽테를랑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의용군으로 참가하였다.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발표된 소설 『꿈』(1922)에서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전쟁 영웅이 묘사되고 있다. 남성적 기개를 지닌 작가는 젊은 시절에 투우 경기에 몰입한 바 있으며,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소설 『소년들』이 2018년에 유정애의 번역으로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간행된 바 있다. 몽테를랑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독일의 작가, 에른스트 윙거Ernst Jünger를 닮았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지키는 강인..

33 현대불문헌 2023.01.03

서로박: (2) 유르스나르의 "검은 작품"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소설의 구도는 연금술의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소설은 마치 교양 소설과 같은 특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 단락으로 나누어집니다. 세 단락은 마치 연금술의 세 단계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가령 연금술의 첫 번째 단계인 흑(黒)은 방랑의 삶을 가리키고, 두 번째 단계인 백 (白)은 정적의 삶을 가리키며, 연금술의 세 번째 단계인 적(赤)은 영어(囹圄)의 삶을 지칭합니다. 소설의 이러한 구도는 자유에서 구속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현상적 세계에서 암흑의 세계로 변화되는데, 우리는 여기서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파고들려고 하는 작가의 관점을 추체험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연금술, 학문의 연구 그리고 깨달음으로 향한 노력은 신에게 자신을 의탁하려는 믿음과는..

33 현대불문헌 2022.12.24

서로박: (1) 유르스나르의 "검은 작품"

1. 유랑하는 작가, 영원한 이방인: 친애하는 Y, 오늘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Marguerite Yourcenar, 1903 – 1985)의 소설 한 편을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그미는 벨기에 출신의 미국 작가인데, 본명은 마르그리트 드 크레이엥쿠르입니다. 유르스나르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으므로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성장했습니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아버지와 함께 유럽 그리고 중동 지방에서 유랑하면서 살았습니다. 1935년 산문시집 『불Feux』을 간행했습니다. 이때 편집자였던 앙드레 프레노 (André Fraigneau, 1905 – 1991)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앙드레는 동성연애자였기에 그미의 사랑 고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2. 자신의 반려를 동성에서 찾다.: 1937년..

33 현대불문헌 2022.12.23

서로박: 바타이유의 C 신부 (2)

(앞에서 계속됩니다.) (8) 헐떡 수캐의 일기: 로베르의 방황은 이제 시작됩니다. 낮이면 그는 “지킬 박사”로, 밤이면 “하이드 씨”로 변신하여 살아갑니다. 땅거미가 내리면, 로베르는 몰래 성당을 빠져나와, 밤길을 마치 헐떡 수캐처럼 싸돌아다닙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밤 그는 드디어 용기를 내어서, 에포닌을 찾아갑니다. 샤를르와 함께 있던 에포닌은 초인종 소리에 바깥을 내다봅니다. 어느 성직자가 “물 쥐” 한 마리가 되어, 문 앞에서 서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에포닌은 몹시 기뻐합니다. 자신의 유혹이 드디어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미는 샤를을 떠나보낸 뒤에, 로베르를 들어오게 하여 정을 통합니다. 그날 밤 로베르는 그미의 고객이 아니라, 하룻밤의 연인이었습니다. (8) 바람난 성직자: 친..

33 현대불문헌 2022.12.06

서로박: 바타이유의 C 신부 (1)

(1) 포르노인가 예술 누드인가?: 친애하는 R, 오늘은 프랑스의 전위 작가이자 문화 비평가로 활약했던 조르주 바타이유 (Georges Bataille, 1897 - 1962)의 장편 소설 “C. 신부(L'abbé C.)”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바타이유의 작품들은 생전에 많은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죽기 전에 바타이유는 “나의 작품들은 추잡한 상업적 포르노”가 아니라, “겉으로는 음탕한,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예술 누드이다”라고 항변한 바 있습니다. 소설의 발표 시점이 1950년인 것을 고려한다면, 작품은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작성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어떤 흥미진진한 심리적 투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친애하는 R, 소설을 읽는 독자는 극단으로 치닫는 이야기에 가슴 설레지..

33 현대불문헌 2022.12.06

서로박: 푸코의 '성의 역사' (3)

10. 고대 그리스인들의 성: 마지막으로 『성의 역사』 제 4권에 관해서 언급하려고 합니다. 철학자는 초기 기독교의 성의 윤리를 중점적으로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적 갈망에 대한 해석과 관련되는 물음이기도 합니다. 17세기 이래로 성은 수많은 발언을 낳게 하였으며, 지식의 물신 숭배적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1984년에 푸코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성 문제를 논의할 때 개개인에게 유효한 어떤 방법론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과연 쾌락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하고 묻습니다. 뒤이어 푸코는 고대 사회로 자신의 시각을 돌리고 있습니다.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의 성적 향유를 즐겼습니다. 그들의 육체와 사랑에 관한 자극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조..

33 현대불문헌 2022.06.17

서로박: 푸코의 '성의 역사' (2)

5. 권력의 차원에서 이해되는 성: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성을 활용할 수 있는 권력의 전략을 세워나가는데, 이에 대한 전제조건이 서서히 실제 현실에서 관철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전략의 접점으로서 가족이라는 체제를 고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체제를 통해서 가족 구성원들의 성을 억압하거나, 그들의 성을 향유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가부장주의의 기본적 토대가 은밀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체제는 18세기 중엽부터 새로운 권력 유형을 도입하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생물학은 그 자체 성을 조절할 수 있는 권력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이를테면 생물학적 권력은 현대에 이르러 인구 조절이라든가 육체와 관련되는 제반 정책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게 ..

33 현대불문헌 2022.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