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36

서로박: (2) 벤야민의 역사 철학 테제

(앞에서 계속됩니다.) 2. 파국 앞에서의 진보에 관한 사고 미리 말씀드리면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는 두 가지 특징을 지닙니다. 첫째로 그의 ”역사 철학 테제“ 속에는 이미 언급했듯이 모든 사안에 관여하지만, 어떤 무엇을 선택하지 않는 태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벤야민의 역사 철학 테제는 유대주의냐, 마르크스주의냐? 에 대한 망설임을 우의적으로 표현한 글인지 모릅니다. 소논문에서는 우유부단함과 숙고의 흔적이 너무 강해서, 저자의 명징한 견해를 도출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둘째로 역사 철학 테제는 파시즘의 폭력과의 상관성에서 이해되어야 하지, 모든 사회에 통용되는 보편적 역사 철학의 사고라고 확장될 수는 없습니다. 작품에서는 신학 그리고 역사적 유물론의 관계, 역사주의, 특히 사민당 사람들의 진보적..

25 문학 이론 2024.04.29

서로박: (1) 벤야민의 역사 철학 테제

“벤야민은 ‘모든 것을 지니지만, 어떠한 무엇도 소유하지 않는다. Omne habentes, nihil possidentes’라는 거리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필자) 1. 머뭇거리는 뷔리당:  20세기 초 유럽의 예술 사조는 일직선으로, 혹은 지그재그 방식으로 이어졌는데, 19세기 말에 이르러 복합적으로 뒤엉켜 사통팔달로 퍼져 나갔습니다. 산업의 성장과 식민지 개발로 인하여 산업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으며, 많은 실험적 예술 사조들이 동시적으로 한꺼번에 출현하였습니다. “세기 말fin de siècle”의 예술적 경향, 표현주의, 다다이즘, 상징주의는 물론이며, 아방가르드 운동은 문학예술에서 많은 자극을 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국가 중심의 자본주이, 도시 중심의 경제 구도와 대도시의 형성,..

25 문학 이론 2024.04.29

박설호: (25) 희망의 원리. 제 5차 강의

(24에서 계속됩니다.) 20. 『희망의 원리』에 도사린 문제점 (1): 첫 번째로 “사회주의”의 이상은 하나의 도덕적 당위성입니다: 만인의 자유와 평등. 기존 사회주의는 구체적 실천의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하였습니다. 소련, 중국, 북한 등을 생각해 보세요.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는 과거의 문헌이므로, 국가적 차원의 사회주의 몰락에 대해 확실하게 답변하지는 못합니다. 즉 기독교의 이상은 오늘날 존속되고 있지만, 사회주의의 이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천년에 걸친 교회의 수많은 타락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생명력을 유지하는 까닭은 종교가 항상 갈망의 차원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사람들은 기존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사회주의의 이상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면 사회주의는 갈망의 차..

27 Bloch 저술 2024.04.26

(명저 소개) 최문규 교수의 '파편과 형세'

이 책은 세부적 사항을 치밀하게 분석한다는 점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의 제목은 저자인 최문규가 추구하는 연구 방향 그리고 근본적 성향을 분명하게 간파하게 합니다. “파편”은 특수한 부분, 미완성의 단장 등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전체, 객관 그리고 보편성과 반대되는 특징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예술과 역사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부분품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역사의 불연속성과 관련되는 단어입니다.  “형세Konstellation”는 별자리의 박힌 형태 내지는 짜임 관계를 지칭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최문규의 벤야민 연구가 불변하는 상태 내지는 순간, 어떠한 변화를 용인하지 않는 파르메니데스의 불변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만물은 변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시간적 변화라든가..

1 알림 (명저) 2024.04.24

박설호: (24) 희망의 원리, 제 5차 강의

(23에서 계속됩니다.) 14. 문제는 재기억이 아니라, “새로운 무엇Novum”이다.: 블로흐에 의하면 훌륭한 최고 상태는 최종점Ultimum에 이르러 완성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블로흐는 재기억 대신에 전선 근처에 서성거리는 새로운 무엇을 강조합니다. 희망이라는 기대 정서는 플라톤의 “재기억Anamnesis)” 이론을 부정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지금까지의 철학은 블로흐에 의하면 “근원”, 즉 과거에 있었던 진리를 마치 조상님처럼 숭배해 왔습니다. 블로흐는 플라톤으로부터 아우구스티누스, 헤겔을 거쳐서 니체에 이르기까지 근원 중심주의를 비판하였습니다. 대부분 사상가는 플라톤의 재기억 이론을 제반 철학적 인식의 토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Bloch, PH: 234f.) 이로써 미래는 중시되지 않았습..

27 Bloch 저술 2024.04.22

서로박: 야콥 반 호디스의 시

유대인 시인 야콥 반 호디스 (Jakob van Hoddis, 1887 - 1942)는 독문학사에서 [당대의 시인이었던 슈테판 게오르게, 게호르크 하임, 게오르크 트라클 등에 가려]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다. 그의 시적 특징은 초기 표현주의에 입각한 격정, 절망과 좌절 그리고 극심한 우울 속에 담긴 자아 상실 의식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사항은 유태 여류 시인인 엘제 라스커-쉴러를 몹시 닮은 것 같다. 시 “세계의 종말”은 야콥 반 호디스의 대표작이며, 나아가 초기 표현주의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시민의 뾰족한 머리에서 모자가 날아가고, 공중에서는 온통 마치 외침 같은 게 울려퍼진다, 기와들이 무너져 내려, 두개로 쪼개지고, 해안에는 -우리는 읽는다- 밀물이 솟구친다. 폭풍..

21 독일시 2024.04.20

(명저 소개) 완강함 속의 부드러움. 홍세화의『결: 거칢에 대하여』

2020년에 간행된 홍세화의 『결: 거칢에 대하여』 (한겨레 출판 2021)는 단순히 시대 비평을 넘어서, 인간 홍세화의 내적 성찰을 진솔하게 담고 있는 책입니다. 작가는 지금까지 프랑스와 한국에서 때로는 노동자로, 때로는 지식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국가보안법 그리고 반공법은 1970년대에 많은 사람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남민전”이라는 정치적 사건은 그를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보내게 했습니다. 귀국 후에 홍세화는 자신의 글과 칼럼을 공개했는데, 이는 많은 사람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언젠가 독일의 시인, 볼프 비어만은 서독으로 연주 여행을 떠났는데, 동독은 그의 입국을 거부했습니다. 망명 아닌 망명 작가가 된 그는 다음과 같이 일갈했습니다. “추방당한 자에 대한 차단..

1 알림 (명저) 2024.04.19

홍세화 선생님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홍세화 선생님이 어제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필자는 그분의 책을 접하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그분의 인간미 그리고 특권의식 비판에 관한 사자후의 말씀이 나를 깊이 감동시켰습니다. 그분은 공명심이라든가, 명예욕과는 거리가 먼 소탈한 인품의 소유자였고, 계파와 파벌을 형성하지 않는 큰 그릇이었습니다. 가지지 않는 자와 배우지 못한 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니고 계셨고, 한반도의 정치와 미래 한국의 방향성을 숙고하는, 고결한 분이었습니다. 삼가 홍세화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남아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평소에 그분이 전해준 뜻을 기억하며 실천하는 일일 것입니다. OTL

1 알림 (명저) 2024.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