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필자 (匹子) 2019. 4. 20. 10:48

13. 성장하는 부르주아 계급: 귀족과 시민은 정치적으로는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이들 사이의 묘한 대립은 살롱의 대화에서 간간이 타나나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계급은 어떻게 해서든 지적인 엘리트와 인간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결속을 다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유명한 의사 코타르는 베르뒤링 마담의 살롱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살롱 사람들은 제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약 15년 동안 이어온 드레퓌스 사건의 여파로 거대한 정치적 사회적 전복을 획책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입지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 게르망트 출신의 왕자를 어느 귀족 처녀와 혼인시키려고 합니다. 처음에 살롱 사람들은 두 사람 사이의 결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겼는데,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면 혼인은 그들의 뜻대로 성사되고 맙니다. 이는 소설의 사회학적 배경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엘리트로 자처하는 귀족과 부유한 시민이라는 두 계급은 시대적 영향을 받으면서 교묘하게 세력을 규합해 나갑니다.

 

14. 예술가, 그들은 사회의 이방인만은 아니다.: 작가는 귀족과 시민 계급 외에 또 다른 유형의 그룹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예술가의 그룹입니다. 프루스트는 예술가들을 지속적으로 등장시켜서, 그들의 창조 정신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명한 화가, 엘스티르, 작가 베르고트, 음악가 빈트윌이 이들에 해당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퇴폐적 향락적인 경향을 추구하며, 잘난 체한다고 비난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프루스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은 권력과 금력에 무조건 맹종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사회의 상류층의 거짓과 위선적인 태도를 예리하게 투시하고, 개개인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기만당하고 왜곡되는가? 하는 모습을 예리하게 간파합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프루스트 특유의 거리감으로 어느 정도 가려져 있습니다. 가령 인간은 프루스트에 의하면 원칙적으로 타자의 속내를 명징하게 투시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언제나 자신의 내부에서 이해하려고 하며, 자신의 내면을 감추거나 타인을 속이려고 자신의 뜻과는 정반대의 사항을 주장하곤 한다.” (VI권 사라진 알베르틴느, 58).

 

15. 기억은 언제나 편린으로 우리의 의식 속에 다가온다.: 작가는 기억 속의 저장된 흔적을 찾아서 여행을 떠납니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의 흔적을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소재를 미리 찾아내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작품의 진행 과정에서 서서히 찢겨진 과거의 상으로 떠오를 뿐입니다. 기억을 도출해내는 과정은 계획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작품 외적인 구성적 틀로 요약될 수 없습니다.

 

기억 속의 광활한 세계는 마치 마력의 등불 아래의 상처럼 수많은 색책 속에 희미한 모습으로 드러나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곤 합니다. 수많은 찬란한 상들이 형형색색으로 주인공의 뇌리에 스치다가 흐릿하게 명멸되어 사라질 뿐입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오로지 전통적 예술 작품의 폐쇄적인 일원성을 포기함으로써, 기억의 이러한 흔적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화자로서의 자아가 과거의 모든 기억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뇌리에 떠오르는 상들은 있는 그대로 흐릿하게 그리고 모호하게 서술할 수밖에 없습니다.

 

 

  

산드로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의 그림. 프루스트의 제 1권에 등장하는 샤를 스완은 요리사, 오데트를 사랑한다. 그미의 모습은 보티첼리의 그림 속의 처녀와 너무나 닮았다. 스완은 오데트를 애호하게 되자, 세상의 모든 기쁨을 다 차지한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오데트가 자신으로부터 거리감을 취하자, 샤를 스완은 질투의 고통으로 괴로워한다. 왜냐하면 그미는 다른 여인과 묘한 애정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오데트는 스완의 아내가 되고, 아들 질베르 스완을 출산한다. 

 

 


16. 기억과 후각: 친애하는 J, 라벤더 향기가 치매 노인의 치료제로 쓰이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향기는 작가 프루스트에게도 중요한 연상 작용을 일으키게 합니다. 인간의 감각 기관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치와 같습니다. 그 가운데 후각이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1954년에 비로소 유작으로 발표된 마르셀 프루스트의 문학 비평서,생트 뵈브에 대항하여Contre Sainte-Beuve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발견됩니다. “우리가 지적 능력을 발휘하여 떠올리는 과거의 사실의 상 - 그것은 과거가 아니다.”

 

기억mémoire”, “버릇habitude”, “망각oubli” 등과 같은 과거 사실을 찾아나서는 일은 인간의 오관을 동원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시각, 후각 그리고 청각을 통해 여러 가지 감흥을 도출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놀라운 것은 기억과 밀접하게 조우하는 것은 인간의 후각입니다. 가령 프루스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마들렌느 빵에 관한 유명한 에피소드를 생각해 보세요. 이를테면 어린 마르셀은 이모님이 건네준 마들렌 빵을 보리수잎차에 적시는데. 이 순간 보리수 잎차의 놀라울 정도로 독특한 향기를 맡게 됩니다. 이때 그의 뇌리에는 콩브레에 위치한 레오니 이모님 집에서 지내던 유년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17. 마들렌 빵과 보리수잎차: 차에 적셔진 마들렌 빵이 나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마치 나 자신이 일상의 삶으로부터 추방당한 것처럼 내 마음 속에서 어떤 상이 움직이며 나타나는 것 같았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정신을 가다듬어 머릿속 생각을 떠올리려고 했다. 어떤 숨겨진 진실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 일순간 거기에는 기억이 있었다. 마들렌 빵을 맛보던 그 순간 나는 먼 옛날 일요일 아침 레오니 이모님이 건네주던 바로 그 빵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마들렌 빵맛을 재인식하는 순간, 도로의 앞에 위치한 회색빛 가옥이 떠올랐고, 집과 함께 그 도시가, 거리가 눈앞에서 선하게 나타난 것이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 나에게 점심 식사 전에 심부름시킨 바로 그 광장도 눈앞에 다가왔다.” (I권 스완의 집으로: 70이하.)

 

18. 기억을 도출해내는 세 가지의 과정: 상기한 에피소드는 자신의 과거의 기억을 찾게 되는 놀라운 순간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작가 프루스트는 전의식 속에 가라앉은 과거의 세계를 다시 찾기 위해서, 보다 체계적인 계획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기억을 도출해내는 과정은 세 가지 순간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기억입니다. 여기서 기억이란 우연한 기회에 감각적으로 받아들인 인상을 통해 나타난 직관적인 기억입니다. 여기서 직관적인 기억은 논리적인 기억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오로지 이러한 정서적 기억mémoire affective”으로 향하는 도중에 우리는 오래 전에 망각했던 어떤 무엇을 다시 한 번 인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가령 마들렌 빵을 맛볼 때 순식간에 떠오르는 상입니다. 프루스트는 우연한 기회에 순식간에 접하는 상으로부터 이와는 다른 과거의 상을 이성적으로 유추해냅니다. 이는 오성을 동원하여 의식을 확장시켜서 떠올리는 영감 내지 계시의 상을 가리킵니다. 이것이야 말로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기억에 대한 분석 작업을 지칭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표출 내지 표현을 요청합니다. 기억해낸 현실상은 다양한 관련성 속에서 언어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의 설명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창조될 수 있습니다. 모든 시적인 발언은 프루스트의 경우 이러한 세 번째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