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53

서로박: (2)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앞에서 계속됩니다.) 7. (부설) 맨드레이크: 맨드레이크는 라틴어로는 “만드라고라”, 독일어로는 “알리우네”라고 불리는 약초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악마의 사과Devil’s appl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약초는 지중해 근해에서 자라는데, 마치 인삼처럼 다육질의 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줄기는 약 30센티 자라며, 통상적으로 꽃 한 송이만을 피웁니다. 맨드레이크는 구약성서 「창세기」 그리고 「아가」에서는 사랑의 묘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혼하는 남녀는 만드라고라, 즉 맨드레이크의 즙액을 마시면, 첫날밤을 황홀하게 보낸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작가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자신의 5막 희극작품, 「만드라고라」에서 이 약초를 최음제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육질의 뿌리..

33 현대불문헌 2023.08.24

서로박: (1)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위대한 문명은 열도에서 시작되고, 인류의 문명은 종국적으로 열대로 되돌아갈 것이다." (Jose Vasconcelos) ................... 1. 로빈슨 크루소: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미셸 투르니에가 1967년에 발표한 첫 번째 소설입니다. 작가는 대니얼 디포Daniel Defoe의 『로빈슨크루소의 삶과 모험』 (1719)을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말하자면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Vendredi ou les Limbes du Pacifique』은 로빈슨 모험 소설의 계열인 셈입니다. 로빈슨 크루소는 자신이 타고 가던 배가 난파되어 태평양의 외딴 섬에 고립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는 무려 28년 동안 그곳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인물입니다. 로빈슨 크루소는 이슬람 학자이자 소설가인..

33 현대불문헌 2023.08.24

박설호: (3) 미셸 투르니에의 "동방박사들"

(앞에서 계속됩니다.) 13. 헨리 반 다이크의 네 번째 동방박사: 미셸 투르니에는 집필 중에 두 편의 작품을 참고했다고 술회했습니다. 그 하나는 미국의 소설가 헨리 반 다이크 (Henry van Dyke, 1852 – 1933)의 「다른 현자의 이야기The Story of the Other Wise Man」 (1996)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세 명의 동방박사를 거론하지만, 사실은 네 명이라고 합니다. 반 다이크는 짤막한 단편 소설을 통해서 세인에게 전해지던 네 번째 동방박사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아르타반이라는 이름의 동방박사는 뒤늦게 예루살렘으로 떠나게 됩니다. 아기 예수를 위해서 아르타반은 홍옥, 청옥 그리고 진주를 선물로 준비합니다. 그런데 도중에 불행한 사람을 만나, 그를 도와주느라..

33 현대불문헌 2023.04.04

박설호: (2) 미셸 투르니에의 "동방박사들"

(앞에서 계속됩니다.) 8. (부설) 몰약: 몰약은 감람나무과의 몰약수 또는 합지 수에서 추출된 약재입니다. 그것은 의학적으로 뭉친 혈액을 풀어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부종을 없애 통증을 완화하며 새살이 돋아나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효능은 고대에는 분명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몰약의 냄새는 유황과 거의 같습니다. 그렇지만 몰약의 냄새는 유황보다도 소박하고, 둔탁한 편입니다. 몰약의 맛은 매우 씁니다. “Myrrh”라는 단어도 히브리어의 “murr”, 즉 쓰다는 의미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단맛이 강한 포도주에 몰약 수지를 담다서, 단맛을 중화하려고 했습니다. 누군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에게 포도주를 해면에 적셔서 건넸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몰약이 어느 정도 섞여 있었던..

33 현대불문헌 2023.04.04

박설호: (1) 미셸 투르니에의 "동방박사들"

1. 동방박사는 누구인가?: 친애하는 T, 오늘은 미셸 투르니에가 1980년에 발표한 소설 『가스파르, 멜키오르 그리고 발타사르』를 논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동방박사는 마태오의 복음서 2장에 세 명의 왕으로 등장하는 성자들입니다. 이들은 별을 관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신약 성서에는 “성자” 내지는 “왕들”이라고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아가 동방박사가 몇 사람인지도 불분명합니다. 사실 동방박사의 이야기는 기원후 3세기에 광범하게 퍼지게 됩니다. 6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이 가스파르, 멜키오르 그리고 발타사르라고 언급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아무도 동방박사들이 몇 명인지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기원후 7세기에 시리아 지방에서는 동방..

33 현대불문헌 2023.04.04

서로박: 쥘리앵 그린의 "표류물" (2)

7. 상호 의존적 인간 그리고 사랑으로 향하는 방랑: 필리프는 자신의 권태를 달래기 위해서 자주 영화관을 찾는데, 이러한 장면 역시 주인공의 지루한 비극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지루함은 필리프의 경우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어떤 불안과 연결됩니다. 필리프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사적인 사랑의 삶에서 실패한 인간으로 나타납니다. 주인공에게는 자신의 절망을 파악하고 이해해주는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필리프는 아들에게 집착하게 됩니다. 두 남자는 이런 식으로 제각기 위태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아버지의 무기력함은 아들의 존재라는 무의미한 받침대에 지탱하게 되고, 아들의 무의지는 편안함을 보장해주는 아버지의 재산에 의해 수동적으로 채워진다고 할까요? 엘리안은 집을 뛰쳐나..

33 현대불문헌 2023.02.17

서로박: 쥘리앵 그린의 "표류물" (1)

1. 끈 떨어진 뒤웅박: 쥘리앵 그린 (Julien Green, 1900 – 1998)은 20세기 전반부에서 활동한 프랑스 작가인데, 작품의 특성은 삶의 깊은 의미를 냉엄한 필치로 서술한다는 점에서 작가, 프랑스와 모리아크 (Francois Mauriac, 1885 - 1970)를 방불케 합니다. 그린의 부모는 청교도 신자인 영국계 미국인인데, 프랑스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그린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동시에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1914년 어머니가 사망한 다음에 그는 아버지와 함께 일시적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도 했습니다. 그린의 관심사는 이성에 교묘하게 작용하는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고도 냉철하게 서술하는 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가 묘사하는 세계는 아무런 출구가 없는 감옥과 같은 세상입니다. 등장..

33 현대불문헌 2023.02.17

서로박: 보부아르의 "제 2의 성"

시몬느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 1908 – 1986)의 작품들은 불문학 그리고 철학의 영역에서 사르트르에 가려서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서 보부아르의 문헌 『제 2의 성 Le deuxième sexe』(1949)을 논하려고 한다. 작품은 『사실과 신화 Les faits et les mythes』그리고 『생생한 기억 L’expérience vécue』라는 두 권의 책 속에 실려 있다. 작품은 한마디로 여성의 동등권을 강하게 주장한다. 작품에서 보부아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여성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 어떠한 생물학적, 심리적 그리고 경제적 운명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의 품속에서 여성이라는 인간 존재를 마음대로 규..

33 현대불문헌 2023.01.17

서로박: 드봉의 "편도 혹성"

1. 오늘날 성 소수자는 혁명의 칼자루를 거머쥘 수밖에 없다.: 일단 작가의 발언을 경청하기로 합시다. “동성애 남자들은 이성애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에게 적대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대부분 이성애 남자들은 마치 경찰관처럼, 마치 여성을 윽박지르는 진상처럼 행동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오늘날 여성들은 -어느 나라, 어느 계급 그리고 어떤 문화권에 살든 간에- 심리적 불행을 맛보고, 주어진 처지에서 좌절하며, 많은 남자 (아버지, 남편, 애인 등)에 의해서 경멸당하고, 무기력 증세에 빠져들곤 한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이성애 남자들의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폭압 때문이다. (...) 물론 사회는 레즈비언들에게 관대함을 베푸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그저 더러움을 회피하려는 심리적 반응으..

33 현대불문헌 2023.01.15

서로박: (2) 사르트르의 "존경스러운 창녀"

(계속 이어집니다.) 살인자의 어머니가 주인공에게 원래 주기로 한 선물 대신에 고작 사례금 명목으로 100달러를 건네주었을 때 리지는 자신이 기만당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어느 날 도망친 흑인이 사람들을 피해서 몰래 자신의 방으로 잠입했을 때, 그미는 그를 숨겨주면서, 그를 돕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리지는 흑인 남자에게 호신용 피스톨을 건네지만, 그는 무기를 받아들지 않습니다. “나는 백인에게 총을 쏠 수 없어요.” 프레드가 다시 리지를 찾았을 때 흑인 사내는 어디론가 도주합니다. 그 사이에 프레드는 다른 백인 남자와 함께 어느 흑인에게 린치를 가한 뒤에 주인공을 찾았던 것입니다. 지난밤에 프레드는 온갖 성 도착의 행위를 강요하면서 리지와 침대 위에서 한몸으로 뒹굴었습니다. 이를 ..

33 현대불문헌 2023.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