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필자 (匹子) 2019. 4. 20. 10:45

1. 시간과 망각 그리고 유년: “지난 날 청운의 뜻을 품었지만/ 헛디뎌 넘어지고 백발이 되었네./ 누가 알까, 맑은 거울 속을?/ 두 사람의 나는 서로를 측은히 여기네. 宿昔青雲志 蹉跎白髪年 誰知明鏡裏 形影自相憐(장구령의 시) 친애하는 J, 우리는 가진 것 없이 태어나, 평생 두 손을 놀리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무언가를 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구하는 것은 좀처럼 손아귀에 잡히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 속을 들여다보니, 늙은이 한 사람이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동산에서 뛰노는 아이인데, 출세의 뜻은 꺾이고, 몸만 볼품없이 늙어버렸습니다. 그래, 시간은 끝없이 스치는 화살과 같습니다. 나와 함께 뛰놀던 아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흐르는 시간의 화살을 붙잡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여기서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면, 무엇을 떠올릴까요? 그건 아마도 당신이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었던 아련한 기억들일 것입니다.

 

2. 일곱 편의 대작, 명작은 단번에 눈에 띄지 않는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는 일곱 단락으로 나누어진 대작입니다. 이 작품은 1913년에서 1927년까지 14년 동안 도합 15권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작품은 다음과 같은 일곱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집니다. 1. 스완의 집으로Du côté de chez Swann (1913), 2.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 (1918), 3. 게르망트 쪽Le côté de Guermantes (1920/21), 4. 소돔과 고모라Sodome et Gomorrhe (1921 - 1923), 5. 갇힌 여인La prisonnière (1923), 6. 사라진 알베르틴느Albertine disparue (1925), 7. 되찾은 시간Le temps retrouvé (1925) 작품의 절반은 유작으로 간행되었습니다.

 

1권은 자비로 출간되었는데, 독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고 합니다. 프루스트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꽃핀 소녀들의 그들에서로 콩쿠르 상을 받게 됩니다. 그 이후 그의 연작은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서서히 명성을 얻게 됩니다. 나중에 앙드레지드는 프루스트의 소설을 자신이 속하던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간행하지 못한 데 대해 땅을 치고 후회했다고 합니다. 명작을 알아보지 못하는 우둔함 - 탁월한 문인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실수를 자주 저지르곤 합니다.

 

3. 기억의 예술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한스 로베르트 야우스의 표현에 의하면 기억의 예술작품입니다. 주인공은 예술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내입니다. 그는 달력이 가리키는 시간, 20년이라는 세월을 거의 절망적으로 허겁지겁 보낸 이후에, 기억을 통해서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살리려고 합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나간 현실의 객관성 그리고 진실을 밝히려고 하지만, 이는 주인공의 회상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즉흥적이고 무작위적이며, 우연에 의해 떠오르는 과거의 편린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프루스트의 이전 작품에서도 출현한 바 있습니다.

 

기쁨의 나날Les plaisirs et le jours(1896)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상에 밤이 도래했고 방주가 폐쇄되어 있었는데도, 노아가 지금까지 자신의 방주에서만큼 그렇게 세상을 잘 바라볼 수 없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는 작가가 어둠 속에서 그리고 갇혀 있는 세계 속에서 세계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고찰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4. 병약하고 섬세한 주인공, 마르셀: 주인공은 이제 나이 사십에 근접했으나, 천식이라는 고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병은 육체를 힘들게 하지만, 때로는 자신을 돌이켜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병원의 고립된 병실에서 혼자 머물러야 하는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마치 실타래 풀듯이 차례차례 기억해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은 언제나 단편적 상으로 주인공의 의식에 투영될 뿐입니다. 소설의 화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참으로 고독한 존재이다.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하겠지. 꼭 잠겨 있는 창문 곁에서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 나는 마치 올빼미 한 마리처럼 요동도 하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어느 정도 분명한 기억의 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IV. 580). 발터 벤야민도 언급한 바 있듯이, 프루스트는 과거에 존재했던 하나의 삶을 작품 속에 반영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체험한 삶을 기억 속에 끄집어내어 이를 생동감 넘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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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설 속에는 일직선적인 줄거리가 없다.: 미리 말씀드리건대 소설을 하나의 일직선적인 줄거리로 서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론 작가가 전통적 리얼리즘 소설에 대해 어느 정도의 거부감을 표명한 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줄거리 자체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소설의 관건은 기승전결에 의해서 일직선적으로 이어지는 사건을 서술하는 게 아니라, 기억이라는 어떤 복합체 속에서 뒤엉킨, 서로 다른 여러 상황들의 실타래를 풀어헤치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유년의 기억은 동일한 장소에서 성년이 된 이후의 기억과 교묘하게 착종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착종 현상으로 인하여 소설의 독자는 화자가 마치 작가인 프루스트인 것처럼 착각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프루스트는 화자와 작가 자신을 혼동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언가를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프루스트의 소석 속의 내적 긴장감은 외부에서 이어지는 사건의 연결을 차단시키고 있습니다.

 

6. 병약한 자아, 파리 그리고 노르망디의 현실, 귀족들: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아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문학과 미술에 지대한 관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 그는 파리의 살롱에 머물면서 문학과 예술적 자양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파리의 세기말의 분위기는 어수선했습니다. 부유한 관료주의자들이 살롱에서 예술과 시대 그리고 신을 논하던 시기였습니다. 작품의 배경은 대도시 파리 외에도 노르망디의 소도시들, 이를테면 콩브레Combray, 발벡Balbec, 동시에르Doncières, 탕송빌르Tansonville인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도 예외적으로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부터 병약하여, 가족의 근심을 떠안고 살았습니다.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누나, 프랑스와가 지속적으로 주인공을 돌보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병으로 괴로워하기 때문에 이곳저곳의 병원에 입원하여 고독하게 지내야 합니다. 마르셀은 병약했던 유년기의 삶 그리고 자신의 안온한 고독을 차근차근 서술합니다.

 

7.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은 나의 사랑이 아니라, 임으로 향한 나의 사랑이 되돌아올 때 발생하는 사랑의 반작용이다.: 첫 번째 작품 속에 삽입되어 있는 샤를 스완의 이야기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는 요리사 처녀, 오데트에게 연정을 품습니다. 그미의 손놀림, 미소 그리고 가냘픈 어깨가 연약한 귀족 사내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던 것입니다. 사랑을 고백했을 때 오데트는 이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샤를은 너무나 기뻐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오데트는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베어뒤링 살롱으로 가곤 합니다. 그곳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차를 끓이며, 음악을 듣고 여성들과 담소를 즐깁니다. 샤를은 오데트의 동성연애의 성향을 감지하고 질투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달콤하고도 깊은 사랑에 질투의 감정이 스며들자, 그의 마음속에는 서운함과 울분의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혼자 중얼거립니다. “그미는 내 삶을 망치고 말았어, 내 타입이 아닌 한 여자에게 그토록 목을 매달다니...놀라운 것은 주인공 마르셀이 나중에 공교롭게도 동성애에 빠진 여성을 사랑하게 되면서, 샤를 스완이 겪었던 희열과 괴로움을 똑같이 체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프루스트는 두 남자의 사랑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사랑은 마치 화살처럼 사랑하는 임에게 나아가 상대방의 표면에 부딪쳐 원래의 방사점으로 튕겨져 되돌아오곤 한다. 우리는 애정의 튕겨 나오는 반동을 그냥 상대방의 감정이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임으로 향해 나아간 사랑보다, 임으로부터 튕겨져 나온 사랑이 우리를 더욱더 매혹시킨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튕겨져 나온 사랑의 반동이 근원적으로 나 자신에게서 비롯한 것임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II,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