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필자 (匹子) 2019. 4. 20. 10:50

19. 시간의 흐름과 현실의 변화: 상기한 사항을 고려할 때 프루스트의 문학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시간 개념입니다. 장편 소설 속에서 시간 개념은 확장되어 있어서, 외부적 공간에 해당하는 파리 그리고 몇몇 주위의 공간들은 아무런 변화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변화되고 발전됩니다. 말하자면 마르셀은 작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상장했듯이, 세상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형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작가는 변화된 현실상을 세부적으로 서술합니다. 그것은 전쟁 이전의 무대에서 전개되던 변형되기 전의 옛 모습과 같습니다. 이제 전기가 사용되기 때문에, 과거에 어둠을 밝히던 석유램프는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달리기 때문에, 귀족들이 멋진 옷을 입고 타고 다니던 마차는 더 이상 이 세상에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비행기가 대세이므로, 사람들은 더 이상 애드벌룬을 타고 하늘 위로 날지 않습니다.

 

20. “-자발적인 기억mémoire involontaire: 그러나 변화된 세계에 대한 프루스트의 예리한 관찰은 결코 피상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언급했듯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회 계층의 점차적인 변화를 복합적으로 지적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것으로 끝내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서술합니다. 이미 지나간 사물들이 기억 속에서 새롭게 나타나 다양한 각도와 여러 가지 연관성 속에서 다시 생명력을 드러낼 수 있다면, 그것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수학적으로 확정된 시간의 개념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져 있습니다. 즉흥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떠올린 과거의 사실들은 현재의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새롭게 기억해낸 행위는 그 자체 하나의 -자발적인 기억mémoire involontaire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자아에 의해서 새롭게 떠올린 기억이기 때문에 결코 자발적이고 즉흥적일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간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외부적이고 수학적인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영혼의 현실을 담고 있는 내적 시간durée réelle입니다. 만약 두 개의 이질적인 시간 개념이 과거와 현재에서 순간적으로 더 이상 동일한 특성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순수한 시간의 어떤 자그마한 양이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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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새롭게 창조되는 내적인 시간: 시간의 질서에서 빠져나온, 어떤 몇 분의 순간이 우리의 내면에서 다시 하나의 체험으로 남게 된다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그 순간은 어쩌면 항상 새롭게 어떤 시간의 질서에서 자유롭게 된 인간을 창조해내게 될 것이다.” (VII권 되찾은 시간. 295). 새롭게 창조된 내적인 시간은 우리 존재의 실체와 같습니다. 프루스트는 이를 고려하면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심리적 개성의 개념을 해체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발터 벤야민은 프루스트야 말로 새로운 문학을 이해하는, 개성의 이념을 파괴하는 위대한 작가라고 칭했습니다. 왜냐하면 프루스트는 특정 인간으로 하여금 타자에 관한 다른 생각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이를 변모시킬 뿐 아니라, 특정 인간의 내면에 떠오르는, 어떤 경악을 일으키게 하는 불안정한 새로운 모습을 끊임없이 서술해나가기 때문입니다.

 

22. 기억 속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기억의 차단: 우리가 그것을 고찰하는 순간은 과연 어떠한가? 우리 영혼의 전체성은 언제나 그 가치의 풍요로움의 광범위한 대차대조표에도 불구하고 어떤 거의 가상적인 가치만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것은 영혼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경미한 보고 (宝庫)만을 지닐 뿐이다. 이를테면 나의 경우 언젠가 들었던 게르망트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이 이름은 나의 할머니에 관한 진정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만큼 나에게 흐릿하지만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없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흐릿한 기억은 무언가에 방해당하고 차단되곤 하는데, 이는 아무래도 나의 뜨거운 심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인지 모른다. 가끔 우리의 육체라는 존재는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의 커다란 물통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의 정신은 바로 이러한 물통 속에 갇혀 있는 것일까? 우리의 내면에 도사린 보물들, 예컨대 지나간 우리의 기쁨, 우리의 고통들은 어떠한 중단도 용인하지 않은 채 우리의 몸속에 지니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IV권 소돔과 고모라: 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