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48

서로박: 나보코브의 "롤리타" (3)

10. 험버트 험버트, 강박증, 편집망상증 환자: 주인공 험버트는 -나보코프 스스로 어느 인터뷰에서 술회한 바 있듯이- 허영심이 많고, 집요한 품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강박증 환자 내지 편집망상증 환자인지 모릅니다. 나이 어린 소녀, 애너벨 리에 대한 집착이라든가, 도저히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불가능한 사랑을 어떻게 해서든 가능하게 만들려고 하는 끈덕진 마음은 그 자체 병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단순이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며 소유욕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험버트 역시 이를 잘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그의 이러한 사고를 도저히 용납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방해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심리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

31 동구러문헌 2021.12.30

서로박: 나보코프의 '롤리타' (2)

6. 딸을 보호하는 어머니, 모녀 가운데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가?: 어느 날 두 사람의 사랑의 장난이 발각됩니다. 결국 롤리타는 다른 곳에 위치한 여름캠프로 떠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조처를 끝낸 다음에 샬롯은 험버트에게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즉 영원히 사라지든지 아니면, 자신과 결혼하자는 게 두 가지 선택 사항이었습니다. 험버트로서는 차라리 샬롯과 결혼하는 게 낫다고 판단합니다. 롤리타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에도 없는 결혼식을 올리는 게 낫다고 판단합니다. 이 순간 주인공의 마음속에는 놀랍게도 샬롯을 죽이고 싶은 욕구가 불현듯 솟아오릅니다. 다른 한편 샬롯은 내심 험버트를 애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롤리타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두..

31 동구러문헌 2021.12.30

서로박: 나보코프의 '롤리타' (1)

1. 패션, 모름다움, 순간적으로 강렬한 허상: 친애하는 N, 아름다움과 반대되는 단어는 신영복 교수에 의하면 “모름다움”이라는 조어로 표현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패션을 따르는 행위는 “모름다움”에 탐닉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아는 것이라면 “모름다움”은 어쩌면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가상의 미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미(美)란 “큰 양 (大羊)”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허상입니다. 그렇지만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이러한 허상으로서의 미에 열광하곤 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겉모습을 추종하게 하여, 모습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게 작용하는 것은 청춘일까요? 그렇기에 십대들이 마치 홍역을 앓듯이 유행에 열광하다가 잠시 자신의 “얼”을 잃는 것은 젊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눈부신 아이돌의 노랫소리 ..

31 동구러문헌 2021.12.30

서로박: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 (2)

6. 질투와 의처증으로 인한 살인: 바실리는 젊은 시절에 오랜 시간 혼자 살다가 결혼하기로 결심합니다. 결혼하기 전에 그는 홍등가에 들락거리면서 자신의 성을 해결하곤 하였습니다. 아내로 맞이한 여성은 오랫동안 피아니스트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할 여성을 처음 보았을 때, 바실리는 성적 욕망에 휩싸입니다. 구차하게 돈을 몸 파는 여자들에게 낭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다섯 명의 자식을 낳아 기르자고 합의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안타깝게도 임신할 수 없는 여성으로 판명 나고 맙니다. 남편이 직장에 나가 일하는 동안에 아내는 낮 시간을 몹시 지루해 합니다. 그래서 바실리는 아내가 피아노를 연습할 수 있도록 조처해주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내는 음악 연주로 행복감에 젖게 됩니다. ..

31 동구러문헌 2021.12.27

서로박: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 (1)

1. 사랑과 성, 그 불일치의 일치성: 친애하는 T, 인생에서 연정 그리고 성처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연정 그리고 성이 만약 두 개의 서로 다른 악기라면, 그것들의 연주는 대체로 불협화음으로 울려 퍼지게 될까요? 과연 연정과 성이 제각기 독자적으로 기능한다고 이해해도 되는 것일까요? 흔히 사람들은 사랑 없는 섹스를 방종한 육체적 놀음으로 여기고, 섹스 없는 사랑을 플라토닉 러브라고 간주하곤 합니다. 어쩌면 인간은 남녀의 짝짓기에 대해서 동물과는 다른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인간은 사랑과 성이라는 두 개의 동일한 (?) 악기에 대해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요? 확실한 것은 섹스 없는 사랑이 추상적이고 공허하다면, 사랑 없는 섹스가 작위적이고 ..

31 동구러문헌 2021.12.26

서로박: 싱거의 "적들 어느 사랑의 이야기" (2)

(7) 죽었다고 믿었던 아내가 살아서 돌아오다: 그런데 어느 날 타마라가 그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타마라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습니다. 타마라는 갖은 고초를 다 겪고, 이곳 미국까지 남편을 수소문하여 찾아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헤르만은 마샤에게 평생 함께 살자고 약속했던 터였습니다. 이제 자신만을 생각하고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찾아온 첫 번째 아내를 문전박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폴란드에서 어려운 시기를 함께 지내던 조강지처가 바로 타마라였던 것입니다. 헤르만은 살아서 돌아온 타마라를 부둥켜안고 시간가는 줄 모르는 채 눈물을 흘립니다. 이 일이 발생한 이후로 주인공은 세 명의 여자와 동시에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31 동구러문헌 2021.12.16

서로박: 싱거의 "적들 어느 사랑의 이야기" (1)

(1) 사라진 이디시어: 친애하는 J, 오늘은 폴란드 출신의 유대 작가, 이삭 B. 싱거 (Isaak B. Singer, 1902 - 1991)의 소설 『적들, 어느 사랑의 이야기』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싱거는 중년의 나이부터 미국에서 살다가, 197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작가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미국 작가가 아니라, 유대 독일어 작가로 규정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로 이디시어 (Jiddisch)로 작품을 집필했기 때문입니다. 이디시어는 특히 폴란드에서 거주하던 아슈케나짐 (Aschknasim)에 의해서 유대 독일어로 발전되었습니다. 그것은 중고 독일어와 히브리어가 혼합된 언어로서, 폴란드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유대인들에 의해 사용되었습니다. 20세기 초..

31 동구러문헌 2021.12.16

서로박: 페딘의 "도시와 세월" (2)

7. 소련 페트로그라트에서의 두 남자의 만남: 소설은 이때부터 수많은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뒤엉키게 됩니다. 주인공은 모스크바에서 군대에 입대하여, 열광적으로 볼세비키 혁명 운동에 동참합니다. 바로 이 무렵 그는 독일 친구인 화가 쿠르트 반과 재회합니다. 친구 역시 사회주의 혁명에 몸 바치기 위해 자의로 소련으로 입국하였던 것입니다. 쿠르트 반은 소련의 혁명 정책을 수행하는 고위 관리가 됩니다. 주인공, 스타르초프는 러시아의 낙후한 지역, 페트로그라드로 향합니다. 우크라이나 남부지역, 모르드윈에서 혁명 과업에 대항하는 반군의 부대를 소탕하게 되는데, 이 와중에 놀랍게도 뮐렌-쇠나우와 조우하게 됩니다. 뮐렌-쇠나우는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우크라이나 전투에 가담하다가,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수감되기 ..

31 동구러문헌 2021.11.17

서로박: 페딘의 "도시와 세월" (1)

1. 비판적 자세를 지닌 친정부작가: 러시아 작가 콘스탄틴 페딘 (Kostantin Fedin, 1892 - 1977)의 문학은 스탈린 지지자 내지 당 공산주의자라는 오명으로 인해 지금까지 공정하게 평가받지 못한 감이 있습니다. 1918년 소련으로 귀국한 이후로 그는 고리키와 함께 문학 그룹인 ‘세라피온 형제’에 참가하였습니다. 문제는 페딘이 소련의 볼셰비키의 정책을 실천하는 관리로 일했으며, 오랫동안 스탈린 당국으로부터 비호 받아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체제옹호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나름대로 조국의 안녕과 지식인의 인권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가령 1973년 솔제니친의 망명 문제 그리고 사하로프의 단식 사건에 대해 당국에 강력하게 항의한 사람이 바로 페딘이었습니다. 더욱이 그의 문..

31 동구러문헌 2021.11.17

서로박: 이삭 바벨의 부조니의 기마대

친애하는 J,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는 당대에 대체로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그들이 현재에 주어진 극도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창조에 몰두하는 이유는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려는 거대한 의지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의지가 미래에 그들의 명성을 드높이게 해줍니다. 언젠가 천재 독일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 (Georg Büchner, 1813 - 1837)는 1834년 3월 자신의 신부 (新婦)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을의 시간을 상실한 생명들입니다. 그렇기에 겨울이 지나서야 비로소 씨를 여물게 할 수 있어요. (Wir sind wie die Herbstzeitlose, welche erst nach dem Winter Samen trägt.)” 뷔히너의 이 말은 역설적이..

31 동구러문헌 2021.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