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싱거의 "적들 어느 사랑의 이야기" (1)

필자 (匹子) 2021. 12. 16. 11:36

 

(1) 사라진 이디시어: 친애하는 J, 오늘은 폴란드 출신의 유대 작가, 이삭 B. 싱거 (Isaak B. Singer, 1902 - 1991)의 소설 『적들, 어느 사랑의 이야기』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싱거는 중년의 나이부터 미국에서 살다가, 197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작가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미국 작가가 아니라, 유대 독일어 작가로 규정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로 이디시어 (Jiddisch)로 작품을 집필했기 때문입니다. 이디시어는 특히 폴란드에서 거주하던 아슈케나짐 (Aschknasim)에 의해서 유대 독일어로 발전되었습니다. 그것은 중고 독일어와 히브리어가 혼합된 언어로서, 폴란드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유대인들에 의해 사용되었습니다. 20세기 초에 이디시어를 사용하던 유대인의 수는 약 천만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디시어는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더 이상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가난한 유대인들의 언어는 학살당한 사람의 수만큼이나 축소화되었습니다. (흔히 “대학살”하면, 사람들은 히틀러의 인종 탄압을 연상하지만, 사실 소련과 동구에서 학살당한 유대인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가령 유대인 학살을 가리키는 단어인 “Pogrom”은 러시아어에서 유래하였을 정도이니까요.) 현재 이스라엘에서도 히브리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는 실정이고, 이디시어는 이스라엘의 지방에서만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디시어가 지상에서 사라지게 되리라는 비극적 사실은 20세기 중반에 자행된 유대인 학살과 함께 우리에게 영원한 슬픔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2) 이삭 싱거의 삶 (1): 일단 이삭 B. 싱거에 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싱거는 1902년 11월 21일 폴란드의 레온신에서 랍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다섯 살 되던 해에 그의 가족은 바르샤바의 유대인 거리로 이주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약 40만의 유대인들이 밀집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싱거는 나중에 유년시절을 회고하며 가난하지만, 정이 깊은 주위 사람들을 떠올리곤 하였습니다. 1917년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싱거는 형제자매들과 고향 마을에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1921년에 바르샤바로 돌아온 그는 처음에는 랍비가 되려고 유대교의 서적을 탐독합니다. 그러다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의 유대 독일어는 참으로 생동감이 넘치는 것이었습니다. 유럽 전역이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의 폭력으로 피해당하기 시작할 무렵에 싱거는 1935년에 이르러 미국행 배를 타게 됩니다. 이때 그는 안타깝게도 첫 번째 아내, 루니아 폰취 그리고 아들 이스라엘 라미어와 생이별해야 했습니다. 그의 아들은 반유대주의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아서 팔레스티나로 향합니다.

 

(3) 이삭 B. 싱거의 삶 (2): 뉴욕에 자리를 잡은 이삭 B. 싱거는 자신의 체험을 소설로 형상화합니다. 집필 행위는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잊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나아가 자신의 과거의 상흔을 치유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이디시어로 집필되어, 잡지 『포어베르츠』에 실리게 됩니다.

 

1974년 『적들 어느 사랑의 이야기』의 발표로 그는 국만 저술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1978년 싱거는 이디시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는 영광을 누립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항을 첨부하자면, 싱거는 오랫동안 채식주의를 표방하였습니다.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육류, 생선 류 등을 섭취하지 않고, 오로지 야채와 곡류만으로 살아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다른 동물을 도살해서는 안 된다는 지론 때문이었습니다.

 

(4) 생명의 은인과 결혼하다: 이제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적들, 어느 사랑의 이야기 Sonim, di Geschichte fun a Liebe』역시 이디시어로 집필되어, 1966년 미국의 유대인 신문 (Jewish Daily Forward)에 발표되었습니다. 작품은 나중에 개작되어 1972년에 영어로 발표된 바 있습니다. 서문에서 작가는 “예외 사항은 문학 작품에서는 하나의 규칙이다.”라고 기술합니다.

 

작가가 다루는 사랑의 이야기의 배경은 놀랍게도 유대인 학살 사건입니다. 게다가 성욕은 인간과 신의 욕망으로서 싱거 문학의 핵심적 테마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싱거 문학의 주인공은 성을 과도하게 탐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는 극도의 절망과 고통을 망각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등장인물이 나치의 희생자일 뿐 아니라, 희생된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고 솔직히 고백한 바 있습니다.

 

(5) 주인공, 헤르만 브로더: 주인공은 헤르만 브로더 (Herman Broder)라는 남성입니다. 그는 폴란드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운 좋게 살아남아 미국으로 건너옵니다. 그는 현재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살고 있습니다. 유럽을 떠난 뒤 헤르만은 야드비가라는 여인과 두 번째로 혼인하였습니다. 첫 번째 부인은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종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헤르만은 아내와의 이별이 못내 고통스러웠지만, 스스를 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코가 석자라, 자신부터 살아남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합니다.

 

야드비가는 유대인이 아니라, 수용소 근처에 살던 순박한 폴란드 처녀였습니다. 그미는 수용소에서 탈출한 헤르만을 헛간에 숨겨준 뒤에 폴란드를 출국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헤르만은 야드비가를 브루클린에서 다시 만납니다. 그미는 주인공의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처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애정으로 변했고, 결국 두 사람은 결혼하기에 이릅니다.

 

(6) 헐떡 수캐의 바쁜 일과: 친애하는 J, 문제는 주인공이 몰래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입니다. 헤르만은 브롱크스 지역에 있는 마샤라는 독일여자를 찾아가서, 몰래 그미와 사랑을 나눕니다. 마샤는 주인공의 적국 (敵国)이나 다름이 없는 독일 여인입니다. 유대인으로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나라의 여성이지만, 주인공은 그미의 부드러운 감성 그리고 고혹적인 육체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인공은 한편으로는 아내를 배신했다는 죄의식으로 자학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금기를 뛰어넘는 자신의 과도한 욕망 속에서 어떤 짜릿함을 느낍니다. 두 여인 사이를 오가려면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마구 헐떡거려야 하지만, 헤르만은 피곤한 삶을 마다하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야드비가 뿐 아니라, 마샤 또한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두 가지의 일을 통해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그 하나는 한스 담프라는 랍비 (Rabbi)의 서기로 일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남을 대신하여 여행서적을 판매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오로지 두 여인을 만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영화, 적들 어느 사랑의 이야기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