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페딘의 "도시와 세월" (2)

필자 (匹子) 2021. 11. 17. 10:49

7. 소련 페트로그라트에서의 두 남자의 만남: 소설은 이때부터 수많은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뒤엉키게 됩니다. 주인공은 모스크바에서 군대에 입대하여, 열광적으로 볼세비키 혁명 운동에 동참합니다. 바로 이 무렵 그는 독일 친구인 화가 쿠르트 반과 재회합니다. 친구 역시 사회주의 혁명에 몸 바치기 위해 자의로 소련으로 입국하였던 것입니다. 쿠르트 반은 소련의 혁명 정책을 수행하는 고위 관리가 됩니다. 주인공, 스타르초프는 러시아의 낙후한 지역, 페트로그라드로 향합니다. 우크라이나 남부지역, 모르드윈에서 혁명 과업에 대항하는 반군의 부대를 소탕하게 되는데, 이 와중에 놀랍게도 뮐렌-쇠나우와 조우하게 됩니다. 뮐렌-쇠나우는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우크라이나 전투에 가담하다가,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수감되기 전에 그는 소련 혁명에 반대하는 자들과 의기투합하여 은밀히 게릴라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8. 주인공, 독일 장교를 몰래 석방시켜주다.: 뮐렌-쇠나우는 독일 장교 출신으로 혁명에 반대하는 게릴라 활동에 가담한 바 있으므로, 조만간 교수형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타르초프는 몇 달 전에 독일에서 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빚을 갚는 심정으로 그에게 소련 당국이 발급한 통행증 그리고 가짜 여권 등을 구해서 몰레 전해줍니다. 말하자면 그가 비밀리에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여러 조처를 취한 셈입니다. 포로수용소를 탈출하기 전 새벽 무렵에 스타르초프는 뮐렌-쇠나우에게 편지 한 장을 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편지의 수취인은 비숍스베르크에 거주하는 마리 우르바흐였습니다. 사실 스타르코프는 2 개월 후에 독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으나, 이러한 약속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미에게 편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뮐렌-쇠나우는 편지를 받아들게 되자, 일순간 자신의 약혼녀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일단 부자유의 공간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는 일념으로 더 이상 이에 관해 골몰하지 않고, 수용소를 탈출한 다음에 암울한 러시아의 동토를 거쳐 자신의 고향으로 향합니다.

 

9. 마리 우르바흐, 자신의 약혼남을 만나다.: 그렇다면 마리 우르바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멀리 떠난 임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자, 그미는 거의 절망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미는 스타르초프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리는 다른 사내의 아기를 임신하게 된 사실을 부모에게도 그리고 약혼남의 가족에게도 알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소련으로 떠나려 했는데, 이는 불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당시는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이라,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는 집을 떠나서 고향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뮐렌-쇠나우와 조우하게 됩니다. 독일 장교는 참으로 기절초풍할 노릇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가 임신한 모습으로 자신 앞에 초췌하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뮐렌-쇠나우는 공명정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에게 스타르초프의 편지를 건네주면서, 그는 고통스러운 말투로 비난의 말을 던집니다. 한 번 배신한 사람은 틀림없이 다시 배신하는 법이야. 너는 그놈과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을 테니, 두고 봐. 이러한 독설을 내뱉은 뮐레-쇠나우는 참담한 마음으로 영원히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10. 세상이 남편과 자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며, 여성들은 한상 자식을 선택하는가?: 마리 우르바흐는 사랑하는 임이 살고 있는 소련으로 향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미에게 필요한 것은 소련 여권이었습니다. 마리는 서류상으로 뮐렌-쇠나우의 약혼녀로 등재되어 있었습니다. 독일 여자의 신분으로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그미는 한 가지 묘안을 찾아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부상당한 소련군 포로 한 사람과 오로지 법률상으로만 혼인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미는 어리석게도 사랑하는 임을 만나려는 일념으로 낯선 소련 사내와의 혼인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혼인이 종국에 이르러 그미의 발목을 잡게 될 줄 사전에 미처 알지 못합니다. 마리는 꿈에 그리던 연인을 만나기 위해서 남편과 페트로그라드로 향했는데, 도착 즉시 출산이 임박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미는 그곳의 야전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합니다. 출산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미로서는 당장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 더 임든 노릇이었습니다. 결혼한 남편 역시 생활력이 없는 부상병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태어난 아기를 건사해야 합니다. 주어진 삶의 고달픔 속에서 그미는 끝내 편하게 살아가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것은 소련군 출신의 남편과 아기와 함께 우크라이나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마리의 고통스러운 삶의 여정은 이로써 아무런 성과 없이 종언을 고하게 됩니다.

 

11. 너무나 강력한 신념은 때로는 우정을 배신하게 만든다.: 다른 한편 스타르초프는 어찌되었을까요? 그는 지인들을 통해서 마리 우르바흐의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보내면서 마리와의 만남을 학수고대합니다. 사랑하는 임을 애타게 기다리는 그의 마음은 거의 타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이성을 잃게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공의 친구인 쿠르트 반이 페트로그라드를 방문합니다. 그는 어느새 고위 공직자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때 스타르초프는 친구에게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으면서 한 가지 사항을 부탁합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임을 만나러 독일로 가려 하는데, 떠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스타르초프는 독일군 장교인 뮐렌-쇠나우의 수용소 탈출을 도와주었음을 무심결에 내밭고 맙니다. 쿠르트 반은 어느새 신념에 가득 찬 볼세비키로 변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그토록 섬세하고 다정다감하던 화가는 혁명의 실천 과정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관료로 변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쿠르트 반은 주인공이 국가의 존립을 해치는 반혁명적 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하고, 권총으로 자신의 옛 친구를 사살합니다.

 

12. 작품의 문제점: 페딘의 작품은 전쟁의 상황과 슬픈 연애의 이야기를 직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박한 전쟁 소설을 떠올리게 합니다. 가령 끔찍한 전쟁 이야기 속에 감상적인 연애 이야기를 가미한 헤밍웨이의 연애 소설을 생각해 보세요. 소련의 평론가들은 페딘의 장편 소설을 좋게 평가하지는 않았습니다. 작품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보다도 수준 낮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파스테르나크의 소설 『지바고 박사Доктор Живаго』가 혁명의 와중에 이리저리 이끌리는 지식인 한사람의 심리적 혼란 그리고 우유부단함 등을 추적하여 독특한 예술가를 형상화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면, 페딘의 소설은 사건의 전개에 있어서 경직되어 있으며, 주제상의 평탄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안타까운 것은 스타르초프의 내적 고뇌가 개인적이고 사적인 갈등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고로 훌륭한 문학작품의 경우 개인의 사적인 삶의 어려움은 주제 상으로 사회적이고 사상적인 갈등과 매듭지어져 있습니다. 이로써 독자는 애정 외의 다른 삶의 의미를 스스로 유추하게 됩니다. 그런데 페딘의 소설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도시와 세월』은 한 가지 중요성을 전해줍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작가가 체험했던 사건의 필연적 전개 과정 내지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의 독일의 소도시 그리고 페트로그라드의 현실적 삶의 조건 등이 리얼하게 박진감 넘치게 서술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