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122

(명시 소개)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아니, 아내가 결혼하다니? 그미가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요? 반대로 한 남자가 두 여자에 대해 동시에 연정을 품는 것은 가능한가요? 사람의 심성에 따라 약간씩 편차가 드러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주어진 정황이 한 인간을 그렇게 살도록 요구하는 것일까요? 20세기 유럽 문학을 대하면 우리는 세 사람 사이의 애정관계를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영화 “글루미 선데이 Gloomy Sunday”를 생각해 보세요. 체코의 두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하다가, 서로 싸우지 않고, 사랑을 반반씩 나누기로 합의 (?)합니다. 왜냐하면 여자 역시 받아들이는 느낌은 제각기 다르지만, 두 남자에게 공히 어떤 기이한 애정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두 남자는 그미를 잃는 것보다는 이분의 일의 사랑..

19 한국 문학 2023.11.09

(명시 소개) 송경동의 시 (2): '사소한 물음에 답함'

누구는 태어나고 싶어서 먹고 살기 힘든 빠듯한 가정에서 태어났을까요? 누구는 스스로 원해서 하청 노동자로서 밥 빌어먹고, 한 많은 이 땅에서 가진 것 없는 자로 살아가는가요? 누구는 좋은 부모 만나, 좋은 학벌 취득하여 판검사에 의사 그리고 높은 자리 모조리 차지하는데, 누구는 자청해서 대학도 안 가고, “소년원”에 갔겠는가요? 왜, 대학 못 간 게 어때서요? 아니꼽고, 더러우며, 메스껍고 치사한 일감을 마다하지 않는 하청 노동자가 어때서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직업으로 그리고 학벌로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모든 기준과 잣대를 동원하여 사람과 사람을 차별합니다. 그것도 모자라면, 초등학교 성적까지 뒤지는 게 이 땅의 관행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학물을 먹었다는 것을 내세우는 남자들과 허영심에 가득 찬 여..

19 한국 문학 2023.11.08

(명시 소개) 송경동의 시 (1), '사소한 물음에 답함'

사소한 물음에 답함 송경동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말엽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요?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 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나 요 근래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내게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

19 한국 문학 2023.11.08

(명시 소개) 권경업의 시 '오래전 그대는 꽃다운 누군가의 눈부신 눈물이었습니다'

나: 오늘은 권경업 시인의 작품을 다루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발표해 왔지만,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지 않은 것은 기이할 정도입니다. 너: 많은 시집을 간행했지만, 다음의 시집에는 많은 명시들이 숨어 있어요. 『꽃을 피운 바람의 독백』3권 (전망 2013), 그리고 『뜨거운 것은 다 바람이 되었다』 (작가 마을 2012). 우리는 명시들을 다시 읽고, 이것들을 애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 그의 몇몇 시편들을 예의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권 시인을 “바람의 시인”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너: 그분은 바람처럼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권 시인은 자연을 스치며 방랑하고, 꽃과 나무 가지를 쓰다듬는 산악인이지요. 그의 시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게 있습니다. “몸서리치도록 누군..

19 한국 문학 2023.11.02

박설호: (3) 문창길의 시, "너는 네 우주를 안고 돌아올 것이다"

(앞에서 계속됩니다.) 5. B; 네, 그만큼 문창길 시인의 마지막 시구는 감동 그 이상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서두에 지적하셨던 교육의 본질적 의미 그리고 젊은이가 체험하는 입신(立身)의 방향성에 관해서 살펴볼까요? A: 교육이란 사실을 접하고, 무언가를 깨닫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는 불안한 미래를 염두에 두면서 직업 교육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학교와 가정 그리고 학원을 오고 가지요. B: 어릴 때부터 부모들은 사유재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문 잘 잠그고 다녀라.”고 가르치지요. A: 어쩌면 가정을 떠나 다른 곳에 체류하며 배우는 게 진정한 교육일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친구를 생각하고, 사회..

19 한국 문학 2023.10.31

박설호: (2) 문창길의 시, "너는 네 우주를 안고 돌아올 것이다"

(앞에서 계속됩니다.) 3. B: 아, 미얀마에서는 단기출가가 하나의 성년식으로 인정되는군요. A: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은 이러한 수련을 통해서 “높은 산 저 안개밭보다 무궁한/ 고행”을 체험하게 됩니다. 코코 아웅은 절에서 스님으로서의 수련에만 몰두하는 게 아닙니다. 이전에 아이들과 “대나무 공”을 차고 “풀밭”을 돌아다녔듯이, 같은 절에서 만난 도반과의 우정을 갈고 닦습니다. 모든 것은 넒은 의미에서의 교육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코코 아웅 내일이면 스님으로 불러야 한다 그러다 열흘 후면 다시 속세의 어린 친구로 돌아올 것이다 오늘 그의 엄마는 파르라니 빛나는 아들의 머리를 매만진다 그래 이제 엄마를 떠나거라 너의 고향은 너의 모태는 궁극적 평안에 이르는 니르바나에 있느니라 B. 두 번째..

19 한국 문학 2023.10.31

박설호: (1) 문창길의 시, "너는 네 우주를 안고 돌아올 것이다"

1. B: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다룰 작품은 문창길 시인의 시 「산족마을 동승 신쀼의식을 보며」입니다. 작품은 일견 미얀마의 종교적 관습을 서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생님은 어떠한 이유에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요? A: 문 시인의 시편은 한마디로 그냥 넘길 수 없는 훌륭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명시의 기준을 무엇보다도 주제의 다양성에서 발견하려고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기 무엇하지만, 작품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복합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로 「산족마을 동승 신쀼의식을 보며」는 미얀마의 소승불교의 전통적 문화를 개관하고 있고, 둘째로 불교의 구도 정신 내지는 종교적 인간이 삶에서 추구하는 갈망과 방향성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B: 재미있는 말씀이로군요. 두 가지 다른 주제..

19 한국 문학 2023.10.31

(명시 소개) 백무산의 시 '유허비(遺墟碑)'

백무산의 시 유허비를 다시 읽습니다. 아래의 글은 정지창 교수의 명문장입니다. 필자가 첨언할 것은 하나도 없어서 글을 그냥 인용해봅니다. .................. “그 (백무산)는 탁발승처럼 이곳저곳을 떠돌며 새로운 길을 찾아 헤맨다. 고향 영천에는 웬지 돌아가고 싶지 않고, 정처 없는 발길은 방어진과 장생포, 선불산, 토함산, 경주 남산, 운문사 등지로 그를 데려간다. 그리고 순례하듯 폐사지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예전에 살았던 울주군의 산골짜기 허름한 마을을 찾아가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웬 비석이 세워져 있다. 최제우 선생의 처가가 있던 동네(여시바윗골)라고 유허비를 요란하게 만들어 놓은 것. 수운 선생은 젊었을 적에 형편이 어려워 처가살이를 하며 장사를 다녔다고 한다. 그도 나처럼 실..

19 한국 문학 2023.10.27

(명시 소개) 박기섭의 시 '눈길'

박기섭의 "눈길" 어둡고 낯선 길을 언 발로 쏘다니는 세상 모든 아들들은 지명 수배자였거니. 어머니,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지우신다 ......................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가는 일은 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난의 행적과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들들”은 “어둡고 낯선 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그들의 발은 꽁꽁 얼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임연당 이양연의 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이 시는 김구 선생님의 인용으로 널리 알려진 한시입니다. 겨레와 조국을 위해서 노력하면서도 후세 사람들에게 자신의 흔적이 하나..

19 한국 문학 2023.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