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137

(명시 소개) 서로박: (1) 함석헌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

1. B: “겨레의 할아버지”, 함석헌의 시를 논한다는 것은 참으로 설레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마음이 설레는 까닭은 작품 속에 강인한 목표 의식과 도덕성이 자리하기 때문이고, 시 해석이 어려운 까닭은 개인사와 한국 역사가 용해된 포괄적 해석을 요청하기 때문입니다.A: 이해할만 하군요. 시작품 이해에 있어서 일단 함석헌의 삶과 사상을 일차적으로 이해하는 게 급선무일 것입니다. 함석헌의 삶을 깊이 파악하려면, 두 권의 책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치석의 『씨알, 함석헌 평전』(시대의 창, 2005) 그리고 김성수의 개정판 『함석헌 평전』(삼인 2011)이 바로 그 문헌입니다. B: 한 번 참고하겠습니다. 함석헌의 삶은 일제 강점기와 분단 시대로 나누어집니다.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서술할 수는 없습니다. ..

19 한국 문학 2024.12.10

(명시 소개) 전홍준의 '은사시나무'

은사시나무 은근한 목소리로 은사시 은사시여 부르면춤추자고 내 손을 잡아당기는 여인이여 봄에는낯 씻고 크림만 바른뽀송뽀송한 소녀가 되어4/3박자 왈츠로 나를유혹하고여름에는 찹살모찌 훔쳐먹다엄마에게 쫓겨난 아이같이입술에 전분가루 묻히고산들바람에 다만 키들거린다 바라만 봐도 *엔돌핀 돈다 장난꾸러기 그녀도가을에는 정염情炎의 이파리모두 떨구고겸허히 생을 되새김질한다 어여삐 여긴 조물주함박 눈 내려보내그녀의 부끄러운몸을 덮어준다 *시작노트운동하는 체육공원에 은사시나무 한그루서 있다. 근엄한 잣나무와 웅장한 느티나무사이에서, 껑충 큰 키로 어린애처럼 까불며서 있다. 속성으로 자라는 특성 때문에,칠십 년대 녹화사업할 때 우리 산야를 지배했지만,실속이 없다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지금은방죽 부근이나 조경수로 겨우 명맥을..

19 한국 문학 2024.11.23

전홍준의 시, '장돌뱅이 서씨'

장돌뱅이 서씨 오십 년도 지났을 거야매운 날씨에 엄마 치맛자락 잡고사람 숲 헤치며 대목 오일장 가던 날 우시장 지나 싸전그 옆 냇가에는 붕어 잉어 가물치담긴 대광주리추녀 밑 장돌뱅이들지게 받쳐두고 홑적삼에오돌오돌 떨고그 속 서씨염장한 고등어 담긴 항아리열어놓고 곰방대 빨고 있었네 오종종한 얼굴소처럼 선한 눈콧수염에는 콧물이 고드름인 양맺혀 있었지도붓꾼 고단한 생을 살아낸 그는무엇이 되었을까아마 포슬포슬한 흙이 되었을 거야 착한 흙 말이야  *시작노트이제 서산 너머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나이,칠십 대에 접어드니글썽이는 눈물 같은 사람들이 생각난다.흙이 되었어도 약하고 착하게 살아서향기가 나는 사람들.그들을 불러내어 찬미하고 싶다.

19 한국 문학 2024.11.01

최영철 시인의 문장들

최영철 시인의 다음의 문장은 시인의 삶 그리고 집필 과정이 얼마나 힘드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 시인은 언어를 빚는 재능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는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태어난다. (31)  시인은 고통을 숙주로 찬란한 꽃을 피워내고 고통은 시인을 숙주로 만천하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영역을 확장한다. (32)  시인은 미망을 즐기며 미망 속에 있으려고 하는 존재, 번뇌를 즐기며 번뇌 속에 있으려고 하는 존재들이다. (31)  시인은 고통받는 모든 영혼이 구제될 때까지 부처가 되지 않기로 자청한 지장보살처럼 천국이 아닌 지옥에 머물기를 자청해야 한다. (36)  시는 고통을 관리하는 양식이다. 느닷없이 찾아온, 오랫동안 ..

19 한국 문학 2024.10.27

(명시 소개) 윤경재의 시, 쑥부쟁이

쑥부쟁이윤경재 제 이름 모르는 채 들국화라 홀대하다연보라 뽐내거나 노란 꿈 비교 않네바람에 흔들거려도속정 깊은 누이여 불쟁이 아버지와 동생들 헌신 봉양무심한 나무꾼과 노루도 감동하고죽음도 차마 못하여들꽃으로 피웠네 벼랑을 넘어서는 여여한 징검다리못다 부른 사랑의 숨결을 되살렸어괜찮아 누군가의 꽃깊은 가을 사르네

19 한국 문학 2024.09.29

송용구의 시 '바람 소리'

바람 소리- 어느 의사의 고백 -송용구 앞 못 보는 자의 눈이 되고앉은뱅이의 다리가 되는그런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면너의 눈과 너의 다리는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나의 혀끝에전사(戰士)처럼 칼을 들이대던스무 살적 바람소리여백일몽을 가위누르던서슬 퍼런 바람 소리여나를 잊으라 나를 용서하라 온 하루 빈 들녁에 퍼붓던겨울 소나기 잠잠해지면나는 쓸쓸히 저무는 강가에 꿇어 앉아잊혀진 연서 (戀書)의 언약 같은마른 억새 잎으로 입술을 내리치며눈시울 붉은 달빛 속에저주 받은 승냥이의 울음을꺼이꺼이 게워내고 있는가   송용구 시인이 어떠한 계기로 이 시를 집필했는지 나는 모른다. 아마도 젊은 날 "공부해서 남 주어야 한다."고 다짐하지 않았을까?  그래, 한 인간으로 태어나, 이웃과 사회 그리고 나라에 도움을 주는 삶을 살..

19 한국 문학 2024.09.28

김지하의 시, '말씀'

말씀                              김지하 하는 일 없이 안하는 일 없으시고달통하여 늘 한가하시며 엎드려 머리 숙여밑으로 밑으로만 기시어 드디어는한 포기 산속 난초가 되신 선생님출옥한 뒤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비록 사람 자취 끊어진 헐벗은 산등성이사철 그늘진 골짝에 엎드려 기며 살더라도바위틈 사란 한 포기 품은 은은한 향기는장바닥 뒷골목 시궁창 그려 하냥 설레노니바람이 와 살랑거리거든 인색치 말고먼 곳에라도 바람 따라 마저 그 향기 흩으라.  출전: 김지하 시집 애린, 실천문학사 1986.

19 한국 문학 2024.09.26

풍요 속 인간 관계 복원을 고민하다. 전홍준의 시, '아요'

나: 전홍준 시인은 2020년 말에 시선집 『흔적』을 간행했습니다.너: 그는 “간결하고 투박한 문체로 작품을 창조하는 고향 시인”입니다. 시편들은 홍준 시인의 활달한 성격과 정교한 투시력이 결합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홍준 시인은 언어로 조작하는 수많은 시인들의 경우와는 달리 압축을 선호하고 단어 하나하나가 정확하게 핵심을 찌르고 있습니다.나: 그렇지만 시적 주제가 독자에게 수월하게 전달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너: 홍준 시인은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시적 유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심하게 정독해야 합니다.나: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유형의 시 대신에 수사와 수식으로 수놓은 작위적인 시를 선호합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전홍준의 시적 가치가 지금까지 제대로 수용되지 않..

19 한국 문학 2024.09.24

(명시 소개) 전홍준의 시, '좀'

좀전홍준 수평선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던 시절이 있었다 철벅거리며 살아서 어느덧, 불혹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교활한 좀이 되어세상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살아가는지금도 어떤 꿈이 있을까 돌아보면 개기름 자르르한 허리와황금으로 걸신들린 해골박불어터진 국수가락처럼 질척거리는 인생이피래미새끼 한 마리 살지못하는탁한 연못으로 누워있다 남에겐 날을 세우고 내 허물엔 관대하여동무 하나 없는 적막한 처소에서석쇠에 나를 굽고 있는가. 凸: 오늘은 전홍준 시인의 "좀"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나는 노새처럼 늙어간다"에 실려 있습니다.凹: 왜 하필이면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요?凸: 여러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전홍준의 디스토피아의 역설적 시정신과 관련됩니다.凹: 어쩌면 작품 "좀"은 시대와 삶에 대한 시인의 소신이..

19 한국 문학 2024.07.19

서로박: (2) 기억과 갈망의 몽타주. 이정주의 시세계

(앞에서 계속됩니다.) 4.이정주는 『현대시학』 2007년도 7월호에 최근작들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시인은 중의적 표현 기법 내지 복합적인 장면 배열 등을 지양하고, 어떤 사소하지만, 생략될 수 없는 관점을 집요하게 투시한다. 가령 「러브레터」에서 시인은 어느 노동자의 일상을 마치 카메라의 렌즈 속처럼 들여다본다. 인간의 존재는 과학 기술에 의해서 장악되고, 인간이 행하던 모든 일은 이제 기계에 의해서 영위될 뿐이다. 최근작에서 시인은 유연한 시각을 견지하고, 약간의 체념적인 톤을 드러내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예술적으로 포착하려는 의지만큼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필자는 최근작 10편 가운데 「물가로 갈 것인가 도서관으로 갈 것인가」를 가장 관심 있게 읽었다. 물가에서 “숭어”와 “새”가 죽임의 두려움에 ..

19 한국 문학 2024.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