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서로박: (2) 함석헌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필자 (匹子) 2024. 12. 10. 10:53

(앞에서 계속됩니다.)

 

3.

B: 놀라운 지적이로군요. 다음 기회에 “기독교와 평신도 운동 그리고 이단 사상”에 관해서 강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함석헌으로 돌아가기로 하겠습니다. 김교신과 함석헌은 1927년 귀국하여 『성서조선』을 창간했지요?

A: 그렇습니다. 그들의 탈권위주의적 기독교 사상은 김교신에 의해 민중적 저항적 의미를 강하게 부각했지요. 함석헌의 친구, 김교신은 민중 신학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분입니다. 일본 식민주의자들은 『성서 조선』 불온서적으로 규정하고, 여기서 활동하던 사람들을 체포했습니다. 그런데 김교신은 해방이 될 무렵에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했지요.

 

B: 함석헌이 시를 쓰기 시작한 시점은 바로 이 무렵입니다. 이게 하나의 우연일까요?

A: 글쎄요. 해방 후에 자신의 고향에서 용천군 자치 위원장으로 일했으나, 신의주 반공 학생 사건으로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술회했습니다. “나는 시인이 아니다. 세상에 나와 마흔 다섯이 되도록 시라곤 써본 일이 없었다. 그것은 내 천분도 그렇겠고, 나 자신 삶에 참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우리 역사가 그런 역사다. 한 사람의 다윗도 예레미야도 난 일이 없고, 단테도 밀턴도 난 일이 없다. 그 좋은 자연에 워즈워스 못 낳고, 그 도발적인 역사에 타고르가 못 났다. 이 사람들은 오직 눈 뽑히고, 머리 깎이고, 사슬 지고, 맷돌을 가는 삼손이었다. 거기 나서, 가뜩이나 무딘 맘에다 줄을 골라주는 사람 하나 없이 젊은 날을 다 지냈으니 시가 나올 리가 없다. 그 내가 감히 시를 쓰다니, 몰려서 된 일이지 자신 있어 한 것이 아니다.”

B: 소름 돋게 하는 놀라운 발언이로군요.

A: 그렇습니다. 자신이 시를 쓴 것은 어쩔 수 없는 처지에 몰려서 행해진 일이지, 자신의 의미 내지는 자신감을 지닌 채 능동적으로 행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B: 좀더 인용해 주시겠습니까?

A: “독자여 이것은 시가 아니다. 시 아닌 시다. 의사를 배우려다 그만두고, 미술을 뜻하다가 말고, 교육을 하려다가 교육자가 못되고, 농사를 하려다가 농부가 못되고, 역사를 연구했으면 하다가 역사책을 내던지고, 성경을 연구하자 하면서 성경을 들고만 있으면서, 집에선 아비 노릇을 못하고, 나가선 국민 노릇을 못하고, 학자도 못되고, 기술자도 못되고, 사상가도 못되고, 어부라면서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사람이 시를 써서 시가 될 리가 없다. 이것은 시 아닌 시다. 시라 할 테면 하고 말 테면 말고, 그것은 내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내 맘에다 칼질을 했을 뿐이다. 그것을 님 앞에다 바칠 뿐이다.”

 

B: 얼핏 보면 자격지심으로 인한 푸념처럼 들립니다만, 자기 비하에서 유래한 푸념이 아닌 것 같은데요?

A: “시라 할 테면 하고, 말 테면 말라.”는 솔직한 고백은 시와 문학을 폄훼하기 위한 발언이 아니라, 죽음과 고통 속에서 찾아내려는 삶의 절실함 내지는 살아남기의 절실함에 기인합니다. 문학보다 더 소중한 게 있다면 그것은 살림이고, 처절한 고통 속에서 생존하는 일입니다.

B: 자신의 글은 시 아닌 시라고 천명한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로군요.

A: 그렇습니다. 시작품은 적어도 함석헌에게는 시인의 감정이 여과된 추출물이 아닙니다. 함석헌은 처음부터 등단의 방식을 통해서 시인으로서의 권위를 획득하려고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B: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는 인간으로서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바른 길을 찾다가, 구도의 길에서 실족(失足)하곤 하였습니다. 그떼마다 자신의 마음에 칼질할 수밖에 없었지;요?

A: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시작품은 그가 마음에 칼질하다가 분출해낸 자신의 분신과도 같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함석헌은 애써 집을 짓다가 허물어지는 건축물을 황망하게 바라보는 목수이며, 잘못 구워진 도자기에 망연자실하며, 애통하게 울부짖는 고동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믿음과 신념의 흔적이 엿보입니다. 함석헌의 시는 뜻과 지조 그리고 이를 추구하기 위한 과정에서의 힘든 여정과 눈물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시인의 사리(舎利)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김조년 교수는 함석헌의 시 창작이 “자기의 존재와 바꾸는 일이며, 이 세상과 맞바꾸는 일”이라고 해석했습니다.

 

4.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말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B: 함석헌의 시는 시집 『수평선 너머』에 수록되어 있는데,「그 사람을 가졌는가」는 함석헌의 대표작에 해당하지요. (함석헌: 수평선 너머, 함석헌 저작집 23, 한길사 2009, 243 - 244쪽.)

A: 네, 이 작품은 이해하기 쉬우며, 시가 말하는 바는 직접 우리의 머릿속으로 그리고 가슴속으로 파고듭니다.

B: 그런데 시인의 전언은 외부로 향하는 게 아니라, 시인 자신으로 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풍깁니다.

A: 좋은 지적입니다. “그대는 가졌는가”라는 호소는 시인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작품에서 말하는 그 사람은 나중에 다시 언급되겠지만, 시인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 의인 내지는 동지(同志)일 뿐 아니라, 변화된 자신 내지는 새롭게 부활한 자아일 수 있습니다.

 

B: 놀라운 지적이로군요. 시인의 질문과 호소는 자기 자신에게 향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모호한 의미를 담은 몇 가지 시어가 있습니다. 가령 “불의의 사형장”과 같은 표현 말이지요.

A: 인간의 종류는 참으로 많지만,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그 하나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면서 사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삶의 의미를 물으면서 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각박한 삶은 의로움보다는 이로움을 우선으로 선택하게 하지요. 왜냐면 그것은 인간 존재의 자기 보존 충동을 강하기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이를 고려하면 우리는 세상에 불의가 판을 치고 귀한 뜻이 처참하게 꺾이는 경우를 비일비재하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불의의 사형장” 역시 이러한 처지를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B: 다만 한 가지 의혹이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연에 등장하는 “알뜰한 유혹”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의 함의를 잘 모르겠어요. 왜 시인은 유혹을 사악하다고 표현하지 않고, 알뜰하다고 표현했을까요?

A: 여기서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입니다. 시어의 함의를 전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지요.

B: 선생님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알뜰한 유혹”은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려고 하는 일반 사람들의 삶에 대한 유혹을 가리키겠군요.

A: 알뜰한 사람은 자신의 일상적 삶에 충실한 분들이지요.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자신의 무사안일의 삶을 저버리고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으면서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알뜰함을 하나의 유혹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그 사람을 가졌는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전하는 호소라기보다는, 시인 자신으로 향하는 하나의 다짐 내지는 결의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면 작품은 자신의 목표를 찾아서 떠나는 자신에게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친구와 동료에게 바치는 다짐과 결의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