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136

(명시 소개) 최영미의 시, '선운사에서'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피는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님한번 처다볼 틈없이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내속에 피어날 때처럼잊는 것 또한 그렇게순간이면 좋겠네멀리서 웃는 그대여산 넘어가는 그대여꽃이지는 건 쉬워도잊는 건 한참이더군영영 한참이더군   시는 간결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사고는 무척 깊습니다. "꽃이/ 피는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한번 처다볼 틈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처음에는 화무십일홍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유한성은 이 시의 핵심을 찌르지 못합니다. 청춘의 열정과 갈망은 참으로 크고 강렬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열정과 갈망을 청춘의 내부에서 그리고 청춘의 외부에서 고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청춘의 열정과 갈망은 주..

19 한국 문학 2024.06.27

(명시 소개) 전홍준의 시, '70대'

칠십대-1950년생 전후전홍준   1섬에서 날아온 메뚜기 떼가36년간이나이 땅을 샅샅이 훑어 먹고쭉정이만 남기고 물러났다그들의 길라잡이가 되어부스러기로 배를 채웠던구더기 같은 무리와변방을 떠돌며 목숨 던져메뚜기 떼와 싸웠던 초인들이남은 이삭 몇 낱을 두고피터지게 싸웠다 해방된 한반도는펄펄 끓는 용광로가 되어결국 활화산으로 분출했다무명옷 입은 몇백만의굶주린 목숨들이 전쟁의 제물로받쳐졌지만민족 위에 걸터앉은하잘 것 없는 이념의 깃발이이 땅의 허리를 잘라남북으로 고착화시켰다 전쟁 전보다 증오와 분노는더 들끓었고일제에 빌붙어 호의호식했던쥐새끼들은또다른 외세인 미국의 등을 업고반역자에서 애국자로 신분세탁 해다시 이 땅을 움켜쥐었다전쟁은 이 터전을 지옥으로만들었지만 반민족 세력에게는하늘이 내린 축복이었다찬 서리 맞..

19 한국 문학 2024.06.18

(명시 소개) 박용래의 시, '엉겅퀴'

엉겅퀴박용래 잎새를 따 물고 돌아서 잔다이토록 갈피 없이 흔들리는 옷자락 몇 발자국 안에서 그날엷은 웃음살마저 번져도 그리운 이 지금은 너무 멀리 있다어쩌면 오직 너 하나만을 위해 기운 피곤이 보랏빛 흥분이 되어슬리는 저 능선 함부로 폈다목놓아 잔다 ................ 박용래 (1925 - 1980) 시인의 시집 "저녁눈"에는 명작이 많이 실려 있다.

19 한국 문학 2024.06.18

(명시 소개) 전홍준의 시, '나는 노새처럼 늙어간다'

나는 노새처럼 늙어간다. 전홍준   그대를 생각하면 아직도 박하사탕 같은그리움이 싸하게 밀려오는데강철 같은 빗장 지르고 세상으로 잠수한 사람이여 이 가을 색동옷 입혀 자식들 떠나보내는 나무처럼속울음 삼키다 삼키다 돌아보면나는 가을걷이 끝난 빈 들녁의 허수아비! 사랑은 줄광대의 줄타기처럼 아찔한 곡예인 것을바닥에 떨어져치명적인 골절상을 당하고야 겨우 깨우치는 삶은 언제나 손에 잡히지 않고동태가 걸린 덕장에 내 허물만 바람에 나부끼는데부젓가락으로 분노와 환멸을 갈무리해 보지만사랑이 끝난 화로에는생솔가지 타는 연기가 아직도 맵다. ......................... 전홍준 시집: "나는 노새처럼 늙어간다," 작가 마을 2009.

19 한국 문학 2024.05.21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 선생은 1897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일제 식민지의 탄압으로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1923년 그곳에서 독일로 건너가서 동물학 박사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독일에서 제 2차 세계대전을 겪었으며, 1946년에 "압록강은 흐른다"를 독일어로 발표하였습니다. 다음을 클릭하면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11분) https://www.youtube.com/watch?v=4ZJckdPFVO8 다음을 클릭하면 압록강은 흐른다 영화 요악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2분 39초) https://www.youtube.com/watch?v=mx1QN2m6ViE 다음의 동영상은 이미륵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뮌헨 시가지의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의 가슴에 와닿습니다. 압록강은 흐른다. 1부 (1..

19 한국 문학 2024.02.01

(명시 소개) 한용운의 시, '후회'

후회한용운 당신이 계실 때에 알뜰한 사랑을 못하였습니다.사랑보다 믿음이 많고 즐거움보다 조심이 더하였습니다.게다가 나의 성격이 냉담하고 더구나 가난에 쫓겨서 병들어 누운 당신에게 도리어 소활(疎阔)하였습니다.그러므로 당신이 가신 뒤에 떠난 근심보다 뉘우치는 눈물이 많습니다. ...................... 만해 한용운 시전집, 참글세상 2016, 81쪽. (시 해설) H: 당신은 지금 몸이 편찮으시군요. 나는 당신의 고통스러움을 대할 뿐, 당신의 참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그 까닭은 나의 의지에는 사랑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나 무언가를 갈구하는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그것은 본능적 탐욕이거나 명예욕일 수 있습니다. L: 별반 아름답지도 않는, 평범한 몸을 지닌 영혼입니다. H: 아니..

19 한국 문학 2024.01.30

(명시 소개) 백무산의 시, '영천 장터'

영천 장터 백무산 장꾼들 틈에 끼여 마음도 왁자하게 열어두고 어딘가 구겨지고 귀퉁배기 하나씩 허물어진 사람들과 섞여 애가 타고 목이 쉬게 장돌림을 하다가 아버지들처럼 쇠전거리 국밥집에서 두어잔 탁배기 들이키고 가야지 못 잊고 못 간 그 길 타는 자갈길 능금꽃 피고 지면 보리가 따라 익고 뻐꾸기 한나절 울음에 문둥이 따라 울던 곳 과수원 탱자나무 울타리 완산 대보둑길 노고지리 둥지틀던 여울 건너 버덩 목화밭 타는 밀밭 남상남상 봇물 위로 날으던 물새 혹부리 영감 나룻배 타고 푸른 바람을 타고 못 잊고 못 간 그 길 타는 자갈길 짙푸른 금호강에 몸을 던진 여인이 벗어놓은 하얀 코고무신 한 켤레 눈이 시리던 청석바위 벼랑길 따라 비탈을 지나 초가집 하나 그가 떠난 날은 콩잎이 누렇게 익을 무렵이었다지 칙간 거..

19 한국 문학 2024.01.24

서로박: (3) 문창길의 시, 꽃의 상징성

(앞에서 계속됩니다.) 5. 凸: 한마디로 문창길의 시, 「메꽃 1」 그리고 「메꽃 2」는 자연스러운 사랑과 작위적인 사랑을 대치시키고 있습니다. 凹: 시어 역시 이런 식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어요 1. “발뿌리” - “혓잎” (꽃과 여성의 상관관계), 2. “메마른 핏줄” - “속살 (열정의 크기), 3. ”칼칼한 목구멍“ - ”헐어빠진 가랑이“ (메꽃의 실제 모습), 4. ”꽃대궁“ - ”실뿌리 같은 주먹손“ (메꽃의 외연), 5. ”바람“ - ”들개미“ (주위의 남성성), 6. ”꽃술“ - ”꽃잎“ (여성의 외모), 7. ”무심“함 - ”슬픔“ (시적 감흥) 凸: 세밀한 지적입니다. 문창길 시인에게 “꽃”의 이미지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요? 凹: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곤란합니다만, 문창길의 문학에서 ..

19 한국 문학 2024.01.09

서로박: (2) 문창길의 시, 꽃의 상징성

(앞에서 계속됩니다.) 3. 凹: 이어지는 시는 「메꽃 2」입니다. 가슴이 시큰거려 온다 굼실굼실 더듬어 올수록 무슨 살맛을 알았는지 뻔질나게 드나드는 들개미는 헐어빠진 가랭이 사이로 성긴 발길이 분주하다 하혈이 흐르는 세상 좀 더 아름답게 살기 위하여 낮게 엎드려 꿈꾸는 동구밖 암캐 같은 꽃님이 분홍옷 벗고 거친 숨을 몰아 쉴 때마다 움켜진 흙 한 줌... 실뿌리 같은 주먹 손으로 부끄러운 속살을 감추지 못하는 슬픈 꽃잎 하나 묻고 있다 凹: 두 번째 작품은 첫 번째 작품과는 달리 둔탁하고 작위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凸: 그건 유연한 만남을 통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메꽃은 작품에서 몸을 파는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凹: 그렇습니다. 곤충 한 마리가 메꽃의 알몸으로 향해 “..

19 한국 문학 2024.01.09

서로박: (1) 문창길의 시, 꽃의 상징성

1. 凸: 안녕하십니까? 선생님께서는 문창길 시인의 작품, 「메꽃 1」. 「메꽃 2」를 논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훌륭한 시편도 많은데 왜 하필 이 두 편을 선정했는지요? 凹: 그것은 세 가지 사항, 즉 사랑과 평화 그리고 통일 가운데 하나의 중요한 테마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문창길 시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지향점을 집요하게 추적해 왔습니다. 첫 번째는 저주스러운 성폭력의 역사를 끊어낼 수 있는, 하해와 같은 사랑이고, 두 번째는 폭력과 참혹한 전쟁을 극복하게 하는 평화이며, 세 번째는 시기와 암투 그리고 증오를 근본적으로 끊어낼 수 있는 연대의식을 가리킵니다. 이 가운데 문 시인의 작품은 특히 사랑의 본질적 의미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凸: 네, 사랑, 평화 그리고 통일은 민초들의 구체적이고 절실한 ..

19 한국 문학 2024.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