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5.
B: 잘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의 주제에 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A: 함석헌의 시는 다섯 가지 관점에서 분석될 수 있습니다. 1. 전기적 관점, 2. 역 사적 관점, 3. 정치적 관점, 4. 신학적 관점, 5. 철학적 관점. 첫째로 작품은 시인의 개인사의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습니다. 먼 길을 떠나는 “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B: 그렇다면 “맘 놓고 갈만한” 친구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일 수 있겠네요.
A: 네, 자신의 모든 가족을 의탁할 수 있는 친구라야 할 것입니다.
B: 김교신과 같은 분일 수 있겠군요.
A: 아니, 한 사람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단정한다면, 우리는 시의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상실하게 되지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그 사람”은 시인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 의인 내지는 동지(同志)일 뿐 아니라, 변화된 자신 내지는 새롭게 부활한 자아일 수 있습니다.
B: 네, 시적 전언의 방향성이 외부로 향하는 게 아니라, 내면으로 향하고 있다는 선생님의 주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할 때 시의 주제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요?
A: 주권을 강탈당한 민족에 대한 슬픔 그리고 후세 사람들을 위한 희생적 자세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는 함석헌의 대표작, 『뜻으로 본 한국 역사』 (한길사 2014)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제 5연에서 시인은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누군가를 떠올리며 미소 짓습니다.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친구, 동지, 제자가 바로 “누군가”일 수 있지요.
B: 세 번째 정치적 관점도 이러한 역사적 관점과 유사하겠군요?
A: 네, 세 번째 정치적 관점은 반독재 민주화의 투쟁과 연결되는데, 3연과 6연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시인은 “온 세상의 찬성” 앞에서 진실로 정의를 토로할 수 있는 분, 죽음 앞에서 생존을 양보할 수 있는 분을 갈구합니다.
B: 그렇다면 시인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나라와 정의를 도모하려는 의인을 갈망하는 셈이로군요. 그렇다면 이는 함석헌의 씨ᄋᆞᆯ 사상과 불가분의 관게로 이해될 수 있겠네요?
A: “씨ᄋᆞᆯ”은 함석헌에 의하면 세 가지 특성을 지닙니다. 첫째로 그것은 생명체의 원형으로서 세상 만물과 관련됩니다. 이 경우 “씨ᄋᆞᆯ”은 부분의 전체인 셈이지요. 씨ᄋᆞᆯ은 둘째로 그 자체 고유한 독자적 존재로서의 인격체입니다. 그렇지만 씨ᄋᆞᆯ은 서로 모여 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요. 셋째로 씨ᄋᆞᆯ은 함석헌에 의하면 그 자체 궁극적 실체입니다.
B: 씨ᄋᆞᆯ과 지식인은 서로 다르지만, 상호 보완의 관계라고 설명하는 분도 있습니다. (강수택: 씨알과 지식인. 함석헌의 지식인 연구, in: 사회와 이론, 31집, 2017, 97쪽).
A: 좋은 지적입니다. 함석헌은 1970년대부터 1980년까지 잡지 『씨ᄋᆞᆯ의 소리』를 간행해 왔습니다. 이 잡지는 군사 독재와 폭정에 저항하고 민주화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잡지의 간행, 폐간 그리고 재출간은 그 자체 70년대 한국의 험난한 정치적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B: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작품에 나타나는 “그 사람”은 로마의 정치가, 두 번째 스키피오를 ㄹ연상시킵니다. 그는 호방한 대범함을 지녔던 정치가 내지는 장군이었지요. 키케로는 자신의 저서 『국가론De re publica』 (BC 54 – 51)의 마지막 대목에서 “스키피오의 꿈”을 거론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두 번째 스키피오를 세계를 선(善)으로 다스리는 불멸의 정치가로 다루고 있습니다. (박설호: 키케로의 국가론, 실린 곳: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제 1권, 플라톤에서 모어까지. 고대 – 르네상스 초기, 울력 2019, 177 – 196.)
A: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스키피오는 지배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함석헌의 시에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함석헌의 시가 가리키는 “그 분”은 오히려 고행의 길을 걷는 신앙인 내지는 지사에 근친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함석헌의 이상이 반영된 미래의 자신일 수도 있고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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