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전홍준의 '은사시나무'

필자 (匹子) 2024. 11. 23. 15:07

은사시나무

 

은근한 목소리로 

은사시 은사시여 부르면

춤추자고 내 손을 

잡아당기는 여인이여

 

봄에는

낯 씻고 크림만 바른

뽀송뽀송한 소녀가 되어

4/3박자 왈츠로 나를

유혹하고

여름에는 찹살모찌 훔쳐먹다

엄마에게 쫓겨난 아이같이

입술에 전분가루 묻히고

산들바람에 다만 키들거린다

 

바라만 봐도 *엔돌핀 돈다

 

장난꾸러기 그녀도

가을에는 정염情炎의 이파리

모두 떨구고

겸허히 생을 되새김질한다

 

어여삐 여긴 조물주

함박 눈 내려보내그녀의 부끄러운

몸을 덮어준다

 

*시작노트

운동하는 체육공원에 은사시나무 한그루

서 있다. 근엄한 잣나무와 웅장한 느티나무

사이에서, 껑충 큰 키로 어린애처럼 까불며

서 있다. 속성으로 자라는 특성 때문에,

칠십 년대 녹화사업할 때 우리 산야를 지배했지만,

실속이 없다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지금은

방죽 부근이나 조경수로 겨우 명맥을 유지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는 퍽 유쾌한 나무다.

잠시도 쉬지 않고 춤추는 무희 같다.

우거지상으로 사는 이 땅 구성원들을

위무라도 하는 듯이.

 

*엔돌핀은 흔히 행복호르몬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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