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시나무
은근한 목소리로
은사시 은사시여 부르면
춤추자고 내 손을
잡아당기는 여인이여
봄에는
낯 씻고 크림만 바른
뽀송뽀송한 소녀가 되어
4/3박자 왈츠로 나를
유혹하고
여름에는 찹살모찌 훔쳐먹다
엄마에게 쫓겨난 아이같이
입술에 전분가루 묻히고
산들바람에 다만 키들거린다
바라만 봐도 *엔돌핀 돈다
장난꾸러기 그녀도
가을에는 정염情炎의 이파리
모두 떨구고
겸허히 생을 되새김질한다
어여삐 여긴 조물주
함박 눈 내려보내그녀의 부끄러운
몸을 덮어준다
*시작노트
운동하는 체육공원에 은사시나무 한그루
서 있다. 근엄한 잣나무와 웅장한 느티나무
사이에서, 껑충 큰 키로 어린애처럼 까불며
서 있다. 속성으로 자라는 특성 때문에,
칠십 년대 녹화사업할 때 우리 산야를 지배했지만,
실속이 없다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지금은
방죽 부근이나 조경수로 겨우 명맥을 유지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는 퍽 유쾌한 나무다.
잠시도 쉬지 않고 춤추는 무희 같다.
우거지상으로 사는 이 땅 구성원들을
위무라도 하는 듯이.
*엔돌핀은 흔히 행복호르몬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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