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서로박: (1) 최영철의 시 "길" (해설)

필자 (匹子) 2023. 4. 18. 11:29

 

凹: 오늘은 최근에 간행된 최영철의 시집 『멸종 미안족』(문학연대 2021)을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시작품 가운데 왜 「길」을 선택하셨는지요?

凸: 일순간 어떤 섬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길” 아니면 도(道)를 지적해주는 자극이라고 할까요? 작품은 인간의 삶 그리고 삶의 의미와 방향을 성찰하려는 독자들에게 자극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凹: 그것은 무엇이지요?

凸: 시를 해석하면, 본의 아니게 시구를 해부해야 합니다. 최영철 시인의 작품들은 어떤 성찰과 깨달음을 요청할 뿐, 시 분석을 요구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행간을 읽고 그 여백을 채워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분석을 자제하고, 행간의 여백을 채워나가는 식으로 작품을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인생이 달디달 때 술맛은 쓰고

인생이 쓰디쓸 때 술맛은 달았네

 

凹: 삶의 경험이 스며 나오는 구절 같습니다.

凸: 찬란하고 즐거운 삶은 우리를 술 마시게 하지 않지요. 굳이 술을 마실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요.

凹: 아, 그래서 시인이 술맛이 쓰다고 표현했군요.

凸: 슬프고 괴로울 때 마시는 술은 당사자에게 위로를 안겨주지요. 생텍쥐페리의 『작은 왕자Le petit prince』에 등장하는 술꾼은 술을 마신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고 말합니다.

凹: 술꾼에게 술이란 심리적으로 어머니의 풍요로운 젖가슴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凸: 그럴 수 있겠네요. 술이란 우리에게 힘든 삶을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어느새 사랑에 취한 이에게 모든 길은 파묻혀 보이지 않아도

이윽고 사랑을 놓친 이에게 천지사방 모든 길이 망망대해였네

 

凹: 3행과 4행에서 시인은 별안간 사랑의 삶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凸: 네, 여기서 대비되는 것은 “사랑에 취한 이” 그리고 “사랑을 놓친 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랑에 침잠한 인간이 길과 방향을 명료하게 인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凹: 어쩌면 시인은 안주하는 자와 방랑하는 자를 서로 대비하려고 했을까요?

凸: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인간 존재는 오히려 힘든 이별의 순간 자신의 처지를 더욱 뚜렷하게 인지하게 되지요. 연인들은 사랑의 감정에 매몰되어, 주위의 정황에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凹: 그렇다면 인간은 어째서 불행에 처해 있을 때 주위를 살피는 것일까요?

凸: 그건 아무래도 이별과 불행의 순간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임으로부터 그리고 주위 현실로부터 소외되어 있는가를 느끼기 때문이겠지요. 인간의 존재는 원래 일원적 조화로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랑의 상실이 우리에게 외로움을 의식하게 작용하는 게 아닐까요?

凹: 그럴 수 있습니다.

凸: 그 밖에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어느새” 그리고 “이윽고”라는 시어입니다.

凹: 무슨 뜻이지요?

凸: 인간은 순식간에 사랑의 감정에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지만, 자신의 사랑을 상실하지 않으려고 애간장을 태웁니다. 사랑하는 임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는 자의 괴로움과 이를 떨치려는 과정을 생각해 보세요. 사랑은 순식간에 찾아오지만, 사랑의 이별을 극복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윽고”라는 시어를 사용한 것 같아요.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