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디딘 곳곳마다
적소 아닌 곳 있었던가?
피었다 지는 꽃들 그만한 이유 있어
혼자서 바라보는 바다 아련하고 느껍다
먼 길을 휘어감아 섬 안에서 바라본 섬
끝없이 자박이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안고 온 세상의 욕망
벼랑 끝에 세우고
밤이 깊어갈수록 숨소리 더 크게 들려
구름 속으로 사라진 한 사람 떠올리며
없는 듯 방파제에 앉아
묵시록을 읽는다
너: 박미소 시인의 「서포의 달을 만나다」의 전문입니다. 남해 시편들은 여러 가지 주제상의 측면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나: 네, 그 작품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하게 해석하도록 하지요. 중요한 것은 작품 「보리암 시편」에 반영된 세 가지 서로 다른 관점의 해석입니다. 1. 심리적 관점, 2. 정치적 관점, 3. 철학적 관점이 그것들입니다. 물론 이것들은 결코 작품 「보리암 시편」에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너: 작품의 첫 번째 관점은 사랑과 결부되는 것이겠지요?
나: 네, 물론 『구운몽』의 등장인물, 성진 (양소유)에게는 가부장주의의 특성이 발견됩니다. 이는 약간 거슬리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갈망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고로 갈망은 충족되지 않을 경우 그 강도는 강해지지요. 인간의 갈망이 억압되는 순간 그것은 더욱 강력하고 더욱 단단한 무엇으로 당사자의 마음을 압박합니다. 밥 한 그릇의 가치는 굶주린 자에게는 배부른 사자의 진수성찬보다도 더 귀중하게 인지되지요.
너: 그렇군요. 사랑의 깊이와 강도는 이를테면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측정된다고 합니다. 연인이 헤어져 있을 때 그리운 마음은 배가되니까요. 예컨대 인디언 청년이 멀리서 피리를 불면, 인디언 처녀는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지요. 그런데 영원하게 살아가는 신들에게 사랑은 그저 자신의 권태를 떨치는 농탕질 그 이상이 아니겠지요?
나: 그럴 리가 있나요? 사랑은 신이든 인간이든 간에 언제나 내면의 격정을 부추기겠지요. 다만 언젠가 죽어야 하는 숙명을 지닌 인간들만이 신들에 비해 이별을 통한 격정적 아픔을 더욱더 강하게 실감할 뿐입니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사랑의 감정은 “이별 (죽음)을 연습하는 격정적 트레몰로”라고 명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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