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1) 아홉 구름 속의 변주곡. 박미소의 "보리암 시편"

필자 (匹子) 2021. 12. 21. 15:57

: 최근에 놀라운 명시 한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박미소 시인의 「보리암 시편」이라는 작품입니다. (박미소 시집: 『푸른 고서를 읽다』 (들꽃세상 2020. 15쪽). 시적 함의가 다양하고 복합적이면, 그럴수록, 작품이 전해주는 감동은 더욱더 증폭되는 법일까요? 

: 무슨 뜻이지요?

: 주제가 다양하면, 그만큼 작품은 독자에게 폭넓은 심층적 의미를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시인 한용운,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문학이 오늘날에도 역사성과 현대성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그만큼 그들의 작품이 여러 가지 주제를 포괄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 그런가요? 그렇다면「보리암 시편」에도 문학적 주제의 다양성이 담겨 있다는 말씀인데요.

: 한마디로 인간의 갈망과 관련되는 사항이지요. 갈망은 때로는 백일몽 내지 낮꿈, 혹은 유토피아로 그리고 고향 내지 새로운 무엇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보리암”은 남해에 있는 절이지요?

: 네, 남해 금산에 있는 사찰입니다. 추측컨대 시인은 어느 봄날 남해의 노도로 여행을 떠난 것 같습니다. 남해에서 접하게 된 것은 『구운몽』의 작가, 서포 김만중 (1637 - 1692)의 흔적이었습니다.

: 아 그래서 남해를 소재로 한 시편 「신만전춘별사 新満殿春別詞」2편 그리고 「구운몽의 남쪽」에는 김만중에 관한 사항이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군요.

 

: 그렇습니다. 언제인지는 모르나, 박미소 시인은 다랭이 마을의 어느 펜션에서 『구운몽』그리고 작가의 귀양살이에 관한 흔적을 접한 것 같습니다. 이때 그미는 그의 운명이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 원하지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사람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운명 말씀이지요?

: 지금 여기는 시인에게는 “적소”와 다를 바 없습니다. 김만중은 숙종 당시에 높은 관직에 올랐으나, 말년에 유배 생활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시기에 소설 『구운몽』이 완성되었으며, 1688년 잠시 풀려났으나, 다시 남해로 유배되어서 그곳에서 유명을 달리 헸다고 합니다.

 

너: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육관대사의 제자인 성진은 팔선녀와 희롱한 이유로 인간세상으로 쫓겨나 양소유라는 인물로 다시 태어납니다. 양소유는 이곳에서 팔선녀의 후신인 여덟 명의 여인들과 차례로 만나 인연을 맺습니다. 과거에서 급제하여 관료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승승장구하던 양소유는 인생의 정점에서 긴 꿈에서 깨어나 원래의 성진으로 돌아옵니다. 이후에 성진은 이후 큰스님이 되어 팔선녀와 함께 극락으로 향합니다. (김만중: 구운몽, 정병설 역, 문학동네 2013).

: 작품은 다양한 측면에서 얼마든지 달리 해석될 수 있습니다.

 

너: 그런데 박미소 시인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시적 자아의 관점이 아닐까요?

: 동감입니다. 중요한 것은 작품 내에서 나타난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입니다. 즉 갈망의 세계와 주어진 세계를 생각해 보세요. 전자가 “눈감으면 드러나는” 선불계의 세상이라면, 후자는 눈뜨면 어떠한 갈망도 감지되지 않는 현세, 다시 말해서 주어진 세상을 가리키지요. 두 세계는 시인의 눈에는 마치 찬란한 허상 그리고 거울 속의 실상으로 투영되고 있습니다. 이는 작품에서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그대 바라는 마음, 또 다른 보폭이지만

해배된 길을 안고 두 눈 뜬 산정에서

가슴에 고여 있었던

응어리를 토해낸다

 

흘러온 시간들이 허공 속을 돌고 있는

한 번도 품지 못한 만경창파 애저녁에

깨춤 춘 나의 모습들

급히 접어 숨기고

 

살아가는 이유를 그대에게 말하고 싶어

간절한 몸짓으로 노을 끝을 움켜잡아

내 안에 숨어서 사는

새를 날려 보낸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