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박태일의 시「들개 신공」

필자 (匹子) 2021. 12. 24. 10:47

: 오늘은 박태일의 명시 「들개 신공」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2013년 문학동네에서 간행된 시집 『달래는 몽골말로 바다』에 실려 있습니다. 지금까지 발표된 박태일의 시집 가운데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지요.

: 일단 작품에 등장하는 몇 가지 난해한 시어를 해설해 주시지요?

: “신공”이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 듯합니다. 첫째로. 신공神功은 기도드리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흔히 가톨릭에서 묵상 신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해 보세요. 둘째로. 신공申供은 정성들여 소원을 비는 행위를 지칭합니다.

 

: 벅뜨항, 게르, 어워, 잉걸불 등의 시어가 낯설게 다가오네요.

: “벅뜨항”은 울란바트르의 산 이름이며, “게르”는 몽골의 이동식 집을 뜻합니다. “어워”는 몽골의 서낭당, 다시 말해 나그네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복을 비는 팻말이며, “잉걸불”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의 숯덩이를 지칭하지요.

 

: 시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시의 배경, 그러니까 몽골의 지리적 특성과 몽골인의 삶을 이해하는 일이겠지요?

: 그렇습니다. T. S. 엘리엇이 장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어요. 그런데 유럽의 4월의 지저분한 날씨를 모르는 한국인들은 419 데모를 생각하지요. 그러니 우리는 몽골의 삶을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독자들은 서울의 번잡한 도로를 헤매는 개들을 연상할 테니까요. ㅎㅎ 대도시를 벗어나면, 광활한 초원이 펼쳐집니다. 사막도 있고, 산도 있어요. 몽골인들은 거의 안경을 끼지 않습니다. 항상 먼 곳을 쳐다보아야 하니까요. 사람들은 양떼를 몰고 대 평원을 돌아다닙니다. 동가식서가숙하는 생활은 고난의 삶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지요. 식수와 풀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유목 생활은 그들에게 평온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 그러면 박태일의 시 「들개 신공」을 살펴볼까요?

 

벅뜨항 산꼭대기 눈

어제 비가 위에서는 눈으로 왔다

팔월 눈 내릴 땐 멀리 나가는 일을 삼간다

게르 판자촌 가까이 머물며 사람들

반기는 기색 없으면 금방 물러날 줄도 안다

허물어진 절집 담장 아래도 거닐고

갓 만든 어워 둘레도 돈다

혹 돌더미에서 생고기 뼈를 찾을 제면

다 씹을 때까진 떠나지 않는다

누가 보면 어워를 지키는 갸륵함이라 하리라

공동묘지를 돌면 소풍 나섰다 생각하라

울타리 아래 아이 똥을 닦아 먹고

비온 뒤 흙탕물로 목을 축이며

물끄러미 발등을 핥는다

우리는 대개 검다 속살은 붉지만

시루떡처럼 부푼 석탄광 잡석 빛깔이다

때로 양떼 가까이 갔다 집개에게 쫓겨난다

그래도 사람 가까이 머물러야 한다

야성은 숨기고 꼬리는 내려야 한다

집 없고 가족 없는 개라 말하지 마라

들개는 본디 가족을 두지 않는다

사람 가운데도 더러 개를 닮은 이가 있으나

우린 마냥 들개다 잉걸불 이빨을 밝히고

짖는다 두려워 마라 물기 위한 일이 아니다

다만 사람과 거리를 둘 따름

어금니 빠지고 벽돌을 삼킨 양 속이 무겁지만

고픈 일이 배뿐이겠는가 길가 장작더미를 지날 땐

피어오를 저녁 불꽃을 떠올릴 줄도 아는

나는 들개다 그런데 사실을 밝히자면

목줄이 문제다 걷기도 힘들다

어릴 때 주인을 떠날 때부터 두른 목줄

풀지 못한 목줄이 몇 해 나를 졸라왔다

지나는 일족을 보며 나는 주로 앉아 지낸다

동정하지 마라 이렇듯 숨가쁜 슬픔도

들개의 신공이다

 

: 작품 들개 신공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독창적인 작품입니다.

: 어째서 독창적인가요?

: 지금까지 개의 혀를 빌려 세상살이를 서술한 적은 없었습니다. 시인은 들개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문학의 본원적 기능은 역지사지易地思之에 있다는 사항 말입니다. 다른 사람, 다른 동식물의 입장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학의 상상력이지요.

 

: 이를테면 장 드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의 시작품을 예로 들 수 있겠군요.

: 그렇습니다. 시인은 들개의 마음속으로 잠입하여 세상을 바라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생명체가 어떻게 인간에게 적대적인지,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교묘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들개가 “절집 담장 아래”에서 방황하고, “어워” 근처에서 배회하는 까닭은 오로지 먹을 것을 찾기 위함이지요. 때로는 “흙탕물”을 마시고, 아이의 똥을 핥기도 하지만 이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입니다.

 

: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어워”의 지킴이로 이해하고, “공동묘지”에 “소풍” 나온 짐승으로 착각하지요.

: 들개는 사람 가까이 머물러야 하지만, 사람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먹을 것을 찾기 위해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하지만, 인간으로부터 해코지를 당할 때가 다반사이니까요. 한마디로 들개의 삶은 인간에게 의존해 있어요. 한마디로 들개의 삶은 외로움과 괴로움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굶주림을 참기 위해서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으므로 “어금니 빠지고” 뱃속이 편안하지 않습니다.

너: 다음의 시구는 비장함마저 느끼게 해줍니다. “고픈 일이 배뿐이겠는가

 

: 들개 역시 빵만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심리적 행복 역시 필요로 하지요. 몸이 “시루떡처럼 부푼 석탄광 잡석 빛깔”을 띄는 까닭은 세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한 보호색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들개 역시 친구가 필요하고 사랑하는 임이 필요합니다. “장작더미를 지날” 때에는 아름다운 황혼을 의식하기도 할 정도로 들개는 애틋한 감정을 지니고 있어요.

 

: 문제는 들개를 옥죄이는 목줄에 있습니다. 어린 시절 주인을 떠날 때 채워진 목줄은 들개의 목을 더욱 강하게 조여 옵니다. 그동안 몸이 커지고, 목이 굵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되었지만, 어린 새끼의 목줄은 그대로 있습니다. 목줄은 “걷기도 힘들” 정도로 들개를 아프게 합니다. 목의 털은 다 빠지고, 살점이 벗겨진 채 피가 배여 있습니다. 고통과 부자유가 들개로 하여금 걷지도 달리지도 못하게 합니다.

 

: 들개는 숨 가쁘게 내쉬지만, 이 역시 자신의 신공이라고 호소합니다. 어쩌면 들개는 시인 자신이 아닐까요?

: 놀라운 발상이로군요. 하기야 “사람 가운데 더러 개를 닮은”이러는 시구는 우연히 기술된 게 아닌 것 같아요.

: 그래요, 들개는 바로 시인 자신입니다.. 머나먼 땅에서 낯선 존재로 머물 때 시적 자아는 자신이 누군지 숙고하게 됩니다. 어쩌면 그는 지금까지 마치 들개처럼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사람에게 접근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 인간관계의 힘듦이 들개의 모습으로 묘사된 셈이로군요.

: 그렇습니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타인과 마주쳐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부모와 자식, 주인과 노예,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는 한결같이 종속적이고 우리를 구속하는 악재로 작용합니다. 들개의 경우 어릴 때 얻게 된 부자유의 목줄은 삶에서 심리적 고통으로 작용했는지 모르지요.

: 시인은 자신의 지나간 삶을 “숨가쁜 슬픔”이라고 표현하고 있군요.

 

: 요약하건대 작품은 들개의 혀를 빌려 자신의 처지를 반추하고, 자신의 삶의 고단함, 아픔 그리고 자신의 해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 들개의 황량한 삶을 묘사하는 데에도 그다지 천박함과 조야함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 까닭은 아무래도 시적 어조가 자기 연민에 젖어있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이 점이 박태일의 시를 명시의 반열에 올리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