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바라는 마음, 또 다른 보폭이지만
해배된 길을 안고 두 눈 뜬 산정에서
가슴에 고여 있었던
응어리를 토해낸다
흘러온 시간들이 허공 속을 돌고 있는
한 번도 품지 못한 만경창파 애저녁에
깨춤 춘 나의 모습들
급히 접어 숨기고
살아가는 이유를 그대에게 말하고 싶어
간절한 몸짓으로 노을 끝을 움켜잡아
내 안에 숨어서 사는
새를 날려 보낸다
너: 작품은 도합 3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 시인은 유배지에서 벗어나는 자유인의 모습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대”의 갈망은 분명히 “나”와는 다른 크기와 방향을 지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김만중 그리고 시적 자아 모두 원치 않는 “적소”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너: “노자묵고할배”로 알려진 김만중은 위리안치의 장소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는 마치 자신이 눈을 감고 살았음을 의식하는 것 같습니다.
나: 네, 유배에서 벗어나 “해배된 길”에서 그는 비로소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 처럼 느낍니다. “산정”에 도달했을 때 오랫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응어리”를 토해냅니다. 원치 않은 곳에서 그리운 사람과 헤어진 채 영어의 세월을 보낸 자책과 억울함이 응어리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너: 시인은 적소의 삶을 살아간 자는 자신이라고 상상하는 것 같은데요?
나: 그것은 제 2연에서 서술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은 시적 자아에게는 낯선 곳에서 사랑을 상실한, 허망한 세월처럼 느껴집니다. 그게 “허공 속을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너: 김만중, 혹은 소설 속의 주인공, 성진 (양소유)이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닐까요?
나: 그렇지 않습니다. 제 2연에서 언급되는 자는 그가 아니라, 시인 자신입니다. 시적 자아는 엄청난 포부와 갈망을 품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얄팍한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깨춤”을 추고 살아온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아니, 김만중, 혹은 성진의 해적이를 접하면서, 시인은 불현 듯 자신의 초라한 삶과 그 “보폭”에 부끄러움을 감지하면서, 그것을 “급히 접어” 감추고 있어요.
너: 시인의 자기 성찰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시인은 제 3연에서 자신의 갈망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나: 일견 시적 자아는 “그대”, 다시 말해 과거에 여덟선녀를 거느라고 찬란하고도 허망하게 살아갔던 영웅에게 자신의 삶의 의미를 토로합니다. 이는 두 사람의 공감의 폭을 넓히게 하는 데 기여합니다.
너: 시적자아는 지금까지 비록 “애저녁”까지 살았지만, 차제에는 자신이 갈구하는 대로 살고 싶어 합니다.
나: 동의합니다. 시적 자아의 “간절한” 해방의 욕구는 “노을 끝을 움켜 잡”는다는 표현 속에 담겨 있습니다. 한 번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면서 살아오지 못한 아쉬움이 내면의 “새” 한 마리를 날려보내게 합니다. 참으로 기막힌 시구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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