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회심리론

결혼 이야기, 혹은 루신데 (1)

필자 (匹子) 2018. 8. 6. 14:15

고대에는 결혼 제도가 아예 없는 지역도 있었습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채택한 결혼 제도는 어느 정도 완화된 일부일처제였습니다. 플루타르코스의 "리쿠르고스의 삶"을 읽으면 우리는 다음의 사항 또한 접할 수 있습니다. 즉 고대의 일부 남자들은 노예가 아닐 경우- 다른 여자를 거느렸으며, 미모의 청년과 동성연애도 즐겼다는 사항 말입니다. 타키투스에 의히면  게르만 족은 대체로 일부 일처제를 관습으로 살았으며, "다부 일처제 Polyandrie"를 예외적으로 인정했다고 합니다. 기독교가 도래하면서 일부 일처제가 하나의 올바른 관습으로 정해지게 됩니다. 아래의 사진은 사제들이 침대에서 결혼한 남녀를 축하하고 있습니다.

 

 

 

 

 

 

 

 

중세에 이르러 사람들은 일부일처제를 강조했습니다. 가부장적 사회의 질서를 고수하기 위해서 결혼 풍습을 다시 창안해 내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여성들의 존엄성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자그마한 씨족 사회에서 처녀는 당연히 씨족장의 소유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결혼하기 전에 처녀성은 씨족장에게 바쳐져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이는 고대부터 내려온 초야권 Ius primae noctis” 의 일환으로서 내려오는 관습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풍자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패러디로 표현된 바 있습니다.

 

 

 

 

 

대체로 여성들은 심한 노동을 할 수 없었으므로, 남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결혼할 때 지참금을 지닌 채 결혼해야 했습니다. 만약 남편이 일찍 죽으면, 아내는 자신의 지참금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결혼제도란 처음부터 남자를 위해 마련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유럽에서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이에 대해 간섭할 수도 없고, 실제로 간섭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하면 남한에도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만남입니다. 이러한 까닭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씨족의 전통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요약하건대 결혼은 남녀가 가부장의 경제권 내지 전통적 관습에 예속된 채 혼인을 맺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은 일부일처제라는 하나의 규율로 다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사회의 삶이 제각기 다르고 복잡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일부 다처제 내지 다부 일처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이슬람에서는 일부 다처제가 허용되고 있습니다. 다부 일처제는 독일어로 Polyandrie 라고 표현되고, 일부다처제는 Polygynie 라고 표현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구분하지 않고 통상적으로 Polygamie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