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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denberg: 천사의 유혹에 관하여 (2)

필자 (匹子) 2021. 12. 2. 10:39

브레히트는 천사를 의도적으로 비아냥거리기 위해서 시를 집필하였습니다. 천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상의 존재입니다. 그는 남성이지만, 여성처럼 치장하고 있습니다. 아니, 천사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불분명합니다. 브레히트는 천사를 비아냥거림으로써 기독교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유럽 사회에서 얼마나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가를 고발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기독교에서 죄는 언제나 성 Sex과 관련됩니다. 가령 모든 죄를 포괄하는 존재는 바빌로니아의 창녀로서 상징화되고 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창녀는 성스러운 결혼식의 신부입니다. 고매한 쌍으로서의 해와 달의 삭망에 관한 비유를 생각해 보세요. 해와 달이 서로 만나 합치면 (개기일식, 혹은 개기월식), 고대 사람들은 이를 해와 달의 결혼식으로 수용했습니다. 해와 달의 마주침은 남성과 여성의 짝짓기의 축제라는 것입니다. 가령 괴테는 『서동시집 Westöstlicher Diwan』에서 멋진 남자, 하템Hatem과 아름다운 여자, 술라이카Sulaica와의 포옹 장면을 휘황찬란하게 묘사했습니다. 이것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에 근거하는 “성스러운 결혼식ἱερὸς γάμος”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지고의 신 마르두크가 아름다운 여성 이스타르-샤르파니트와 하늘에서 황홀하게 결혼식을 올린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스러운 결혼식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것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만남이며, 태양신 오시리스와 달의 여신 이시스의 합일로 인지되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태초의 인간, 시몬 마구스 Simon Magus와 그의 친딸 소피아의 근친상간의 통정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신화에 의하면 소피아Sophia는 자신을 낳아준 친아버지와 성적으로 결합한 다음에 악령에 납치당합니다. 결국 소피아는 악령들에 의해서 연이어 겁탈당합니다. 미녀를 둘러싼 끔찍한 사건은 나중에 트로이의 헬레나 그리고 티루스의 헬레나에게서 반복됩니다. 말하자면 티루스의 헬레나는 홍등가에서 일하는 창녀로서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방종하게 살아갑니다.

 

천체에서 발생하는 성스러운 결혼식은 때로는 신플라톤주의의 유출이론으로 설명되었습니다. 빛은 근원적 일원성에서 솟아올라서 세계를 형성한 다음에 어둠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빛의 이러한 움직임은 하늘과 땅의 합일, 즉 경천동지의 접합을 통해서 요동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기독교가 도래함으로써 해와 달의 만남으로서의 성스러운 결혼식의 상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성의 성기, “W”는 믿음으로 주위를 싸안는 “교회 ecclesia”로 이해되고, 남성의 성기, “M”은 “그리스도의 몸 corpus Christi”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로써 남녀의 모든 성적 합일은 하나의 원죄로 둔갑하게 되었으며, 바빌로니아의 창녀는 근원적 죄를 뒤집어쓴 상징적 인물로 각인된 것입니다.

 

이러한 유형은 가령 소피아, 술라이카, 이스타르-샤르파니트, 클레오파트라 그리고 요상한 눈빛을 지닌 암캐, 헬레나에게서 동일하게 드러납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성적인 무엇이 바로 죄로 확정되기에 이릅니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사제들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 또한 “성은 범죄다.”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요약하건대 기독교는 모든 성적인 특성을 그리스도의 몸과 교회의 모습으로 축소화시킴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가부장주의의 일부일처의 생활관습을 철칙으로 지킬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이로써 혼외정사는 그 자체 범죄로 단정되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결혼제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결혼한 여성은 한 남자에 예속되는, 가축과 같은 존재로 취급되었습니다. 이로써 일부일처제의 결혼 제도는 기독교 사회에서 하나의 바람직한 질서로 고착되고, 혼외정사와 매춘은 남녀의 불온한 관계로 폄훼되기에 이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녀 간의 순결 내지 정조 지키기가 중요한가, 아니면 디오니소스의 향락을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무엇보다도 권력 이데올로기의 횡포를 간파해야 합니다. 권력자들은 일반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해서 종교의 독단론을 활용해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예리하게 꿰뚫은 사고로서, 그의 『신정논문Tractatus politicus』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신 혹은 자연Deus sive natura”,

 

다시 말해 신은 전지전능한 분이 아니라, 자연이라고 간주한 사람이 바로 스피노자였습니다. 이로써 그는 다음의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즉 권력 이데올로기는 교회권력과 결탁하여 사랑의 삶과 결혼 제도를 공고히 해 왔다는 사실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삶을 향유하기는커녕, 평화기에는 뼈 빠지게 일하고, 전시에는 총알받이 내지는 성노예로 활용된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예의 주시해야 할 사항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내용입니다. 『군주론』에서 저자는 군주가 자신의 권력을 실천하기 위한 크고 작은 방안, 선하고 사악한 술수들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였습니다. 만약 피지배자의 관점으로 군주론을 역으로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미풍양속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권력자 내지 교회 지도자들의 술수를 예리하게 간파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죄 Schuld”란 성 문제와 관련되는 단어로 고착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 짓는 행위는 순결을 잃는 행위와 접목되었습니다. 가령 “죄 있는 schuldig”라는 단어는 “순결을 잃은”이라는 의미와 결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순결이란 언어상으로도 “죄를 아직 짓지 않은 상태 Unschuld”와 의미론적으로 일치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평화를 추구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하인리히 뵐은 단호한 자세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늘날 죄는 ‘일부다처주의 Polygamie’에 기인하는 게 아니라, 군비증강에서 발견된다.”라고 말입니다.

 

오늘날 중요한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내지 향락을 추구하는 자를 표독스럽게 단죄라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집단적으로 살상하게 하는 첨단 핵무기 생산을 비판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삶의 형태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개별적 문제이며, 사랑과 성의 실천이라는 살림에 관한 사항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생화학무기 혹은 핵폭탄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지 않습니까? 우리는 인종과 성 그리고 다른 유형의 사랑의 패턴을 비난할 게 아니라, 민초들의 목숨을 대대적으로 앗아가는 죽임의 여러 형태에 대해 함께 저항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