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 (1)

필자 (匹子) 2021. 12. 4. 11:11

친애하는 J,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은 “우화극 (das Parabelstück)”입니다. 이 작품은 주로 1930년에서 1942년 사이에 집필되었습니다. 집필에 도움을 준 사람은 브레히트의 연인들, 루트 베를라우 (Ruth Berlau) 그리고 마르가레테 슈테핀 (Margarete Steffin)이었습니다. 특히 마르가레테 슈테핀은 40년대 초에 폐결핵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브레히트의 작업을 헌신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사천의 선인」은 1943년 2월 4일에 스위스 취리히에서 초연되었으며, 1952년 구동독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따라서 브레히트 작품들 가운데 이 작품이 가장 복잡한 경로를 거쳐 탄생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브레히트는 스스로 1938년에서 1940년 사이에 이 작품을 집필했다고 술회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천의 선인」의 구상은 이미 20년대에 이루어졌으며, 1930년에 다섯 개의 장면이 “상품으로서의 사랑”이라는 작품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덴마크 망명 시절에 브레히트는 이미 발표되었던 작품을 다시 손질하기 시작하여, 첫 번째 원고를 완성시켰습니다.

 

1941년 그는 마지막 시편들을 집필하여, 초고에 첨가하였습니다. 이것으로 그친 게 아닙니다. 브레히트는 「사천의 선인」을 대폭 수정하였고, 1942년에야 비로소 더 이상 이 작품의 개작에 몰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단언하지는 않았습니다. 브레히트는 1942년 작업일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작품을 하나의 공연을 통해서 실험해보지 않고서는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의 극작품이 완결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센테로 분장한 독일의 여배우 다니엘라 케켈스 (튀빙겐 주립극장)

 

 

친애하는 J, 당신을 위해서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서막에서 집 없는 물장수인 왕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세 명의 신들이 중국의 도시 사천을 찾아 와서, 선한 인간을 찾습니다. 왜냐하면 이천 년 동안 다음과 같은 외침소리가 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은 세계는 존속될 수 없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선하게 머무를 수 없다.” 물장수 왕은 신들을 위해서 끼니와 잠자리를 얻을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주려고 하지만,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회에서는 부자들 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 또한 냉혹한 이기심으로 타인을 속이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천에서는 오로지 창녀 셴테만이 유일하게 만사를 제치고, 세 명의 신들에게 방을 제공합니다. 셴테 (Shen Te)라는 이름은 “신의 영향력”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다음날 신들은 타인에게 무조건 선을 베풀지 말라고 그미에게 충고합니다. 이때 셴테는 자신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낱낱이 털어놓습니다. 이때 신들은 감사의 표시로 그미에게 약간의 돈을 남긴 뒤 사라집니다.

 

셴테는 이 돈으로 담배 가게를 운영합니다. 그렇지만 그미는 주위에서 도움을 간청하는 자들을 뿌리칠 수 없습니다. 셴테는 선한 마음으로 이들을 도와줍니다. 문제는 그미가 무작정 이들을 도와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담배 가게의 경영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미는 가면을 쓴 채 사촌 수이타로 변신합니다. 수이타는 완강하고 차가우며 사업적 수완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수이타는 자신의 사업적 관심사를 관철시킵니다. 친애하는 J, 요한의 복음서 12장 24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지요? “한 알의 씨알이 땅에 떨어져 있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하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과연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남을 도우는 일이 과연 얼마나 가능할까요?

 

착하디착한 셴테는 다시금 주어진 현실에서 하나의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는 다름 아니라 그미가 직업이 없는 비행사, 양순을 사랑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위기입니다. 셴테는 양순을 위하여 자신의 가게를 팔아치웁니다. 만약 그 돈을 어느 회사에 뇌물로 바치면, 양순이 베이징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리라고 그미는 지레짐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양순은 자신의 궁핍함을 떨치기 위해서 셴테를 이용한 셈이었습니다. 양순은 자신의 아기를 임신한 셴테를 버려두고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양순은 기회주의적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이기심만을 충족시키는 기회주의적 인간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양순의 “비행”에 관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행이란 양순의 직업이지만, 그 자체 하나의 상징적인 행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아가 기술적 진보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양순은 사회의 엘리트로서 이른바 하늘을 날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회적 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파이어니어가 아니라, 마치 강제수용소와 같은 담배 공장에서 무산계급을 착취하는 십장으로 악랄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계속하는 한 양순은 부르주아에 아부하고, 프롤레타리아를 혹사시키는 기회주의적인 인간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뒤이어 수이타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셴테의 사촌오빠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수이타는 폐허가 된 바라크를 담배 공장으로 다시 꾸밉니다. 그리하여 셴테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값싼 임금으로 일하도록 강요합니다. 수이타의 노력으로 사업은 다시금 번창 일로에 있습니다. 문제는 셴테가 한 번도 모습을 나타나지 않는다는 데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서운 수이타가 셴테를 죽였다고 의심을 품습니다. 결국 수이타는 법정에 서게 됩니다. 법정의 재판관은 맨 처음에 셴테가 영접한 바로 그 세 명의 신들이었습니다. 수이타는 그들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힙니다.

 

셴테는 다음과 같이 절규합니다. “당신들은 날더러 선을 베풀면서 살아가라고 명령하셨지요. 그러나 그러한 명령은 마치 번개처럼 나를 갈라놓았어요.” 신들은 이에 대해 답하지 못하고, 분홍빛 구름만 남겨두고 사라집니다. 극작품의 결말은 개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실망스러운 듯 서성거리고, 놀란 듯이 장막을/ 쳐다보며, 모든 질문들을 개방시켜 놓는다.” 마지막으로 배우 한 사람이 등장하여 「사천의 선인」의 해결책에 골몰하는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존경하는 관객 여러분, 스스로 결론을 내리십시오. 어떤 선한 자가 존재해야 합니다. 반드시, 반드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