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 (2)

필자 (匹子) 2021. 12. 5. 09:22

(앞에서 계속됩니다.)

 

극작가는 서사극적 구조 그리고 논평 등을 통하여 사건의 진행 과정을 차단시키고, 회상하도록 조처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특징적인 것은 “노래들 (Songs)”입니다. 가령 「연기에 관한 노래」는 브레히트가 20년대에 쓴 「아편 동굴에서 나온 노래」에 착안한 것인데, 세계는 마치 니체의 허무주의 내지 희망 없는 태도 등으로는 변화될 수 없음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비 오는 날 물장수의 노래」는 주어진 기회를 잃은 상인의 하소연을 예리하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노래는 비가 오는데도 물을 사는 셴테의 비이성적인 태도를 은근히 비아냥거리기 위해서 삽입된 것입니다.

 

「신들과 선함의 무저항에 관한 노래」에서 극작가는 신앙이라든가 선 등의 추상적 개념이 실제 인간 삶과는 동떨어진 허사라는 점을 풍자합니다. 「결코 도래할 수 없는 성스러운 날에 관한 노래」에서 시인은 다음의 사항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즉 찬란한 미래는 때로는 허황된 꿈이므로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사항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의 심판의 날이 더 이상 도래하지 않는 까닭은 그게 희망으로 현혹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여덟 코끼리에 관한 노래」는 루디아르드 키플링 (R. Kipling)의 작품에서 착안된 것인데, 등장인물 양순의 기회주의적 엘리트 의식을 비아냥거리기 위한 작품입니다. 여덟 번째의 코끼리는 상아를 단 채 주인을 위하여 다른 일곱 코끼리를 혹사시키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J, 「사천의 선인」의 주제는 어떻게 요약될 수 있을까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현재의 세계 속에서 선한 사람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가? 어쩌면 이 세계는 반드시 변화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신들은 이에 대해 전혀 영향력을 지니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의 변화의 필연성을 깨달아야 할 사람은 신들이 아니라, 관객들이어야 합니다. 브레히트는 처음부터 “사천”을 철저하게 자본주의로 무장한 도시로 설정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사천이라는 도시는 중국에 실재하는 도시 사천과 일치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천은 특정한 역사적 현실과 결부된 도시가 아니라, 하나의 범례로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고 있는 도시”로 규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브레히트는 작품 「투이 소설 (Tui-Roman)」에서 “차이나 (China)”를 “차이마 (Chima)”와 구분한 바 있습니다. 전자가 실재하는 중국을 가리킨다면, 후자는 하나의 가상적인 공간을 지칭합니다. 다시 말해서 “차이마”는 이른바 고대의 지혜를 마르크스주의로 여과시킨 사상이 지배하는 나라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J, 브레히트는 항상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즉 자신을 변화시키고, 동시에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 -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위대한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센테는 수이타로 변장하여, 사업을 일으킵니다. 이는 주어진 구조 하에서는 어쩔 수 없는 방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셴테가 수이타로 변장하여 이중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 구조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인간은 결코 선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돈과 돈으로 이어진 관계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모든 만남은 돈과 돈으로 맺어집니다. 그렇기에 어떤 (마이신으로서의 사회주의의 특성이 조금도 가미되어 있지 않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인간은 살아남으려면, 이중적인 생활을 영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스스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친애하는 J, 그렇다면 인간은 개별적 변장보다, 어떤 공동의 힘으로 주어진 사회를 바꾸어나가려고 애써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다른 한 편 사악한 자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관찰해볼 수 있습니다. 사악한 자는 대체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하는 자입니다. 자신의 이익은 항상 돈과 관련되지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들로부터 재화를 착취하기 위하여 밤낮으로 궁리하는 자가 바로 사악한 인간일 것입니다. 물론 사기와 속임수로 약간의 재화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차지하지만, 사악한 인간의 삶은 얼마나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것일까요? 시간만 있으면, 기만과 술수 그리고 흑색선전을 고안해내느라고 그들의 몰골은 찌그러져 있으며, 이마에는 핏발이 도사리고 있을 테니까요. 사악한 자는 참으로 불쌍한 존재입니다. 눈앞의 작은 이득 때문에 항상 불안해하고, 남들이 편안히 잠든 시간에 깨어 있어야 하니까요. 다음은 브레히트의 시 「악한 자의 가면」입니다.

 

나의 벽에는 나무로 만든 일제 탈이 걸려 있다.

도금 처리된 악령의 마스크

동정하면서 나는 이마 위에 불룩

튀어난 핏줄을 바라본다. 탈은 암시해준다,

사악하게 행동하기란 얼마나 힘든가를.

 

(An meiner Wand hängt eine japanische Holzmaske/ Maske eines bösen Dämons, bemalt mit Goldlack/ Mitfühlend sehe ich/ Die geschwollenen Stirnadern, andeutend/ Wie anstrengend es ist, böse zu sein. 「Maske des Bö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