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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뒤렌마트의 물리학자들

필자 (匹子) 2021. 9. 4. 09:42

1. 뒤렌마트의 희비극: 스위스 출신의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Fr. Dürrenmatt, 1921 - 1990)의 2막으로 이루어진 희극 작품, 「물리학자들 Die Physiker」은 1961년에 발표, 1962년에 취리히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제 2고는 1980년에 개작되어, 전집에 실렸습니다. 작품은 세계를 필연적으로 위협하는 현대 핵물리학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극작품은 여배우, 테레제 기제 (Th. Giese)에게 헌정되었는데, 전통적 극작품의 형식에 해당하는 장소, 시간 그리고 행위의 일치성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뒤렌마트의 희비극의 특성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희비극Tragikomödie”이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희비극의 작품은 연극의 진행 과정이라든가 표현 방식에 있어서 우스꽝스러운 기법을 도입하거나, 배우로 하여금 기괴한 모습을 드러내게 하여, 관객의 흥미를 유발시킨다는 점에서 희극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관객으로 하여금 더 이상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비극적 내용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철저히 비극적입니다. 실제로 뒤렌마트는 이러한 유형의 극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2. 세 명의 물리학자, 정신 병원에 입원하다.: 「물리학자들」의 줄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무대는 스위스의 어느 정신 병동입니다. 1980년, 그러니까 미래의 시점에 세계적인 여류 병리학자 마틸데 폰 찬트는 여러 환자들 가운데 세 명의 특별한 환자를 보살피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견 무해하고도 곱게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는 핵물리학자들입니다. 그들은 뫼비우스, 에르네스티 그리고 보이틀러라는 인물입니다.

 

요한 빌헬름 뫼비우스는 자신이 솔로몬 왕에게 놀라운 발명을 구술하는 자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에른스트 하인리히 에르네스티는 스스로 아인슈타인이라고 칭하며, 헤르베르트 게오르크 보이틀러는 자기 자신을 뉴턴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어느 날 놀랍게도 세 명의 간호사가 살해당합니다. 그곳에서 수사반장 포스는 최근에 이곳에 와서 진범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사건은 바로 수사반장이 사건을 추적하는 일로 시작됩니다.

 

3. 자신의 연구를 감추려고 간호사들을 살해하다.: 스토리의 놀라운 변환은 제 2막의 중간에서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세 명의 환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심리적으로 병들지 않았다는 시실입니다. 간호사들이 이 사실을 파악하게 되된 시점에 세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간호사들을 살해하게 된 것입니다. 원래 뫼비우스는 탁월한 학위 논문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 즉시 정신 병동에 도망쳤습니다. 두 명의 자칭 물리학자들은 그를 따라 이곳으로 잠입했습니다. 왜냐하면 뫼비우스는 비밀스러운 실험을 통하여 놀라운 핵반응의 공식을 발견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뫼비우스는 자신의 연구를 통하여 세계가 파괴될지 모른다고 믿게 됩니다. 따라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는 자신이 스스로 미친 척하여 정신병동에 숨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정치가가 미친 사람에게서 놀라운 자연과학의 업적을 기대하지 않으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다른 한편 에르네스티 와 보이틀러 (뉴턴) 역시 미친 사람으로 행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두 강대국에서 보낸 탐정들로서 제각기 자신의 나라를 위해 핵반응 공식을 찾아내려는 임무를 수행하려고 합니다.

 

4. 물리학자들 외부의 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다.: 뫼비우스는 혼자 다음과 같이 중얼거립니다. “우리는 지식을 되돌려 놓아야 해. (...) 우리가 정신 병원에 갇히지 않으면 세상이 온통 정신 병원으로 변할 테니.” 그는 끝내 핵반응의 공식을 불태워 없앱니다. 이 순간 주치의 마틸데 찬트가 방으로 들어서며, 세 명의 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갈합니다. “너희는 나의 죄수들이야.” 처음부터 그미는 모든 것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원고가 불타기 전에 이미 그것을 교묘하게 복사해 두었던 것입니다. 이로써 세상은 미친 여의사, 늙은 곱사등이 할멈의 손에 장악되는 것 같습니다. 세 명의 환자들은 영원히 철창 속에 갇히게 됩니다. 아인슈타인, 뉴턴 그리고 솔로몬은 스스로 광기를 선택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오랜 세월을 철창 속에서 보내야 합니다.

 

5. 세 물리학자들의 특성: 작품에 등장하는 세 명의 물리학자는 자신의 연구에 대해 제각기 다른 견해를 품고 있습니다. 첫째로 보이틀러 (뉴턴)는 학문의 이상을 수미 일관적으로 맹신하고 있습니다. 연구의 결과는 반드시 명징하게 도출될 수 있으며, 인간에게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는 자연과학이 현실에 잘못 적용하는 경우를 추호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둘째로 에르네스티 (아인슈타인)는 자신의 연구 행위에 갈등을 느끼는 인물입니다. 자연과학의 연구 결과가 더 이상 학자에 의해 제어될 수 없다는 것을 피부로 절감합니다.

 

말하자면 에르네스티는 학문과 윤리 사이의 딜레마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대인들을 사랑하지만, 대량 학살 무기를 생산하는 데 동조하고 맙니다. 이로써 그의 연구는 권력의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셋째로 뫼비우스는 인간의 미래가 더 이상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발명품이 세상을 파괴하게 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은 과거에 그토록 부유하고, 현명하며, 막강한 힘을 자랑했으나, 이제는 자신의 힘과 권한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오늘날 자연과학자들은 뫼비우스에 의하면 연구 결과에 대한 학자의 윤리적 책임을 너무 뒤늦게 통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6. 작품 발표 시점의 시대적 상황: 일단 우리는 작품의 발표 시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 체제가 극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1957년에 서독의 핵에너지 연구가들은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핵에너지는 무기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그들의 지론이었습니다. 1959년에 서독의 작가 귄터 안더스Günther Anders는 「원자력 시대의 테제」를 발표하여, 뒤렌마트의 「물리학자들」을 인용했습니다. “모두에게 적중할 수 있는 것은 모두에게 관련된다.” 뒤렌마트는 이미 1955년에 카바레 공연을 위한 스케치 「발명자Die Erfinder」를 발표하였습니다. 물리학 교수 한 사람이 소형 폭탄 하나를 들고 무대에 등장하는데, 그것으로 세계와 완전히 절멸시킬 수 있다고 공언합니다.

 

7. 뒤렌마트의 21개의 테제 (1): 뒤렌마트는 자신의 극작품 말미에 21개의 테제를 올려놓았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는 테제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2. 하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면, 마지막 결말까지 생각해내야 한다. 3.만약 마지막에 가능한, 가장 끔찍한 전환을 도출해낸다면, 하나의 이야기가 끝까지 숙고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가장 끔찍한 전환은 미리 예견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연에 의해 출현한다. 5. 극작가의 기술은 하나의 줄거리를 통해서 가급적이면 우연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가를 지적하는 데 있다. 6. 극적 행위를 이전시키는 자는 인간이다. 7. 극적 행위의 우연은 언제, 어디서 누가 우연히 누구를 만나는가? 하는 물음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8. 인간이 계획적으로 행동하면 그럴수록 우연은 더욱더 강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엄습한다.

 

8. 뒤렌마트의 21개의 테제 (2): 9. 계획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목표를 달성한다. 만약 자신의 목표와 상반되는 무엇을 획득했을 때 우연은 그들에게 끔찍하게 다가온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회피하려는 무엇과 마주치는 일이다. (오이디푸스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10. 그러한 이야기는 그로테스크하지만, 의미 없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11. 그것은 역설이다. 12. 극작가는 논리학자와 마찬가지로 역설을 전달할 수는 없다. 13. 물리학자는 논리학자와 마찬가지로 역설을 전달할 수는 없다.

 

14. 물리학자에 관한 하나의 드라마는 역설적이어야 한다. 15. 드라마는 물리학의 내용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물리학의 영향력을 목표로 정할 수 있다. 16. 물리학의 내용은 물리학자와 관련되고, 모든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 17. 만인과 관련되는 것은 오로지 만인만이 해결할 수 있다. 18. 만인과 관련되는 문제를 개별적으로 해결하려는 모든 시도는 반드시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19. 현실은 역설적 상황으로 나타난다. 20. 역설과 마주치는 자는 자신의 현실적 문제에 골몰해야 한다. 21. 극예술은 관객을 현혹시킬 수 있으며, 그들에게 현실적 갈등을 보여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극예술은 현실적 갈등을 강요할 수도 없고, 대립할 수도 없으며 그것을 극복할 수도 없다.” (필자 역)

 

15. 뒤렌마트와 브레히트: 뒤렌마트는 창작 노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인간이 계획적으로 무슨 일을 수행하면, 그는 그럴수록 더욱더 우연에 강하게 지배당하게 된다.” 브레히트가 ?갈릴레이의 생애?에서 과학자의 책임을 비판적으로 지적하며, 어떤 해결책을 촉구하였다면, 뒤렌마트는 과학자의 작업에 대해 철저히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다시 말해 자연 과학자가 오늘날 제 아무리 자신의 원고를 불태운다 하더라도, 한 개인으로서는 파국에 직면한 인류를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뒤렌마트는 브레히트보다도 더 염세적 태도를 표명합니다.

 

브레히트가 『갈릴레이의 생애』에서 제기한 과학자의 책임의식은 뒤렌마트의 작품에서는 무의미한 것으로 판명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자가 제 아무리 고도의 기술을 지니다가, 이를 철회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에 이르러 권력자에 의해 악용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뫼비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언젠가 생각된 것은 나중에 없는 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렇기에 뒤렌마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물리학의 내용은 물리학자들에게만 관계되는 게 아니라, 인류 전체와 관계된다. 우리 모두와 관련되는 일은 우리 모두에 의해서 해결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와 관계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개별적 시도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16. 세계의 움직임에 대한 개인의 불가항력: 세계는 뒤렌마트의 견해에 의하면 개인의 힘으로 뒤바뀔 수 없다고 합니다. 개인은 거대한 전체주의의 톱니바퀴를 멈추게 할 능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뒤렌마트의 이러한 입장은 자신의 연극 이론으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종전의 비극에서는 영웅이 등장하여, 역사를 바꾸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영웅의 존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자극을 가할 수 있는 방법은 뒤렌마트에 의하면 오늘날 웃음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웃음은 하나의 냉소입니다. 그것은 어떤 새로운 진리를 깨달을 때 나타나는 합리적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주어진 절망적 현실을 감지하게 하는 쓰라린 미소의 특성을 지닙니다. 따라서 뒤렌마트에게 웃음이란 합리적, 교육적 깨달음의 의미를 담는 게 아니라, 그 자체 절망적 현실과 대안 부재의 상황을 절감하는 순간적 반작용에 불과합니다. 이 점이야 말로 뒤렌마트 문학의 특성이자 한계로 지적될 수 있는 사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