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렌츠의 가정교사 (1)

필자 (匹子) 2021. 10. 4. 08:53

친애하는 L, 오늘은 독일의 문화적 황금 시기에 좌절과 가난으로 고통스럽게 살아간 한 작가의 작품 하나를 고찰하려고 합니다. 야콥 미하엘 라인홀트 렌츠 (Jakob Michael Reinhold Lenz, 1751 - 1792)의 「가정교사」라는 희극작품이 그것입니다. 작품의 제목은 어쩌면 “접장이라고 번역되는 게 타당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가정교사는 주로 고위 귀족층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처음부터 신분상의 차이를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요. 보수가 너무나 박한 것은 물론이요,

 

시도 때도 없이 귀족들로부터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헤겔, 실러를 비롯하여 평민 출신의 수많은 젊은 지식인들이 가정교사 직을 통해서 생계를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독일의 지식인들은 지배 계층과 피 지배 계층 사이에서 서성거렸지만, 먹고 사는 데 급급하여 결코 인민을 계도하거나 민초들을 계몽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지배 계층의 자녀들을 가르치면서 권력에 허리를 굽혀야 했습니다.

 

렌츠는 불과 41년의 삶을 살다 죽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그는 괴테를 흠모하여 스트라스부르로 향했습니다. 그래서 괴테의 옛 애인인 프리드리케 브리온 Friedrike Brion을 찾아가서, 괴테를 대신하여 사랑의 상처를 달래면서 “그미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려” 했습니다. 나중에 괴테는 이 소식을 접하고 불쾌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왜 그가 이를 불쾌하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헤어진 연인도 행복하게 살아갈 권한이 있지 않습니까?) 렌츠는 다재다능하고 영리한 작가였지만, 독지가의 도움을 필요로 했습니다. 렌츠는 바이마르로 가서, 괴테의 도움을 받으려 했습니다.

 

실제로 바이마르 공국에서 렌츠는 많은 여성들의 호감을 독차지 했습니다. 외모는 별로였지만,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탁월한 언변 그리고 번득이는 재치와 기발한 유머는 언제나 사교 모임을 웃음바다로 만들곤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괴테의 사촌누이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괴테의 집안은 귀족 가문이었고,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에서 추밀원 고문관으로 봉직하고 있었습니다. 괴테는 누이와의 염문을 접하고, 렌츠를 공국으로부터 추방시킵니다. 렌츠는 이때부터 정신착란의 증세를 보입니다. 나중에 게오르크 뷔히너 Georg Büchner는 자신의 단편, 「렌츠」에서 불행한 작가의 정신착란 증세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바 있습니다. 렌츠는 그 이후 이곳저곳을 방랑합니다. 렌츠는 입에 풀칠하기 위하여 모스크바에서 잠깐 가정교사 생활을 영위하다가, 백주 대낮에 모스크바의 중앙역 근처에서 가방을 놓은 채 쓰러져 유명을 달리했다고 합니다.

 

 

 

 

가정교사는 렌츠가 스트라스부르에 체류하던 시기인 1772년에 집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작품은 1774년에 익명으로 발표되었으며, 1778년 4월에 함부르크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 작품을 괴테의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렌츠는 잠깐 쾨니히스베르크에서 가정교사로 일한 적이 있는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집필하였습니다. 렌츠는 당시의 합리주의의 연출에 반대하는 견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의 견해는연극에 관한 논평 Anmerkungen übers Theater(1774)에 세밀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연극은 렌츠에 의하면 희극이어야 하며, “만인을 위한 생각” 그리고 “인간 사회의 밑그림”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렌츠는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우리 독일 희극작가들은 우스꽝스럽고도 슬프게 창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작품 속에 다루는 인민은 조야함과 문화, 도덕성과 야함을 동시에 간직하기 때문이다. (...) 그렇기에 독일 희극작가들은 슬퍼하는 인민들에게서 자신의 관객을 창조해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렌츠는 가정교사를 희극이자 동시에 비극이라고 천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연극론은 거의 이백년을 선취 (先取)하는 게 아닐 수 없습니다. 뒤렌마트의 그로테스크 연극론 역시 렌츠의 연극론이 없었다면, 만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