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65

서로박: 프리스의 '비행선' (2)

(앞에서 계속됩니다.) 친애하는 F, 소설의 내용이 어떠했는지요? 물론 소설의 줄거리를 일직선적으로 이어나가는 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특히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항은 다양한 소설의 관점입니다. 소설의 관점은 세 가지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폴로니아는 자신의 아버지를 회고하면서 그의 구체적 삶을 서술합니다. 이를테면 슈탄네바인의 알려지지 않은 일화라든가 비밀스런 이야기들은 그미에 의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폴로니아가 보수적 시민주의 내지 소시민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슈탄네바인에 대한 그미의 시각은 온건하고, 우호적입니다. 이에 반해서 손자인 소설적 화자인 치코는 할아버지의 어정쩡한 정치적 태도를 비판적으로 논평합니다. 슈탄네바인은 비정치적인, 아..

45 동독문학 2022.06.05

서로박: 프리스의 '비행선' (1)

친애하는 F, 프리츠 루돌프 프리스 (1935 - 2014)의 『비행선 Das Luftschiff』은 이전의 발표된 작품, 『오블라두로 향하는 길 Der Weg nach Oobladooh』과는 달리 동서독에서 공히 1974년에 발표되었습니다. 비행선을 소재로 한 작품은 주로 20세기 이후 생텍쥐페리의 일련의 소설 외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으며, 독일문학 작품에서는 거의 드문 소재인데, 프리스가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시켰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생텍쥐페리의 소설과 프리츠 루돌프 프리스의 『비행선』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리라고 판단됩니다. 왜냐하면 전자가 모성과 이에 대한 일탈이라는 심리학적 관점의 모티프를 제공하고 있다면, 후자는 시민주의 사회의 부자유와 이에 대한 일탈 욕구라는 ..

45 동독문학 2022.06.05

서로박: 제거스의 '결투' 뮐러의 '볼로콜람스커 국도 III' (1)

1. 망각될 수 없는 명작, 볼로콜람스커 국도 III: 친애하는 J, 오늘은 하이너 뮐러의 「볼로코람스커 국도 III」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85년 그리고 86년 사이에 발표된 것으로서, 도합 다섯 단락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다루려는 뮐러의 세 번째 작품에는 “결투 das Duell”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다섯 작품 가운데 가장 독특하고, 뮐러가 처한 현실적 정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소설가 안나 제거스 (1900 - 1983)의 단편 「결투 Das Duell」를 원전으로 하여 집필된 것입니다. 작품의 핵심사항을 파악하려면, 우리는 우선 그미의 단편집, 『약한 자들의 지략 List der Schwachen』에 실려 있는 결투의 내용을 자세하게 ..

45 동독문학 2022.05.21

서로박: 제거스의 '결투' 뮐러의 '볼로콜람스커 국도 III' (2)

(앞에서 계속됩니다.) 5. 안나 제거스의 창작 의도, 숨어 있는 영웅 발굴하기: 안나 제거스는 이 단편을 통해 두 가지 사항을 분명히 밝히려고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빈프리트와 같이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던 자들이 과거에 저지른 죄과를 분명히 밝히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밝혀지지 않은 영웅을 찾아내는 일을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작가는 뵈트허와 같은 나치에 저항하고, 약자를 돕던 자들의 희생정신 내지는 숨은 영웅적 행위를 찬양하려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뵈트허 교수는 나치로부터 핍박당하면서도 자신의 지조를 꺾지 않은 우직하고 올바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주인공 헬비히가 생각하는 뵈트허 교수는 사회주의의 재건의 시대에도 일신의 편안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올바르고 정의로운 학교를 위한 개혁 운동에 헌신적으..

45 동독문학 2022.05.21

서로박: 하인의 '낯선 연인' (5)

18. 주변 인물들과 가부장적 남성 중심사회 (1): 클라우디아가 분열된 이중적 자아를 지닌 채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까닭은 그미가 구동독이라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고 애틋한 사랑의 삶에 관한 어떠한 구체적 사항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동독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내세우면서 평등한 삶을 추구해 왔지만, 사회 심리적 측면에서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삶을 추구하려는 남녀들을 전혀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방해해 왔습니다. 오로지 여성에게만 금욕과 순결을 요구하는 가부장적 자기기만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가해 왔습니다. 다른 한편 레닌과 같은 권력을 지닌 남자들은 모든 창녀들을 달콤한 마돈나라고 아름답게 포장하곤 하였습니다. 이에 관해서 클라라 체트..

45 동독문학 2022.05.20

서로박: 하인의 '낯선 연인' (4)

15. 분열된 이중 자아의 원인 (2)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구동독의 이데올로기: 둘째로 클라우디아가 성격 갑옷을 착용하면서 분열된 이중 구조의 성격을 드러내는 까닭은 구동독의 가부장적 금욕주의 뿐 아니라, 여성 학대라는 사회적 경향 때문입니다. 1953년 6월 17일 구동독에서 동베를린 노동자 데모가 끝났을 때 지배 계층은 다음과 같은 강령을 모든 학교에 하달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사랑과 성은 하나의 타부, 즉 금기 사항이라고 말입니다.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은 이 세상에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여성의 성을 차지하고 학대하는 가부장들의 성폭력밖에 없다는 말을 뜻합니다. 가부장적 성폭력은 오랫동안 구동독에서 지배의 수단으로 작용해 왔습..

45 동독문학 2022.05.19

서로박: 하인의 '낯선 연인' (3)

9. 클라우디아의 냉담한 태도: 지금까지 여주인공은 헨리와 교우했지만, 깊이 빠져들기를 거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미는 스스로 사랑에 빠져 들까봐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자신의 자의식을 침해하기 때문입니다. 헨리는 그미에게 친구이자 애인이지만, 낯선 남자에 불과합니다. 비록 정기적으로 그와 만나 동침하지만, 그미는 헨리가 자신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처음부터 거부합니다. 한마디로 클라우디아는 자신의 고유한 감정에 이끌리지 않으려고 하며, 나아가 남들로부터, 특히 남자들로부터 기만당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를테면 타인에게 따뜻한 정을 주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 전체를 타인에게 떠맡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간헐적으로 외로움이 엄습하고, 사랑하는 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싶은 경우가 없는 것은 아..

45 동독문학 2022.05.18

서로박: 하인의 '낯선 연인' (2)

5. 용의 피의 의미: 클라우디아의 살갗은 어떠한 무엇도 통과시키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무장되어 있습니다. 그미는 자신의 살갗을 하나의 견고한 성 (城)이라고 간주합니다. (Hein: 209). 여기서 우리는 “용의 피”라는 제목에 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 신화에 의하면 영웅 지크프리트는 용을 죽이고, 용이 흘린 피에 자신의 몸을 적십니다. 왜냐하면 일설에 의하면 자신의 몸을 용의 피로 씻으면, 어떠한 외부의 공격에도 상처입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크프리트가 용의 피에 몸을 담그기 전에 잔등에 보리수 잎사귀 하나가 달라붙습니다. 이로 인하여 지크프리트의 잔등에는 우연히 용의 피가 묻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아킬레스의 약점이 그의 종아리 아래의 아킬레스 근이었다면, 영웅 지크프리트..

45 동독문학 2022.05.17

서로박: 하인의 '낯선 연인' (1)

1. 기이하고도 놀라운 명작: 친애하는 H, 문학 작품은 일견 뜬금없는 공상적 이야기로 이루어진 것 같지만, 주어진 사회의 깊은 문제를 은근히 보여주는 수단입니다. 만약 특정한 작품이 주어진 사회의 핵심적 난제를 교묘하게 꿰뚫고 있다면, 그 작품은 명작의 반열에 오를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오늘은 크리스토프 하인의 중편소설 「낯선 연인 Der fremde Freund」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982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하인의 두 번째 산문으로서, 동독에서 발표된 이후에 서독에서 “용의 피 Drachenblut”라는 제목으로 루흐터한트 출판사에서 간행되었습니다. 크리스토프 하인은 1944년생의 구동독 출신의 작가로서 대학에서 철학과 논리학을 공부한 뒤에 80년대 초까지 주로 극작품을 집필해 왔습니다..

45 동독문학 2022.05.16

서로박: 제거스의 '통과 비자' (2)

(앞에서 계속됩니다.) 8. 주인공, 의사를 연적으로 간주하게 되다.: 주인공은 의사가 가급적이면 마르세유를 떠나도록 그를 도와줍니다. 그렇게 해야 마리를 그로부터 지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선박의 승선권은 어느 장교에 의해 몰수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의사는 떠날 수 없게 됩니다. 의사는 주인공을 만나, 자신이 마리와 새살림을 차릴 계획을 품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때 주인공은 의사가 출국하지 않은 데 대해 분개하면서, 그와 마리가 서로 만나지 못하게 조처합니다. 주인공은 드디어 미국으로 향하는 경유 허가를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에스파냐를 경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바이델은 1930년대 말에 에스파냐 내전 당시에 발생한 대량학살에 관한 기사를 신문에 발표했기 때문이었습..

45 동독문학 2022.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