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1) 폴커 브라운의 '체 게바라, 혹은 태양의 나라'

필자 (匹子) 2025. 2. 6. 11:05

 

- “(...) 자본주의가/ 남겨 놓은 썩어빠진 무기만으로는/ 너는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없네. / 새로운 무엇을 찾아야 해. 새로운 질서 / 혹은 이미 낡은 것을 향상시킨/ 모델, 그렇지. 책상이 나를 관료화시키는가, / 내가 책상을 관료화시키는가?” - (역주: Volker Braun: Guevara oder Der Sonnenstaat, in: ders., Texte in zeitlicher Folge, Bd. 5, Halle/ Leipzig 1990, S. 169. 이하 본문에서 GS로 인용함.)

 

 

1. 들어가는 말

 

의사 출신. 게릴라 전투의 베테랑. 천의 얼굴을 지닐 정도로 변장에 능하나, 고질병인 천식만은 감출 수 없었다. 베레모 차림에 까만 수염 그리고 불타는 눈동자,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1928년에 태어난 그는 1953년 구아테말라에서 구스만 정부를 지지하였다. 1954년에 멕시코에서 게바라는 철학을 전공한 피델 카스트로와 합류한다.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 이 찰디바 정권에 대항하여 싸운 뒤 쿠바를 독자적 사회주의 국가로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1959년에서 1965년까지 쿠바의 재정 및 산업 장관직을 역임한 바 있다. 그러나 1966년 볼리비아 혁명에 가담하여 싸운다. 열두 명의 게릴라와 독일 출신의 여성 한 명은 언제나 게바라 주위에서 게릴라전을 도왔다. 이로 인해 게바라의 별명은 “혁명가 예수”였다고 한다. 1968년 볼리비아의 어느 협곡에서 체포, 사살 당한다.

폴커 브라운의 관심은 무엇보다도 쿠바를 떠난 후부터 죽기까지 게바라의 생애에 집중되고 있다. 대체로 강제 노동과 착취에 피 흘리는 제 3세계 사람들은 게바라를 우상으로서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두었으나, 한 가지 사항만은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가 고난의 쿠바 혁명을 성공리에 이룩한 뒤에, 다시 험난한 가시밭길과 같은 게릴라의 삶을 선택했을까? 하는 물음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말년에 겪었던 격렬한 전투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한 전투, 즉 “투쟁을 위한 투쟁”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렇지만 게바라의 행적은 브라운에 의하면 제반 갈등과 모순 등을 극복하기 위한 필연적 몸부림이었다. 이때 브라운에게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게바라의 마지막 삶의 행적이 아니라, 게바라의 유토피아적 사고와 그 실천이다.

 

아닌 게 아니라 작품의 제목은 게바라가 필연적으로 추적한, 보다 나은 평등 사회에 대한 꿈을 시사한다. 「태양의 나라」는 그 자체 어떤 이중적인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그 하나는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몰락한 잉카 제국에 대한 관련성이요, 다른 하나는 토마소 캄파넬라 (1568 - 1639)의 "태양의 나라 (Civitas solis)"에 대한 관련성이다. (역주: 캄파넬라는 1602년 나폴리에서 스페인 지배에 반대했다는 혐의를 받고 27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이때 집필된 대부분의 작품들이 1613년에 "철학 서한집 Realis philosophia epistologica"으로 이탈리아에서 간행되었다. "태양의 나라"는 이 문헌의 부록으로 맨 처음 간행되었다. 이 작품 속에는 신플라톤주의의 사고에 의거하여 기독교 공동체 국가의 상이 묘사되고 있다.)

 

실제로 캄파넬라의 삶과 작품이 브라운의 작품에서 부각되는 것은 아니다. (역주: 캄파넬라에 관해서는 기껏해야 제 1장에서 등장인물, 붐홀트 =이 이름은 알렉산더 훔볼트에 대한 패러디로 이해될 수 있다=의 독백으로써 조금 암시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브라운의 극작품이 캄파넬라의 사상과 무관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캄파넬라의 바람직한 세계상이 평등이라는 공산주의적 질서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주:1588년부터 1768년까지 예수회 교도들은 파라과이에서 󰡔태양의 나라󰡕에 묘사된 이상을 실현하려고 애를 썼다. 이에 관해서 다음의 책을 참조하라. Paul Laforgue: Der Jesuitenstaat in Paraguay, in: Karl Kautzky: Die beiden ersten großen Utopisten, Stuttgart/ Berlin 1921, S. 121 - 172.)

 

본고에서 필자가 의도하는 바는 극작품 「게바라 혹은 태양의 나라 Guevara oder Der Sonnenstaat」을 분석함으로써, 사회 혁명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몇 가지 모순점 및 시대정신에 대한 작가의 비판 등을 밝히려는 것이다. 문제는 다음과 같은 물음과 관련된다. 즉 주인공 체 게바라는 어떠한 이유에서 투쟁에 대한 신념을 꺾지 않으며, 무엇 때문에 주변 인물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가? 이는 70년대 구동독의 현실과 어떠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는가? 그밖에 막간극을 통해 극작가 브라운은 유럽 사회의 시대정신 및 서양의 마르크스주의적 지식인들에 대해 어떠한 비판적 입장을 내세우고 있는가? 등이 바로 그 물음들이다. 이를 위해서는 비 유럽적 소재를 채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극작가가 생각했는지 모른다. (역주: 물론 브라운의 극작품 가운데에서 비유럽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으로서 󰡔거대한 평화 Großer Frieden󰡕를 들 수 있다. 그렇지만 고대 중국의 진나라의 소재를 동원한 이 작품의 주제는 권력과 전쟁 지향주의를 고발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유럽 사회의 지식인 문제와 직결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

 

2. 극작품의 해석시의 중요 사항 및 수정 작업

 

브라운의 극을 논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우리는 작품 분석 시에 확증할만한 역사적 사실 자체에 커다란 비중을 두어서는 안 된다. 만약 「게바라 혹은 태양의 나라」 그리고 「레닌의 죽음 Lenins Tod」 등과 같은 브라운의 극작품이 오로지 역사적 차원에서 이해된다면, 이는 결정주의의 숙명론과 같은 해석을 낳게 되며, 어떤 창조적인 새로운 해석을 불가능하게 한다. 브라운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어쩌면 이러한 오류를 피하기 위함이었는지 모른다. “이 작품은 문헌이나 기록에 입각한 게 아니다. 인물들은 모두 가상적이다. (역주: 엄밀히 따지면 이 발언은 역사성보다는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다. Vgl. V. Braun: Über die Schwierigkeit beim Schreiben der Wahrheit der Geschichte, in: ders., Es genügt nicht die einfache Wahrheit, Frankfurt a. M. 1976, S. 68. 본문에 인용된 글은 「게바라 혹은 태양의 나라」가 1977년 만하임 국민 극장에서 초연되었을 때, 팸플릿에 실렸다.)

 

둘째로 극작가에게서 중요한 것은 게바라의 비극적인 최후 자체가 아니라, 혁명적 실천에 대한 어려움을 비판적으로 추적하는 작업이다. 이를테면 사건의 전개가 연대기의 역순에 의해서 구성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역주: 폴커 브라운: “(...) 모든 장면은 전투의 불가능성과 오류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로써 어떤 전환이 생기게 된다. 즉 싸우기가 어렵기 때문에 결국에는 오직 투쟁할 수밖에 없다. 주지하다시피 게바라가 책상을 박차고 무기를 쥐는 사실은 놀라운 전환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양’으로부터 어떤 새로운 ‘질’로의 전복과 같다.” GS. S. 175.)

 

작품은 게바라의 체포 및 사살 장면에서 시작되어, 마지막 장면에서 피델 카스트로와의 의견 대립으로 끝난다. 그러므로 게바라와 주변 인물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과 모순 구조를 역순에 의해서 밝히는 작업이 무엇보다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밖에 극작품이 의도적으로 운문으로 씌어져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생경한 느낌을 줄 정도로 간결한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도 브라운의 그러한 비판적 추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셋째로 우리는 막간극에서 유럽의 시대정신 및 서구 지식인에 대한 브라운의 비판을 읽을 수 있다. ‘극중의 극’으로 작용하는 막간극은 도합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독자와 관객에게 게바라 극에 대한 비판적 성찰 및 서구 지식인들의 태도를 유추하게 한다.

 

이러한 사항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전에, 일단 작품의 개작에 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브라운의 극작품은 1977년 서독에서 발표, 만하임 극단에서 초연된 이후로, 1983년과 1990년에 각각 개작되었다. (역주: (제 1판) Theater heute, H. 1, 1978, S. 38 - 45; Spectaculum 27, 1977, S. 69 - 109. (제 2판) Volker Braun: Stücke, Henschel-Verlag 1983. (제 3판) Volker Braun: Texte in zeitlicher Folge, Halle 1990, S. 113 - 175.) 특히 극작가는 1983년 제 2판에서 많은 손질을 가했는데, 이러한 수정 작업은 특히 제 2장과 제 10장에서 두드러지게 이루어졌다. (역주: 이에 비하면 1990년에 발표된 제 3판은 제 2판과 다를 게 별로 없다. 기껏해야 몇몇 등장인물들의 이름들만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브라운의 개작은 -마치 브레히트가 「갈릴레이의 삶 Leben des Galilei」을 수정함으로써 주제상의 변혁을 꾀하려 한 것처럼- 작품 주제에 대한 근본적 변화에서 비롯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물론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사항을 유보해야 한다. 즉 제 2판의 마지막 장에서 등장인물을 통한 미래지향적 전언이 현저하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사항 말이다. (역주: 예컨대 제 1판의, 다음과 같은 마지막 구절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 “지금 어둠 속으로 가라. 스스로 빛이 되라/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너는 해야 해/ 죽은 삶으로부터 자신을 빠져나오게 하라. 자신을 염려하지 마/ 만약 네가 쓰러지면, 외침은 커져나갈 것이다.”).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감이 과감한 퇴고 작업을 통해 생략되었다는 사실은 다름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작가 자신이 지향하는 문제점이 변화되었다는 데에 기인한다. 70년대 중엽 그리고 80년 초의 시기는 -시대정신 및 구동독 사회의 문화 풍토를 고려할 때- 상호 현저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비어만 사건 이후로 구동독 작가들에게 심화된, 작가의 영향에 대한 의구심 내지는 핵전쟁에 대한 위협 등을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제 1판과 제 2판의 수정 작업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로 브라운은 제 2판에서 의미가 반복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하여 지엽적인 사항, 특히 주변 인물들의 대화를 축약시켰다. 이로써 작품의 주제는 효과적으로 압축될 수 있다. 둘째로 극작가는 제 2판에서 구체적 지문을 생략하고 있다. 특히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비난을 담은 문장들을 과감히 생략한 것을 미루어 볼 때, 극작가는 게바라의 삶에 전적으로 종속되는 작품 해석을 피하려고 한 것 같다. 셋째로 브라운은 반혁명주의자의 입장들 역시 첨가하여, 주인공과의 입장 차이를 부각시키고 있다 (GS. 124).

 

이로써 우리는 브라운이 원용하고 있는 변증법적 효과, 즉 ‘부정의 부정’이라는 서술 방법의 입장을 재확인할 수 있다. 작가가 지향하는 바는 낙관적 현실에 대한 묘사보다는, 대립과 모순 구조에 관한 묘사를 통해 드러난다는 입장이 바로 그것이다. (역주: 마르크스주의 작가들이 다루는 현실상은 일견 부정적이고 모순이 가득 찬 세계이다. 그들에 의하면 바람직한 내용은 거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폴커 브라운, 크리스타 볼프의 문학 작품들은 주로 일견 참담한, 패배적인, 이를테면 체념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반면에, 그들의 논문과 대담에서는 이와는 정반대되는 적극성과 낙관주의 내지는 긍정적 의미의 유토피아가 발견된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