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20후독문헌 63

서로박: 아이히의 '비테르보의 소녀들'

귄터 아이히 (1907 - 1972)의 방송극, 「비테르보의 소녀들 (Die Mädchen aus Viterbo)」는 1953년 3월 10일 남서방송극 바덴바덴, 브레멘 방송국 그리고 남독 방송국에서 차례로 발표되었다. 아이히는 50년대 초반에 가장 활발하게 방송극을 집필하였는데, 이 작품은 아이히의 문학 세계를 잘 보여주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70세 노인 골트슈미트 그리고 그의 손녀, 17세의 가브리엘레는 유태인 피난민이다. 그들은 히틀러 정부에 의해 체포되지 않으려고, 베를린의 어느 주거지에 숨어서 살고 있다. 특히 골트슈미트는 지하실 아래에 있는 밀실을 발견하여, 손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목숨을 잃는 데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일말의 희망 등이 일상의 지루함 속에서 그들을 내리 짓누른다. 너무..

44 20후독문헌 2021.03.31

서로박: 루드비히 토마의 '모랄'

친애하는 F., 오늘은 바이에른의 작가, 루드비히 토마 (Ludwig Thoma, 1867 - 1921)의 「모랄 (Moral)」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토마의 극작품은 1908년 11월 20일에 베를린의 소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토마는 바이에른 농민들의 기발한 유머를 익살스럽게 표현한 작품을 많이 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를 향토 작가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몇몇 극작품은 신랄한 정치 풍자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겉보기에는 외설적이고 유머러스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바이에른의 향토적 보수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메스를 가하려고 의도하곤 하였습니다. 오늘 다루려는 극작품 「모랄 (Moral)」역시 시민 사회의 살고 있는 속물들의 위선적 태도를 노골적으로 비아..

44 20후독문헌 2021.03.09

서로박: 프리쉬의 '돈환, 혹은 기하학적인 사랑'

친애하는 M, 오늘은 막스 프리쉬 (Max Frisch, 1911 - 1991)의 희극 작품 ?돈환 혹은 기하학에 대한 사랑?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1953년 5월 5일 취리히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나중에 작가는 제 3막 후에 이어지는 막간극 그리고 가브리엘 텔레즈 (1571 - 1648)의 “돈환” 공연에 대한 논평 등을 삭제합니다. 기이한 패러디를 동원하여 프리쉬는 다음의 사항을 은근히 드러냅니다. 즉 돈환은 여성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는 남자가 아닙니다.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힌 채 세상을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우울한 사내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프리쉬의 돈환에게는 성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치되는 정신을 드러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따라서 돈환은 “남성적 기하학”을 사랑합..

44 20후독문헌 2021.03.05

서로박: 그라스의 '넙치'

친애하는 L, 귄터 그라스의 장편 소설『넙치 (Der Butt)』는 1977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그라스는 이전의 시기에 사민당의 당원으로서 활발하게 정치에 참여하였습니다. 특히 1969년 사민당의 선거 전략에 실질적으로 가담한 바 있었습니다. 작가는 작품 넙치의 배경을 다시 단치히로 설정하였습니다. 단치히에서 일어나는 세밀한 사건들은 거대한 서사적 파노라마 속에서 재정리되고 있지요. 그라스는 그림 형제의 동화 「어부와 그의 아내에 관하여」를 소설의 틀로서 활용하였습니다. 동화에 의하면 어부의 아내는 남편이 거대한 넙치를 잡았는데도 그냥 놓아준 데 대해 화를 내면서, 넙치에게 소원을 빕니다. 결국 남편은 넙치의 도움으로 교황이 되지만, 아내의 욕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사랑스러운 신이 되어 달..

44 20후독문헌 2021.02.06

서로박: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 (2)

(앞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저항의 미학” 제 2권은 1938년 초의 시점부터 시작됩니다. 주인공 “나”는 어느새 파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국제 적군단은 거의 해체 위기에 처해 있고, 프랑코는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나”는 파리에 잠깐 머물면서 스웨덴 체류를 위한 비자를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주인공은 망명자 지원 단체에서 일하면서, 루브르 도서관에서 예술사의 책을 읽는 것으로 소일합니다. 마침내 주인공 “나”는 스톡홀름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청소부 그리고 화부 (火夫)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간간이 주인공은 독일 공산당 연락책으로 일합니다. 당시에는 스톡홀름에서도 히틀러의 영향이 커져가서, 공산주의 운동은 불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44 20후독문헌 2021.02.05

서로박: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 (1)

저항의 미학 한국어 판은 2016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3권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제 1권은 탁선미 교수에 의해, 제 2권은 남덕현 박사에 의해, 제 3권은 홍승용 교수에 의해 번역되었습니다. ............................. 친애하는 C, 유대인 출신의 작가 페터 바이스 (Peter Weiss, 1916 - 1982)는 동독의 하이너 뮐러와 함께 가장 위대한 20세기 극작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서독 출신의 극작가 가운데 바이스만큼 완강하고도 격렬하게 구서독의 보수성을 비판하고, 무디어져 가는 다원주의 사회의 체제 옹호적 경향에 메스를 가한 작가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페터 바이스의 작품이 잊혀진다는 것은 무척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3권으로 이루어..

44 20후독문헌 2021.02.05

서로박: 그라스의 "양철북" (2)

9. 알프레트, 소련군에 의해 총살당하다, 뒤셀도르프로 이주하다: 1944년 겨울 단치히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오스카의 가족들은 가게의 지하실에서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알프레트는 나치 당원이었는데, 소련군이 급습해 올까 두려워했습니다. 알프레트는 자신의 유니폼에 부착된 나치 표식을 찢어 바닥에 버렸습니다. 오스카가 무심결에 나치 표식을 건네주자, 알프레트는 몹시 당황하면서 그것을 입안으로 틀어넣었습니다. 주위에는 소련 군인들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뿔싸. 나치 표식이 그의 목에 걸린 게 아니겠습니까? 소련 군인들은 그의 신분을 알아차리고 총으로 쏴죽입니다. 가게는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파인골트씨가 맡게 되었습니다. 파인골트씨는 살아남은 가족들에게 숙식 및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

44 20후독문헌 2021.01.25

서로박: 그라스의 "양철북" (1)

1. 기이한 피카레스크 소설: 귄터 그라스의 『양철 북』은 1959년에 발표되었습니다. 당시까지 그라스는 시, 극작품, 조각 작품 등을 창조했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소설가로 변신했습니다. 『양철 북』은 전후 문학에서 커다란 획을 그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작품은 “외설스럽다.”, “허무주의적이다.” 그리고 “신을 모독하고 있다.” 등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비난은 이후에서 그라스 문학의 세 가지 특징으로 부각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라스는 거의 병적일 정도로 성을 기괴하게 묘사하고, 인류 발전에 관한 어떠한 이상도 용인하지 않으며, 나아가 신앙 자체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은 발표 직후부터 가톨릭교회로부터 신랄한 비난을 당했습니다. 2. 어머니 아그..

44 20후독문헌 2021.01.25

서로박: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1979년에 간행된 미하엘 엔데 (Michael Ende, 1929 - 1995)의 『끝없는 이야기 Die unvollendete Geschichte』는 괴테 Goethe의 『파우스트』, B. 슐링크의 『책읽어주는 남자』와 함께 독일에서 가장 즐겨 읽히는 청년소설입니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은 일본에 많이 소개되었으나 (미하엘 엔데의 두 번째 부인이 일본여인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엔데는 초현실주의 화가로 활동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60년대부터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를테면 1973년에 발표된 『모모 Momo』는 작가에게 독일 청년문학상을 안겨주었지요. 일단 작품의 줄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44 20후독문헌 2020.11.27

서로박: (요약문)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

친애하는 E, 오늘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 노벨상 수상작가인 엘프리데 옐리네크 (Elfriede Jelinek, 1946 - )의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 Die Klavierspielerin』에 관해서 자세히 다루어보기로 합니다. 이 작품은 자전적 내용을 담은 소설인데, 1983년에 발표되었습니다. 70년대 중엽에 작가는 『연인들 Die Liebhaberinnen』 (1975)이라는 작품을 발표한 바 있는데, 여기서는 소시민들의 사랑의 삶 속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성적인 고통과 테러 행위가 신랄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시민사회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사랑의 삶에서 성적 행복을 만끽하면서 살아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결혼 이전의 시기에 꿈꾸어왔던 달콤한 삶을 누리기는커녕, 때로는 가족들..

44 20후독문헌 2020.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