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20후독문헌 60

박설호: (1) P. M.의 "볼로 볼로"

1. 스위스에서 출현한 글로벌 유토피아 『볼로의 볼로』: 1989년 말부터 유럽에서는 생태 공동체 운동이 우후죽순 격으로 탄생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1985년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이라는 슬로건이 세계의 두 강대국 가운데 하나인 소련을 붕괴하게 하였고, 급기야는 1989년 독일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의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인간의 사회적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더 이상 정치 유토피아가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문제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확산한 생태계의 변화와 환경 파괴의 문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게 된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 통일이 생태 공동체 운동의 확산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독일 통일로 인하여 작센, 브란덴부르크 지역에서는 사람이 살지 않는 가옥들이 마..

44 20후독문헌 2023.02.06

서로박: 킵하르트의 오펜하이머 사건

기록극의 작가, 하이나르 킵하르트 (Heinar Kipphardt, 1922 - 1982)는 대표작 『로베르트 오펜하이머 사건에 관하여 (In der Sache Robert Oppenheimer)』를 60년대에 발표했다. 원래 이 작품은 방송 시나리오로 작성되어, 1964년 1월 23일에 독일에서 방송되었다. 나중에 킵하르트는 극작품으로 각색하였다. 극작품은 1964년 10월 11일 베를린과 뮌헨에서 동시에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1954년 미국의 원자에너지 위원회가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대한 취조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이른바 자연과학자 한 사람을 보호하며, 그를 둘러싼 의혹을 풀기 위해서 개최되었다. 오펜하이머는 1943년에서 1945년 사이에 미국의 로스 알라모스에 있는 핵 연구소에서..

44 20후독문헌 2022.07.12

서로박: 란스마이어의 '키타하라 눈병' (2)

(앞에서 계속됩니다.) 어느 날 미국의 록 콘서트가 개최됩니다. 베링과 릴리는 음악을 즐기면서 서로 가까워집니다. 그들은 고적한 탑에서 흥분한 채 열광적으로 키스를 나눕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암브라스는 종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암브라스를 수소문합니다. 알고 보니 암브라스는 네오나치들에게 체포되어 갇혀 있었습니다. 베링은 이들과 격투를 벌이다가 암브라스를 구출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베링은 자신의 눈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감지합니다. 주위의 거리가 유독 캄캄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일순간 자신의 시력에 하자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 것입니다. 밖을 바라보면 외부가 어두운 점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어도 자신의 눈이 정상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행여나 자신의 눈이 멀먼 어떻게..

44 20후독문헌 2022.06.23

서로박: 란스마이어의 "키타하라 눈병" (1)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Christoph Ransmayr, 1954 - )의 『키타하라 눈병』은 1995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자신을 “절반의 유목인”이라고 칭한 바 있는 소설가 란스마이어는 오스트리아와 아일랜드를 오가면서 거주하며 살았습니다. 작품 『키타라 눈병』은 유년의 기억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는데, 그의 유년은 결코 밝고 찬란한 분위로 착색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지금까지 란스마이아는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 기억과 망각 등의 주제를 즐겨 다루었습니다. 작품 『최후의 세계』는 흑해로 망명을 떠난 오비디우스의 마지막 삶을 조명하고 있는데, 장희권 교수의 번역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간행된 바 있습니다. 그의 소설 『빙하와 어둠의 공포』 또한 우리에게 소게된 바 있지요. 작가는 역사적 사건..

44 20후독문헌 2022.06.23

서로박: 브로흐의 '몽유병자들' (2)

(앞에서 계속됩니다.) 제 3부는 “후궤나우 혹은 즉물주의”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후궤나우라는 인물은 이제 가치의 전통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그는 시대에 상응하게 상인으로 살아간다. 후궤나우의 관심사는 오로지 경제적 이윤 추구로 향한다. 그렇지만 본인은 정작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감지하지 못한다. 주위에는 인간적 가치를 상실한 인간들은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끝내 미치거나 자살해버린다. 에쉬는 후궤나우에 의해서 살해된다. 한마디로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던 자는 결국 자본주의의 화신에 의해서 몰락을 맞이하는 것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은 가치 파괴의 극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그것은 가치의 어떤 전환점이기도 하다. 작가는 특히 제 3부를 아주 방대하게 서술하였다. 이전의 이야기는 새로운 인..

44 20후독문헌 2022.06.07

서로박: 브로흐의 '몽유병자들' (1)

오스트리아 출신의 소설가, 헤르만 브로흐 (Hermann Broch, 1886 - 1951)의 삼부작 장편 소설 "몽유병자들"은 1931년 그리고 32년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브로흐 후기 문학에 속하는 것으로서 브로흐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 작품 내용을 고려할 때 우리는 1888년, 1903년 그리고 1918년이라는 세 개의 시점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러한 시대 구분은 이른바 오스트리아 문예 풍토를 고려할 때 “낭만주의의 경향”으로부터, “무정부주의의 성향”을 거쳐, “즉물주의의 경향”으로 전개되는 과정과 거의 일치한다. 이러한 구분을 통해서 브로흐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던 역사의 파괴 과정을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만약 인간이 이러한 의무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면, 어떠한 비판적..

44 20후독문헌 2022.06.07

서로박: 우베 팀의 소설 '하지의 밤'

하지는 365일 가운데 가장 짧은 날을 가리킵니다. 하지의 밤에는 언제나 기이하고도 혼란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다고 믿습니다.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된 시간과 장소는 1995년 베를린입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사소한 이야기를 자세히 묘사하는 반면에, 작품의 배후에 전환기의 본질적인 문제를 흐릿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집필 방식은 일견 알프레트 되블린 Alfred Döblin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Berlin Alexander Platz』의 서술 기법을 연상시킵니다. 크리스토라는 이름을 지닌 주인공, “나”는 뮌헨에서 거주하는 저널리스트인데, 어느 잡지사로부터 “감자”에 관한 기사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습니다. 제목은 “페루-프로이센-커넥션. 감자와 독일인의 인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사를 막연하게..

44 20후독문헌 2022.04.24

서로박: 옐리네크의 '노라가 남편을 떠 난 뒤에...'

오늘은 2004년 노벨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 (Elfriede Jelinek, 1946 - )의 극작품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이것은 「노라가 그의 남편을 떠난 뒤에 무슨 일이 생겼는가? (Was geschah, nachdem Nora ihren Mann verlassen hatte?)」인데, 1977년 그라츠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브레히트가 시도한 바 있는 실험극으로서 50년대 그리고 60년대의 팝 문화라는 문학적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요. 이 작품의 틀로서 작용하는 것은 당연히 입센의 작품 「인형의 집」(1879), 「사회의 버팀목」(1877)입니다. 미리 말하자면 옐리네크는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페미니스트로서, 입센의 태도를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옐리네..

44 20후독문헌 2022.02.19

서로박: 아피츠의 '늑대들 사이에서 헐벗은 채'

오늘은 1958년에 발표된 브루노 아피츠 (Bruno Apitz, 1900 - 1979)의 소설 「늑대들 사이에서 헐벗은 채 (Nackt unter Wölfen)」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피츠는 1927년에 독일 공산당에 가입하여, 1934년에 부헨발트 수용소에 정치법으로 수감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그는 수용소 내의 삶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하루아침에 독일 전역에서 유명한 소설가로 부상하게 되었지만, 실제 자신이 강제수용소에서 겪었던 체험은 기억하기조차 싫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과거의 상흔에 대한 기억은 작가를 우울하게 만들고, 결국 그로 하여금 더 이상 창작에 몰두하지 않게 합니다. 절필은 그 자체 안타깝지만, 개인으로서는 어쩔..

44 20후독문헌 2022.01.25

서로박: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1) 학교란 무엇인가?: 친애하는 H, 학교는 배우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그것은 오늘날 주로 실용적 지식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사회의 일꾼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능력과 관계됩니다. 교사와 학생들은 무엇을 전공하는가에 따라 제각기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직업인으로서의 능력을 함양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감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용적 지식은 가령 교양과 지혜를 포괄하지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처음부터 피교육자의 개인적 자기 발전이라든가 미래 삶에 관한 자신의 고유한 행복과는 거리감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실용적 지식의 함양도 중요하지만, 교양과 지혜를 가꾸어나가는 노력 역시 좌시될 수 없습니다. 만약 배움에 대한 피교육자의 욕망이 학교에서 충족되지 않..

44 20후독문헌 2021.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