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20후독문헌 63

박설호: (1) 미하엘 엔데의 유언

“돈으로 비싼 침대를 살 수 있으나, 단잠을 살 수는 없다.” (인도의 속담) ........................ 친애하는 K, 오늘은 미하엘 엔데의 유언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엔데는 1995년에 사망하였습니다. 죽기 전에 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현대 사회는 돈이라는 질병에 걸려 있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Michael Ende: Der Spiegel im Spiegel. München 1990, 미하엘 엔데: 돈을 근원적으로 묻는다, 김형수 옮김. 실린 곳: 녹색평론, 2010년 9/10월호, 통권 114호.) 돈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참혹한 삶은 제3차 세계대전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합니다. 엔데는 돈으로 인한 질병을 “우리 자손들을 파멸로 이끄는 시간 전쟁”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44 20후독문헌 2023.11.20

서로박: 옐리네크의 '성욕'

친애하는 E, 오늘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완강한 페미니스트이자 소설가인 엘프리데 옐리네크 (1945 -)의 󰡔성욕 (Lust)󰡕에 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이 작품은 1989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원래 그미는 조르주 바타이유의 외설 비평 󰡔눈의 역사󰡕 (1924)에 대한 반대되는 문헌에 해당하는 여성적 포르노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여성적 시각에서 바라본 여성의 성적인 열망을 작품 속에 담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섹스의 문제가 여성에 의해서 집필된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문헌은 가령 파울린느 레아제 Pauline Réage의 󰡔오양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별로 재미없는 것들이 태반이었습니다. 옐리네크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표현하는 데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습니다. 그미..

44 20후독문헌 2023.07.26

박설호: (4) P. M.의 "볼로 볼로"

(앞에서 계속됩니다.) 16. 자적 야수로서의 자기 파괴적이고 성도착적 인간상: 20세기 중엽까지 인간은 수많은 전쟁, 인종 탄압 등을 자행하였습니다. 이로써 제기된 것은 타인종을 살상하는 야수의 모습입니다. 게다가 인간의 문명을 위해서 생태계는 서서히 파괴되기에 이르렀습니다. 70년대 이후에 나타난 문학 유토피아는 이러한 세계의 상황을 반영하면서 새로운 인간형을 설정합니다. 이를테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 파괴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신뢰할 수 없는 지적 야수라고 합니다. 인간은 역설적으로 자기 파괴적이며, 성 도착적 충동을 지닌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는 갈등을 해결하려는 여러 가지 유형의 유토피아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가령 칼렌바크의 『에코토피아』에서는 전쟁놀이가 정기적으로 치러지는데, 서로 피..

44 20후독문헌 2023.02.13

박설호: (3) P. M.의 "볼로 볼로"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볼로의 구조와 크기: 모든 볼로는 제각기 사각형의 건축물로 축조되어 있습니다. 건축물은 8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00미터의 길이 그리고 20미터의 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 복판에 정원이 위치하여, 사람들의 거주 공간에 사계절 항상 햇빛이 드리워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건축 형태는 최소한의 시설로 난방비를 절약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실 북반구의 육지는 남반구의 그것에 비해 다섯 배 크며, 이로 인하여 인구 역시 밀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반구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는 남반구의 에너지에 비해 월등히 많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자원을 아끼고 절약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나중에 다시 언급되겠지만..

44 20후독문헌 2023.02.07

박설호: (2) P. M.의 "볼로 볼로"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시대 비판, 지구 위의 노동 기계: 상기한 사항을 고려한다면 P. M.이 비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자본주의와 국가 중심적 사회주의는 공히 개개인을 억압하고 착취합니다. 지금까지의 문명은 국가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는 문명의 발전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가령 국가 이기주의는 오랜 시간 동안 전쟁이라는 끔찍한 재앙을 낳았으며, 19세기 이후의 산업 발전이라는 판도라는 현대에 이르러 생태계 파괴라는 잔인한 파국을 인류에게 안겨주었습니다. 특히 국가의 경제부서는 P. M.에 의하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있는 “계획적 노동 기계”와 다를 바 없다고 합니다. 그는 “지구 위의 노동 기계”를 “PAM (Planetare Arbeitsmaschine)”이라고 명..

44 20후독문헌 2023.02.06

박설호: (1) P. M.의 "볼로 볼로"

1. 스위스에서 출현한 글로벌 유토피아 『볼로의 볼로』: 1989년 말부터 유럽에서는 생태 공동체 운동이 우후죽순 격으로 탄생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1985년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이라는 슬로건이 세계의 두 강대국 가운데 하나인 소련을 붕괴하게 하였고, 급기야는 1989년 독일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의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인간의 사회적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더 이상 정치 유토피아가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문제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확산한 생태계의 변화와 환경 파괴의 문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게 된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 통일이 생태 공동체 운동의 확산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독일 통일로 인하여 작센, 브란덴부르크 지역에서는 사람이 살지 않는 가옥들이 마..

44 20후독문헌 2023.02.06

서로박: 킵하르트의 오펜하이머 사건

기록극의 작가, 하이나르 킵하르트 (Heinar Kipphardt, 1922 - 1982)는 대표작 『로베르트 오펜하이머 사건에 관하여 (In der Sache Robert Oppenheimer)』를 60년대에 발표했다. 원래 이 작품은 방송 시나리오로 작성되어, 1964년 1월 23일에 독일에서 방송되었다. 나중에 킵하르트는 극작품으로 각색하였다. 극작품은 1964년 10월 11일 베를린과 뮌헨에서 동시에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1954년 미국의 원자에너지 위원회가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대한 취조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이른바 자연과학자 한 사람을 보호하며, 그를 둘러싼 의혹을 풀기 위해서 개최되었다. 오펜하이머는 1943년에서 1945년 사이에 미국의 로스 알라모스에 있는 핵 연구소에서..

44 20후독문헌 2022.07.12

서로박: 란스마이어의 '키타하라 눈병' (2)

(앞에서 계속됩니다.) 어느 날 미국의 록 콘서트가 개최됩니다. 베링과 릴리는 음악을 즐기면서 서로 가까워집니다. 그들은 고적한 탑에서 흥분한 채 열광적으로 키스를 나눕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암브라스는 종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암브라스를 수소문합니다. 알고 보니 암브라스는 네오나치들에게 체포되어 갇혀 있었습니다. 베링은 이들과 격투를 벌이다가 암브라스를 구출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베링은 자신의 눈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감지합니다. 주위의 거리가 유독 캄캄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일순간 자신의 시력에 하자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 것입니다. 밖을 바라보면 외부가 어두운 점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어도 자신의 눈이 정상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행여나 자신의 눈이 멀먼 어떻게..

44 20후독문헌 2022.06.23

서로박: 란스마이어의 "키타하라 눈병" (1)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Christoph Ransmayr, 1954 - )의 『키타하라 눈병』은 1995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자신을 “절반의 유목인”이라고 칭한 바 있는 소설가 란스마이어는 오스트리아와 아일랜드를 오가면서 거주하며 살았습니다. 작품 『키타라 눈병』은 유년의 기억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는데, 그의 유년은 결코 밝고 찬란한 분위로 착색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지금까지 란스마이아는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 기억과 망각 등의 주제를 즐겨 다루었습니다. 작품 『최후의 세계』는 흑해로 망명을 떠난 오비디우스의 마지막 삶을 조명하고 있는데, 장희권 교수의 번역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간행된 바 있습니다. 그의 소설 『빙하와 어둠의 공포』 또한 우리에게 소게된 바 있지요. 작가는 역사적 사건..

44 20후독문헌 2022.06.23

서로박: 브로흐의 '몽유병자들' (2)

(앞에서 계속됩니다.) 제 3부는 “후궤나우 혹은 즉물주의”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후궤나우라는 인물은 이제 가치의 전통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그는 시대에 상응하게 상인으로 살아간다. 후궤나우의 관심사는 오로지 경제적 이윤 추구로 향한다. 그렇지만 본인은 정작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감지하지 못한다. 주위에는 인간적 가치를 상실한 인간들은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끝내 미치거나 자살해버린다. 에쉬는 후궤나우에 의해서 살해된다. 한마디로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던 자는 결국 자본주의의 화신에 의해서 몰락을 맞이하는 것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은 가치 파괴의 극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그것은 가치의 어떤 전환점이기도 하다. 작가는 특히 제 3부를 아주 방대하게 서술하였다. 이전의 이야기는 새로운 인..

44 20후독문헌 2022.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