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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 (2)

필자 (匹子) 2021. 2. 5. 18:38

(앞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저항의 미학” 제 2권은 1938년 초의 시점부터 시작됩니다. 주인공 “나”는 어느새 파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국제 적군단은 거의 해체 위기에 처해 있고, 프랑코는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나”는 파리에 잠깐 머물면서 스웨덴 체류를 위한 비자를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주인공은 망명자 지원 단체에서 일하면서, 루브르 도서관에서 예술사의 책을 읽는 것으로 소일합니다.

 

마침내 주인공 “나”는 스톡홀름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청소부 그리고 화부 (火夫)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간간이 주인공은 독일 공산당 연락책으로 일합니다. 당시에는 스톡홀름에서도 히틀러의 영향이 커져가서, 공산주의 운동은 불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함께 일하며, 15세기 한자동맹에 대항하는 스웨덴 노동자의 폭동을 주도한 엥겔브레크트 (Engelbrekt)에 관한 연극 작품을 구상합니다.

 

[친애하는 C, 세부적 사항까지 알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언급된 김에 엥겔브레크트 엥겔브레크트손 (1390 - 1436)에 관해 약술할까 합니다. 엥겔브레크트는 원래 탄광 소유자였는데, 스웨덴의 왕이 쇄국 정책을 펴자 한자 동맹 국가들은 스웨덴에 대해서 무역 금지 조처를 내립니다. 이에 격분한 정부에 대항하여 무장 봉기를 일으킵니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처형당합니다.] 1940년 4월 9일 독일군은 드디어 노르웨이까지 진군합니다. 브레히트는 이때 핀란드로 도주합니다.

 

“저항의 미학” 제 3권에서는 서술적 관점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부모는 스톡홀름으로 도주하는 데 성공을 거둡니다. 어머니는 주인공에게 나치의 잔악상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해줍니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작가 카린 보이어 (Karin Boye)와 마찬가지로 나치의 억압과 암담한 현실을 감내하지 못하고 자살로써 삶을 끝냅니다. 몇몇 공산주의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하 조직을 결성하여 무력으로 저항 운동을 벌립니다. [스웨덴의 여성 작가, 카린 보이어 (1900 - 1941)는 선생으로 그리고 비평가로 일하면서, 아름다운 시를 썼으며, “칼로카인”이라는 소설을 남긴 작가입니다. 작품 “칼로카인”은 암담한 미래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20세기 부정적 유토피아의 계열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친애하는 C, 당신은 급박한 한계 상황의 현실을 체험하지 못했지요?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유감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불행과 참담한 고통을 겪지 않았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고통을 통해 인간 삶의 깊이를 감지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지요. 주인공 “나”는 고통스럽게 살면서, 삶의 단맛을 뼈저리게 체험합니다. 그는 나치에 대항하는 투쟁에 직접적으로 가담합니다. 이러한 와중에서 주인공 “나”는 헤르베르트 베너 (Herbert Wehner)라는 사람과 함께 이에 참가합니다. (베너는 먼 훗날 독일 사민당의 정치가가 되는 인물입니다.) 베너는 정치적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때문에 주인공은 베너와 결별하게 되지요.

 

주인공은 여성 저항 운동가 로테 비쇼프 Lotte Bischoff가 나치 소굴인 베를린으로 잠입하려는 일을 도와줍니다. 비쇼프는 베를린에서 지하 레지스탕스 단체인 “붉은 예배단 (Rote Kapelle)”과 합류하여, 나치에 대항하여 싸우려고 합니다. 그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게 되지만, “붉은 예배단”의 임원이었던, 주인공의 옛 친구 하일만 그리고 코피는 1942년 친위대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당합니다. 한마디로 독일군을 물리치고 나치 정부를 붕괴하려던 좌파들의 희망은 다만 환상으로 머물게 됩니다. 1945년 좌파들이 힘을 합하여 새롭게 출발하려는 시도 역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은 미군정의 정책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사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친애하는 C, 소설의 마지막은 비극적으로 끝이 납니다. 스톡홀름에서 막스 호단은 자살로써 삶을 마감합니다. 왜냐하면 독일 좌파들의 문화적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남아 있는 것은 오로지 “미래에 대한 희망”입니다. 소설의 마지막에 작가가 이를 강조한 것은 자신의 핵심적인 테마인 “저항의 미학”과 관계됩니다. 주인공의 정치적 행위는 예술의 수용 문제, 양피지 제단에 대한 성찰, 앙코르바트 사원, 단테 알리기리의 “신곡” 그리고 유진 수 Eugène Sue, 카프카, 초현실주의자들 (들라크루아, 제리코, 피카소, 게오르게 그로츠, 존 하트필드 등)등에 관한 성찰과 언제나 병행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소설의 화자는 처음에는 자신의 환경 사회적 사건 등에 대한 제반 견해를 전하는 사람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예술을 통해서 자신의 개인성을 획득합니다. 주인공이 교양을 쌓는 과정 그리고 작가의 전기 사이의 고유한 관련성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소설 속에서 현재화되고 있는 예술 작품들은 주인공의 정치적 의식을 발전시키려고 자극합니다. 예술 작품의 관찰을 통해서 페터 바이스는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기본적 틀에 대한 토론을 불러일으키려고 합니다. 

 

이러한 미학적 논의는 20년대 그리고 30년대 독일에서 전통적 리얼리즘의 형상화 방법을 대변하는 루카치 그리고 혁신적이고 개방적인 예술 개념을 내세우는 브레히트와 벤야민 사이의 토론에서 이미 등장한 바 있습니다. 물론 루카치와 브레히트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점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터 바이스는 자신의 “메모집 1971 - 1980 (Notizbücher 1971 - 1980)”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여기에는 논의되는 것은 예술적 카테고리를 포괄하려고 하는 미학만은 아니다. 나아가 사람들은 (표현주의 논쟁을 통하여 - 역주) 사회 정치적인 견해를 어떤 정신적 인식 과정과 결합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소설은 양피지 제단의 장신구, 고대의 계급투쟁에 관한 증언 등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공 “나”, 하일만 그리고 코피 등이 현재에 결행하고 있는 계급투쟁과 직결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C, 저자는 발터 벤야민이 1940년 작성한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의 내용에서 놀라운 것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가령 “역사는 항상 승리자의 것”이라는 벤야민의 말은 바이스 작품의 기본적 토대를 이루고 있지요. 예술은 벤야민에 의하면 야만에 관한 기록물입니다. 문학 작품은 폭력과 착취의 흔적이지요. 

 

그렇지만 문학과 예술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 후세 사람들에게 해방에 대한 희망을 전할 수 있는 매개체입니다. 가령 작가는 양피지 제단을 그 자체 상징물로서 현재와 과거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항상 폭력과 관계되고, 예술 작품은 이러한 폭력의 역사를 우리에게 은근하게 보여줍니다. 하일만은 작품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양피지 제단은 언제나 새롭게 해석되어야 해. 전복이 있을 때까지. 지상에 태어난 자는 어둠과 노예 상태에서 깨어나서 진정한 겉모습을 보여주어야 해.”

 

친애하는 C, 무산 계급은 오래 전에는 예술 작품을 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저항의 미학”은 무산계급에게 예술적 자산을 전달하고, 이러한 “자산이 계급에 의해 차단되는 것을 극복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코피와 하일만은 작품 제 1권에서 토론을 벌립니다. 이 토론에서 예술적 형식성에 가장 절절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출신이 코피는 리얼리즘적 예술 형식에 동조하는 반면에, 지식인 출신의 하일만은 전위주의적인 예술 개념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후자에 의하면 변화되는 현실을 인지하려면, 새로운 인지 방식 내지 형상화 방법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주인공 “나”는 이 토론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지만,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에 하일만의 입장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은 코피의 견해를 묵살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주인공은 단테, 카프카, 제리코 피카소 등을 성찰하면서, 하나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합니다. 즉 새로운 예술적 형상화 방법을 통해서 무산계급의 고뇌 등을 솔직하게 담을 수 있다는 게 주인공의 지론입니다.

 

저항의 미학 한국어 판은 2016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3권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제 1권은 탁선미 교수에 의해, 제 2권은 남덕현 박사에 의해, 제 3권은 홍승용 교수에 의해 번역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