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20후독문헌 63

서로박: 브로흐의 '몽유병자들' (1)

오스트리아 출신의 소설가, 헤르만 브로흐 (Hermann Broch, 1886 - 1951)의 삼부작 장편 소설 "몽유병자들"은 1931년 그리고 32년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브로흐 후기 문학에 속하는 것으로서 브로흐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 작품 내용을 고려할 때 우리는 1888년, 1903년 그리고 1918년이라는 세 개의 시점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러한 시대 구분은 이른바 오스트리아 문예 풍토를 고려할 때 “낭만주의의 경향”으로부터, “무정부주의의 성향”을 거쳐, “즉물주의의 경향”으로 전개되는 과정과 거의 일치한다. 이러한 구분을 통해서 브로흐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던 역사의 파괴 과정을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만약 인간이 이러한 의무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면, 어떠한 비판적..

44 20후독문헌 2022.06.07

서로박: 우베 팀의 소설 '하지의 밤'

하지는 365일 가운데 가장 짧은 날을 가리킵니다. 하지의 밤에는 언제나 기이하고도 혼란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다고 믿습니다.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된 시간과 장소는 1995년 베를린입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사소한 이야기를 자세히 묘사하는 반면에, 작품의 배후에 전환기의 본질적인 문제를 흐릿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집필 방식은 일견 알프레트 되블린 Alfred Döblin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Berlin Alexander Platz』의 서술 기법을 연상시킵니다. 크리스토라는 이름을 지닌 주인공, “나”는 뮌헨에서 거주하는 저널리스트인데, 어느 잡지사로부터 “감자”에 관한 기사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습니다. 제목은 “페루-프로이센-커넥션. 감자와 독일인의 인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사를 막연하게..

44 20후독문헌 2022.04.24

서로박: 옐리네크의 '노라가 남편을 떠 난 뒤에...'

오늘은 2004년 노벨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 (Elfriede Jelinek, 1946 - )의 극작품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이것은 「노라가 그의 남편을 떠난 뒤에 무슨 일이 생겼는가? (Was geschah, nachdem Nora ihren Mann verlassen hatte?)」인데, 1977년 그라츠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브레히트가 시도한 바 있는 실험극으로서 50년대 그리고 60년대의 팝 문화라는 문학적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요. 이 작품의 틀로서 작용하는 것은 당연히 입센의 작품 「인형의 집」(1879), 「사회의 버팀목」(1877)입니다. 미리 말하자면 옐리네크는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페미니스트로서, 입센의 태도를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옐리네..

44 20후독문헌 2022.02.19

서로박: 아피츠의 '늑대들 사이에서 헐벗은 채'

오늘은 1958년에 발표된 브루노 아피츠 (Bruno Apitz, 1900 - 1979)의 소설 「늑대들 사이에서 헐벗은 채 (Nackt unter Wölfen)」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피츠는 1927년에 독일 공산당에 가입하여, 1934년에 부헨발트 수용소에 정치법으로 수감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그는 수용소 내의 삶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하루아침에 독일 전역에서 유명한 소설가로 부상하게 되었지만, 실제 자신이 강제수용소에서 겪었던 체험은 기억하기조차 싫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과거의 상흔에 대한 기억은 작가를 우울하게 만들고, 결국 그로 하여금 더 이상 창작에 몰두하지 않게 합니다. 절필은 그 자체 안타깝지만, 개인으로서는 어쩔..

44 20후독문헌 2022.01.25

서로박: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1) 학교란 무엇인가?: 친애하는 H, 학교는 배우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그것은 오늘날 주로 실용적 지식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사회의 일꾼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능력과 관계됩니다. 교사와 학생들은 무엇을 전공하는가에 따라 제각기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직업인으로서의 능력을 함양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감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용적 지식은 가령 교양과 지혜를 포괄하지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처음부터 피교육자의 개인적 자기 발전이라든가 미래 삶에 관한 자신의 고유한 행복과는 거리감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실용적 지식의 함양도 중요하지만, 교양과 지혜를 가꾸어나가는 노력 역시 좌시될 수 없습니다. 만약 배움에 대한 피교육자의 욕망이 학교에서 충족되지 않..

44 20후독문헌 2021.10.28

서로박: 프리쉬의 만리장성

프리쉬의 「그들은 다시 노래 부른다. 어느 레퀴엠의 시도」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악몽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도”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세계대전에 대한 스위스 작가의 어떤 거리감을 읽을 수 있다. 이에 비하면 세 번째 드라마 「만리장성」에서 프리쉬는 원자 폭탄 및 수소 폭탄의 발전 및 (비참한) 결과를 추적한다. (B.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 제 2원고 그리고 뒤렌마트의 「물리 학자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리쉬는 과학자들의 자기 파괴 행위를 지적한다. 그렇지만 프리쉬의 극은 브레히트처럼 역사적 소재에 몰입하지도, 뒤렌마트처럼 우스꽝스러운 현재에서 그것을 실험하지도 않는다. 프리쉬는 「산타크루즈」처럼 시공을 뛰어넘는 창작 원칙을 작품에 그대로 도입한다. 현재는 “오늘날 사람”으로써, ..

44 20후독문헌 2021.09.09

서로박: 뒤렌마트의 물리학자들

1. 뒤렌마트의 희비극: 스위스 출신의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Fr. Dürrenmatt, 1921 - 1990)의 2막으로 이루어진 희극 작품, 「물리학자들 Die Physiker」은 1961년에 발표, 1962년에 취리히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제 2고는 1980년에 개작되어, 전집에 실렸습니다. 작품은 세계를 필연적으로 위협하는 현대 핵물리학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극작품은 여배우, 테레제 기제 (Th. Giese)에게 헌정되었는데, 전통적 극작품의 형식에 해당하는 장소, 시간 그리고 행위의 일치성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뒤렌마트의 희비극의 특성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희비극Tragikomödie”이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희비극의 작품..

44 20후독문헌 2021.09.04

서로박: 발저의 일각수 (2)

“일각수”는 지상에 없는 가상적 동물이다. 사람들은 인도에 뿔 하나 달린 기이한 동물이 살고 있다고 상상했다. 일각수는 기대감 그리고 열망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인지 모른다. 일각수는 주인공 안젤름 곁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리하여 동물은 점점 커져가는 환멸 내지 실망의 과정을 주인공에게 무의식적으로 비춰준다.  일각수는 주인공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인간의 언어가 지니고 있는 표현 기능은 얼마나 제한된 것인가? 인간의 기억이란 비록 왜소한 기능을 지니지만, 과거를 완전히 뒤집을 정도로 기괴하게 작용하기도 하지 않는가? 따라서 마르틴 발저는 “잃어버린 시간은 인간의 탁월한 언어로써 재구성하여 구출될 수 있다”는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의 입장을 완..

44 20후독문헌 2021.07.24

서로박: 발저의 일각수 (1)

마르틴 발저 (Martin Walser, 1927 - )의 "일각수 (das Einhorn)"는 작가의 이른바 “안젤름 크리스틀라인” 삼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으로 1966년에 간행되었다. 첫 번째 작품 "전반전 (Halbzeit)"은 1960년에, 세 번째 작품 "추락 (Der Sturz)"은 1973년에 각각 발표되었다. 주인공 안젤름은 42세로서 중견 작가로서, 그럭저럭 자신의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그는 때로는 강연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때로는 문학 토론에 참가하기도 한다. 일인칭 소설은 주인공의 회상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주인공 “나”는 병들어 있으며, 자신이 어떻게 병이 들게 되었는가를 성찰한다. 소설의 발단은 첫 번째 작품 "전반전"의 줄거리를 이어가고 있다. 주인공은 첫 번째 소설을..

44 20후독문헌 2021.07.24

서로박: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헤르만 브로흐 (Hermann Broch, 1886 - 1951)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Der Tod des Vergil)"은 제 2차 세계대전 와중에 집필되어, 1945년에 영어 그리고 독일어로 간행되었다. 브로흐는 1935년 「베르길리우스의 귀향 (Die Heimkehr des Vergil)」이라는 단편을 집필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는 “문화적 종말에 처한 문학의 위기”라는 주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베르길리우스의 시대와 작가 브로흐가 살고 있는 시대를 병렬적으로 투영시키고 있다. 가령 “시민주의, 독재 그리고 고대 종교 형태의 사멸” 등이 비교 대상들이다. 브로흐의 작품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은 어떤 자본주의 후기 사회의 작가의 상황을 추적하면서, 동시대인들에게 작가의 과업이 과연 무엇..

44 20후독문헌 2021.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