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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그라스의 '넙치'

필자 (匹子) 2021. 2. 6. 10:50

친애하는 L, 귄터 그라스의 장편 소설『넙치 (Der Butt)』는 1977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그라스는 이전의 시기에 사민당의 당원으로서 활발하게 정치에 참여하였습니다. 특히 1969년 사민당의 선거 전략에 실질적으로 가담한 바 있었습니다. 작가는 작품 넙치의 배경을 다시 단치히로 설정하였습니다. 단치히에서 일어나는 세밀한 사건들은 거대한 서사적 파노라마 속에서 재정리되고 있지요. 

 

그라스는 그림 형제의 동화 「어부와 그의 아내에 관하여」를 소설의 틀로서 활용하였습니다. 동화에 의하면 어부의 아내는 남편이 거대한 넙치를 잡았는데도 그냥 놓아준 데 대해 화를 내면서, 넙치에게 소원을 빕니다. 결국 남편은 넙치의 도움으로 교황이 되지만, 아내의 욕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사랑스러운 신이 되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미는 결국 자신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 때문에 파멸을 맞이합니다.

 

친애하는 L, 흔히 말하기를 “세계를 장악하는 자는 남성이지만, 그 남성을 조종하는 자는 여성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어느 전투적 여성의 자조 섞인 푸념이 아니면, 인간적 따뜻함을 지닌 어느 가부장주의자의 위안의 말일 공산이 큽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고찰하면 세계를 장악한 자는 남성들이었고, 그라스 역시 이 점을 무엇보다도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라스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을 창조하여 모든 것을 제 손아귀에 장악하려는 남성적 광기입니다. 그림 동화 속의 아내는 어떠한 경우에도 만족할 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라스는 소설 속에 아홉 명의 여성을 등장시켜서, 그림 동화의 주제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아홉 명의 여성들은 부분적으로 중요한 남자들을 뒷바라지하는 사람들로서, 특히 요리사로 일하는 인물들이지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화자는 두 개의 시점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일단 첫 번째 시점에 관해서 언급해 보기로 합시다. 그는 70년대 초반에 함부르크 근처의 베벨스플레트라는 지역에서 살고 있는 독일남자입니다. 화자는 단치히 그리고 인도의 캘커타 여행을 서술한다는 점에서 작가와 동일시될 수 있는 인물이지요. 

 

아내 일제빌이 임신하게 되었을 때, 화자는 묘한 착상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뱃속에서 살고 있는 아기가 자라는 아홉 달 동안, 자신이 살아온 시점을 아홉 개의 장으로 기억해내는 일입니다. 이때 그는 시공을 초월한 상상 속에서 아홉 명의 요리사를 사랑하는 남자 내지는 남편이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자신을 제각기 주어진 시대에 살아가는 변모된 사람이라고 상상의 나래를 펴나갑니다.

 

맨 처음 그는 석기시대에 어부로 살아갑니다. 서술적 화자는 이때 앞의 동화에서 나오는 거대한 넙치 한 마리를 잡습니다. 그러나 넙치는 영원히 만족하지 못하는 어부의 부인과 관련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넙치는 제각기의 시대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에게 활용되는 물고기입니다. 

 

넙치는 이른바 헤겔 (Hegel)의 시대정신 내지 세계사의 모든 사건을 꿰뚫고 있는 해설자로서 제각기 등장하는 남자들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는 오로지 모권의 억압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남자들을 역사의 직접적인 관여자로 만들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가부장주의가 사회에 하나의 토대를 이루게 되고, 인간 삶의 토대를 조직적으로 망쳐놓습니다. 이렇게 된 계기는 그라스에 의하면 근본적으로 넙치의 중재 때문이라고 합니다.

 

친애하는 L, 상기한 모든 사건은 소설의 또 다른 시점으로 투영되고 있습니다. 넙치는 아홉 명의 페미니스트들의 수중에 들어갑니다. [이들은 아홉 명의 억압당하며 살았던 여자요리사를 대신하여 어떤 소송을 제기하는 인물들이지요.] 넙치는 언제나 실수를 거듭하는 남자들에게 거대한 실망을 느끼게 되고, 그들에게서 도망칩니다. 그리하여 넙치는 독일의 북부에 있는 동해에서 두 번째로 포획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재판은 남성에 의해 정해진 역사에 관한 것인데, 마치 어느 베를린 극장의 공연 과정 속에서 직접 상연되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뤼베크의 귄터 그라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조각상

 

아홉 개의 소 단락은 다시금 수많은 에피소드로 나누어집니다. 소설의 화자는 매 단락을 시적으로 묘사합니다. 이로써 소설은 낭만주의에 의해서 동화의 모티프를 충실히 따를 뿐 아니라, 문학적 장르를 뛰어넘는, 이른바 “소설 시학”이라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설의 문체는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와는 무관하게 활용되는 셈입니다. 그라스는 언어 표현에 있어서 바로크 문학에 나타나는 탄식의 정조를 과감하게 도입하는가 하면, 때로는 선정적인 은어를 사용하여 과감한 섹스의 묘사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L, 흔히 말하기를 밥 먹는 일은 성욕을 충족시키는 일과 관계된다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작품 속에는 요리에 대한 처방전, 식사하는 장면 등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이는 식사와 영양에 관한 실질적 역사를 반증해줄 뿐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 가운데 하나인 성욕에 대한 비유일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것은 삶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문화사적 기능으로서의 굶주림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소설은 (그라스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개방적으로 끝납니다. 여자 재판관들은 단 한 가지 조건 하에서 다시 넙치를 산 채로 바다로 보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넙치가 차제에는 다른 여성들에게 확실한 조언을 전해야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친애하는 L, 이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여성이 동등하게 취급받는 시대의 전환에 대한 신호탄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개방적인 종결은 역사적 비관주의를 암시합니다. 즉 앞으로의 역사의 방향은 원을 그리면서 이전의 역사로 향하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하여 인간적 고통이 다시금 반복되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비관주의는 제 8장 “아버지의 날”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아홉 명의 여성들은 거의 광적으로 남자들의 폭력적인 태도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폭력적인 태도는 그라스에 의하면 대부분의 경우 성도착적인 증세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합니다.

 

작품 『넙치』는 비록 체념 내지 회의주의적인 시각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단치히를 무대로 한 소설 작품에 속합니다. 그라스는 특히 문체의 측면을 고려할 때 장 파울 Jean Paul 이후의 가장 훌륭한 소설가에 손꼽힙니다. 작품 『넙치』는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남성적 자의식이 얼마나 철저할 정도로 견고하며, 병적 증상을 드러내는가? 하는 문제를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