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1) 미셸 투르니에의 '마왕'

필자 (匹子) 2023. 9. 13. 10:33

친애하는 T. 러시아의 독재자 푸틴은 젊은이들을 징집하여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가 포장하는 허울 좋은 말은 국익 내지는 애국심입니다. 방랑자여 스파르타로 가겠는가? 우리가 법이 명한 대로/ 이곳에서 싸우다가, 전사했음을 분명히 보았노라고 전해다오.Wanderer, kommst du nach Sparta, verkündige dorten, du habest/ Uns hier liegen gesehn, wie das Gesetz es befahl.” = 이것은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산책Der Spaziergang에 기술되어 있는 시구입니다. 실러는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가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싸운 뒤에 남긴 절규를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발언에 의하면 죽음보다 강하고 장렬한 것은 바로 투쟁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에 기록된 모든 해방 전쟁은 이러한 표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수많은 젊은이를 총알받이로 만들게 한다는 점에서 거짓말입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사망한 사람들은 이미 3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독일의 작가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은 레오니다스의 발언을 패러디한 제목의 단편 「방랑자여, 가겠는가, 스파」를 남겼습니다. “스파르타”가 아니라, “스파”라고 기술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군에 입대하라고 외치는 자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 맞고 고꾸라져 목숨을 잃습니다.

 

미셸 투르니에 (Michel Tournier, 1924 – 2016)는 1970년에 소설 『마왕(魔王)』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부모는 프랑스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하였습니다.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독일 철학을 공부한 바 있는 작가는 독일 문화에 정통한 프랑스 작가인 셈입니다. 독일에서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Die Blechtrommel』제2차 세계대전 이에 간행된 탁월한 반전소설이라면, 투르니에의 소설 마왕Le roi des aulnes 역시 이에 견줄 수 있는 문학적 결실입니다. 작품은 1970년 발표된 그해에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콩쿠르상의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작품은 때로는 주인공 아벨 티포주가 기술한 일기 형식으로, 때로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삼인칭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맨 처음 1938년 1월 3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을 고려한다면, 전쟁 직전의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러한 정치적 사건에 관해서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주인공의 일기는 주인공의 사적인 삶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티포주는 섬세하고 예민한 청년입니다. 지독한 근시인데,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자친구 라엘을 사랑하는데, 그의 구애는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합니다. 실제로 티포주는 장대한 키에, 얼굴 또한 못생겼습니다 게다가 그의 성기가 너무 자그마해서 여성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자고로 자라 자지 동네 처녀 울린다.”고 했습니다. 성기의 크기가 아니라, 성기의 단단함이 연인들을 오르가슴으로 인도하는 법인데, 주인공은 아직 경험이 없어서 이를 깨닫지 못합니다. 실제로 라엘은 티포주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미는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주인공에게 핀잔만 가합니다. 언젠가 라엘은 그를 “오그레Ogre”라고 칭했습니다. 오그레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말하자면 그미는 못생긴 꺽다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티포주는 동년배 처녀에 대한 마음을 접고 작은 소년들을 애호하기 시작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투르니에는 “포레Phore”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포레”는 이른바 "포로스". 다시 말해 “크리스토포로스Χριστόφορος”를 연상시킵니다. 크리스토포로스는 전설에 등장하는 기인인데, 언제나 붉은 옷을 입고 다닙니다. 작은 아이가 그의 어깨에 앉아 있는데, 사람들은 그 아이를 그리스도라고 칭하곤 했습니다. 기원후 3세기에는 크리스토포루스라는 순교자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주인공 아벨 티포주는 매일 자신이 겪는 일상사를 일기장에 기록합니다. 가 김나지움 다니던 시절의 과거 체험이 서술되기도 합니다. 일기에 남길 게 없을 경우 그는 과거의 즐거웠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그것을 안온한 마음으로 일기에 남기는 것입니다. 특히 김나지움에서 만난 친구들을 그리워합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다니던 김나지움의 이름은 “상-크리토프”였습니다. 주인공은 특히 나이 어린 후배들, 그것도 키 작은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김나지움의 넒은 마당에서 보냈던 즐거웠던 시절은 일기장에 자주 묘사됩니다. 이 시기는 티포주에게는 너무나 달콤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그때의 기억은 “추락하는 쾌락의 감정euphorie cadente”의 시간이라고 명명되고 있습니다. 그는 김나지움 다닐 때 친구와 말타기 놀이를 했는데, 장난치면서 한학년 아래의 친구는 언제나 커다란 주인공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을 즐겼습니다. 아이를 끌어당겨 꼭 안아보는 놀이 – 이것은 놀랍게도 앞에서 언급한 크리스토포로스의 모습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끌어안기 – 그것은 하나의 금지된 장난입니다. 이러한 장난은 티포주에게는 짜릿한 희열감을 맛보게 해주었는데, 그의 이어지는 삶에 연속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사실 주인공은 과도할 정도로 어린아이를 애호합니다. 이러한 갈망은 결국 페도필리아, 즉 “청소년에 대한 애착pedophilia”으로 표출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티포주는 소년소녀들을 만날 때마다 은근하게 그들의 가슴과 사타구니를 더듬곤 합니다. 이로 인해서 주인공은 어느 날 성범죄자로 고소되어 유치장에 잠시 머물게 됩니다. 바로 이 무렵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이때 경찰의 조사는 흐지부지되고, 티포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군인으로 징집됩니다.

 

전선에 비치되었지만, 주인공은 안타깝게도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 이송됩니다. 포로수용소는 동프로이센, 그러니까 독일 북동부 인스터부르크라는 작은 마을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북동부의 지역은 의외로 평온함을 안겨줍니다. 티포주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습지, 자욱한 안개 그리고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주인공은 이 지역을 자신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축복받은 땅”으로 여깁니다. 왜냐면 그곳의 분위기는 비밀스러운 근원 내지는 암울한 고요함과 같은 신비로움을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수용소에서 티포주는 독일군 초병들로부터 신임을 얻게 되어, 다른 포로들과는 달리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합니다. 밤이 되면, 그는 병사 밖으로 빠져나와, 주위의 늪지대와 숲에서 이리저리 배회합니다. 이때 그는 장교 한 사람을 알게 됩니다. 그는 산과 들판을 관리하면서 산지기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산지기 장교는 고라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마른 몸에 장대한 키를 지닌 동물- 고라니. 놈은 마치 주인공 자신의 분신과 같아 보입니다.

 

고라니에게 애처로움을 느낀 주인공은 고라니에게 “악마”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어느 날 놀라운 사건이 벌어집니다. 인스터부르크 작은 마을의 늪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된 것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오래전에 그 지역을 다스리던 독일 제후였습니다. 시신은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썩지 않은 채 사람의 형체를 알아볼 정도로 제후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고고학자 한 명이 나타나서, 강연했는데, 그는 그 자리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독일 제후를 “마왕”의 존재라고 명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