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61

서로박: 하이너 뮐러의 연애시 (1)

나: 오늘은 하이너 뮐러의 연애시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뮐러는 인간의 성욕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을 집필하지 않았지요? 너: 네 그렇습니다. 성욕에 관한 문학적 소재는 다른 주제와 뒤섞여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사실 문학 작품이 오로지 성만을 묘사하면, 작품의 가치는 반감되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나: 그러면 어떤 예를 들 수 있을까요? 너: 가령 드 라클로의 성 바꾸기를 소재로 한 극작품 「사중주 Quartett」는 그 자체 어떤 혁명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될 수 있지요. 성욕에 관한 소재는 그 자체 인간적 삶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다른 깊이 있는 주제와 무관할 때 이를 다룬 문학작품은 통속성 속에 나락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 뮐러는 이 사실을 처..

21 독일시 2020.08.01

귄터 아이히의 시 "미리암"

미리암은 자신의 남동생 모세 곁에서 몰래 동생을 관찰하고 있다. "모세"는 히브리어로 "물에서 건져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귄터 아이히 (1907 - 1972)는 오더 강변의 레부스에서 출생하다. 그는 라이프치히에서 아비투어를 마친 뒤에 베를린에서 중국문학과 경제학을 공부하다. 아이히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학과를 의도적으로 택한 셈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아이히의 특이한 성향을 유추할 수 있다. 1932년부터 방송국에서 방송 작가로 일하다가, 1939년에 독일 군인으로 징집되다. 1946년에 미군이 관리하는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풀려나다. 47 그룹의 창립 멤버. 1953년 일제 아이힝거와 결혼하여, 남부 독일 그리고 잘츠부르크 근처에서 거주하다. 그는 50년대 이후부터 탁월한 방송극을 발표하였으며,..

21 독일시 2020.07.14

마샤 칼레코: 위로하기 위하여

위로하기 위하여 너의 눈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너의 이마는 생각으로 무거운 것 같으므로 너를 달래주고 싶어, 마지막 별들이 가라앉으면 누군가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듯이. 태양과 바다 그리고 바람에 전화해서 네게 가장 밝은 일요일을 선물하게 할게 가장 아름다운 꿈속으로 빠져들게 할게 너의 밤은 구름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너의 입이 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바다와 바람과 태양에게 감사하고 싶어. 너의 눈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너의 이마는 생각으로 무거운 것 같으므로. (서로박 역) Zum Trost Weil Deine Augen so voll Trauer sind, Und Deine Stirn so schwer ist von Gedanken, Lass mich Dich trösten,..

21 독일시 2020.05.04

에리히 프리트의 시세계

에리히 프리트 (Erich Fried, 1921 - 1988)의 첫 시집에는 시인의 자필 헌사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예술과 인간성은/ 많은 것을 극복하게 할 것이다-/ 어쩌면../ 런던 1944.” 그러나 이 말은 예술 그리고 휴머니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오히려 모든 정치적 차별에 대항하여 싸우려는 시인 프리트의 급진적인 도덕주의를 담고 있다. 나아가 상기한 문구는 문학이라는 장르를 하나의 무기로 사용하려는 프리트의 전투적 문학관을 진솔하게 드러낸 것이다. 프리트가 오스트리아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때, 독일군의 탱크가 그곳을 무력으로 장악한다. 며칠 후 아버지는 게슈타포에 문초 당하다가, 사망한다. 프리트는 이 일이 발생한 직후에 어머니 등과 함께 오..

21 독일시 2018.10.13

서로박: 후헬의 9월

9월 페터 후헬 (서로박 역) 낫질한 경작지의 이랑 속에서 오랜 세월의 물살 가르며 쟁기가 스칠 때 숫돌이 날 세우고 마지막 큰 낫이 귀뚜라미 노래 파고들 때 제비 떼는 태양의 노른자위 쪼아 먹고 하얀 여름의 깃털들은 부리의 외침 속으로 실 잣는다 강낭콩에서 튕겨 나온 자그마한 바람들 텅 빈 하늘에 노란 색으로 푸드득거린다 종달새는 하얀 공기 끝자락에서 자신의 노래 공중 회전하게 한다. September: Wenn in den Furchen gesensten Ackers der Pflug im Kielwasser alter Jahre zieht, der Wetzstein dengelt, die letzte Sense geht ins Grillenlied, pickt das Geschwälb im Dott..

21 독일시 2018.09.25

프리드리히 실러: 사랑

사랑 프리드리히 실러 그대를 찾아오지, 사랑은 조용히 해, 말문 닫지는 말고 나의 사랑을 믿어 줘 절대로 내게 등을 보이지 마 난 그대를 볼 수 있어. 그대를 찾아오지, 사랑은 조용히 해, 말문 닫지는 말고 나의 사랑을 믿어 줘 제발 나를 향해 돌아서 봐 난 그대를 볼 수 있어. 그건 사랑이야, 사랑이야, 그건 사랑이야.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Die Liebe Friedrich Schiller Begegnet dir die Liebe Sei leise, still, nicht stumm Vertraue meiner Liebe Und dreh dich niemals um Ich kann dich seh´n.. Begegnet dir die Liebe Sei leise, still, nicht stumm..

21 독일시 2018.06.18

횔덜린: 빵과 포도주

빵과 포도주 프리드리히 활덜린 (역자: 서로박) 1 도시 주위는 쉬고 있다. 횃불로 장식한 환한 빛의 골목길은 고요해지고, 마차들은 소리 내며 사라진다. 하루의 기쁨에 포만한 사람들은 휴식하려고 귀가한다. 골몰하는 사람은 집에서 하루의 이익과 손실을 계산하며 만족하고 있을 테지. 분주하던 시장에는 포도송이와 꽃들이 비워져 있고, 수공 제품들도 어느새 휴면하고 있다. 허나 멀리 정원에서 울려오는 현악의 음,아마도 거기에는 한 쌍의 연인이 연주하거나, 혹은 어느 고독한 남자가 멀리 사는 친구 혹은 청춘 시절을 회상하리라. 향기 퍼지는 정원근처의 분수, 항상 솟아오르며 신선한 소리를 낸다. 어스름한 공중으로 조용히 울려퍼지는 교회 종소리의 여운, 야경꾼은 몇 시인지 생각하며 큰소리로 시각을 알린다. 바람 역시..

21 독일시 2018.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