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리트 (Erich Fried, 1921 - 1988)의 첫 시집에는 시인의 자필 헌사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예술과 인간성은/ 많은 것을 극복하게 할 것이다-/ 어쩌면../ 런던 1944.” 그러나 이 말은 예술 그리고 휴머니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오히려 모든 정치적 차별에 대항하여 싸우려는 시인 프리트의 급진적인 도덕주의를 담고 있다. 나아가 상기한 문구는 문학이라는 장르를 하나의 무기로 사용하려는 프리트의 전투적 문학관을 진솔하게 드러낸 것이다.
프리트가 오스트리아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때, 독일군의 탱크가 그곳을 무력으로 장악한다. 며칠 후 아버지는 게슈타포에 문초 당하다가, 사망한다. 프리트는 이 일이 발생한 직후에 어머니 등과 함께 오스트리아를 떠나 영국으로 망명한다.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때는 바로 그 무렵이었다. 프리트는 한편으로는 집필에 몰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 세력에 가담한다. 그것은 “대영 제국 내의 젊은 오스트리아인”이라는 단체였는데, 공산주의를 표방하면서, 히틀러의 파시즘에 반대하고 있었다. 이 단체를 통하여 프리트는 73명에 달하는 오스트리아의 젊은 유대인들을 구출하는 데 성공을 거둔다.
1960년 이래로 구서독은 경제 부흥을 이룩한다. 이때 젊은이 그리고 지식인들은 프리트의 시작품에 예의 주시한다. "그리고 베트남 그리고 (und VIETNAM und)" (1966), "연애시 (Liebesgedichte)" (1979) 등의 시집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단시, 거친 호흡, 생략 그리고 비약 등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 분노하게 하며, 아울러 슬프게 만들기도 한다. 프리트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만, 결코 사적인 내용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독자는 그의 시를 읽을 때, 언제나 프리트의 개인적 견해와 접하게 되지만, 시인의 어조는 결코 개인주의의 함정에 고립되는 법이 없다.
그렇다, 에리히 프리트의 열정과 사랑, 격분과 노여움은 죽은 뒤에도 그의 시구 속에 그대로 도사리고 있다. 프리트는 1968년 「도주로부터의 해방 (Befreiung von der Flucht)」이라는 제목으로 시 그리고 반시를 발표한다. 여기서 그는 과거의 시작품들을 비판하면서, 보다 전투적인 자세를 더욱 공고하게 다져 나간다. 당시 비평가 한요 케스팅은 다음과 같이 프리트의 시를 논평하였기 때문이다. 즉 “프리트의 초기 시는 신낭만주의의 전통을 앵글로색슨의 문학적 전통과 결부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평은 그 자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프리트는 영국의 홉킨스, 오웬, 커밍스 등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자신도 술회하듯이 성서 외에도 테오도르 크라머 (Th. Kramer, 1897 - 1958),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르튀르 랭보, 요제프 칼머 등이 중요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작품의 경향에 있어서 그리고 형식에 있어서 프리트의 "경고시 (Warngedichte)" (1964는 프리트 문학의 전환점으로 작용하는 시집이다. 프리트는 정치적 진실을 언어의 모호성 그리고 의도적인 거짓말 등과 결부시켰다. 프리트에 의하면 특히 대중들에게 전하는 매스컴의 횡포는 위험한 순위를 넘어선다고 한다. 물론 매스컴의 보도는 시청자에게 진실을 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매스컴은 나아가 대중들이 어떤 중요한 사항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관심을 어떤 다른 지엽적인 문제로 돌리게 만든다. 이를 고려할 때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예리하게 간파할 수 있다. 어째서 프리트가 각운을 생략한 그의 시구는 매스컴의 해설 내지 보고 등을 비판적으로 수정하는가? 하는 물음말이다. 실제로 프리트는 신문 기사 내지 방송 이야기 등을 비판적으로 인용함으로써 이 속에 은폐된 거짓된 오류를 예리하게 풍자하고 있다.
정치적 그리고 시적 진리를 찾아내기 위하여 프리트는 매개체로서의 언어에 집중한다. 물론 프리트의 실험적 표현은 예술적 언어를 실험하는 다른 시인들의 그것과 유사하다. 가령 우리는 이에 대한 예로서 음절 바뀐 시어, 어순 바뀐 문장, 조어사용 그리고 구체시 형태의 도입 등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프리트의 언어적 실험은 오로지 매개체로서의 언어가 인간을 얼마나 거짓 정보에 시달리게 하는가를 지적하기 위해서 진척될 뿐이다.
프리트 문헌
- 장희권: 에리히 프리트의 정치적 선동시와 미학성. 베트남 시들을 중심으로, in: 뷔히너와 현대문학, 34, 2010, 57 -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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